들국화가 한국 록의 시작은 아니다. 멀리 신중현의 ‘애드포’나 ‘키보이스’, 1970년대의 ‘산울림’, ‘사랑과 평화’, ‘작은 거인’으로 올라가지 않고 그들이 활동하던 1980년대로 국한하더라도 그들보다 먼저 록을 한 그룹은 즐비했다. ‘송골매’, ‘벗님들’ 같은 이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국화에게 독보적인 역사의 위상이 주어지는 것은 그들의 존재감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이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 중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들국화 첫 앨범에 거의 다 들어있다.
[왼쪽부터] 최성원(베이스), 주찬권(드럼), 전인권(보컬), [출처: 들국화 컴퍼니 www.dgh.co.kr]
숨 막힌 시대의 열혈 아우성
그들 전에 록 밴드, 록의 수작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록을 청춘세대 저항으로서의 폭발적 울림으로 정의한다면 들국화의 첫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시대와 맞서는 청춘의 아우성은 없었다. 다른 말로 ‘록 스피릿’의 부재였다. 청춘의 발열(發熱), 난타(亂打), 포효(咆哮)가 보이지도 보이지, 들리지 않았다. 더욱이 앨범이 발표된 1985년은 군부독재의 억압적 통치가 극에 달하고 그 시대에 신음하던 젊은이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찔러주고 터뜨려줄 무언가 굉음이 필요했다.
들국화가 딱 그때 출현했다. 이들의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야말로 억압시대를 향한 젊음의 거대한 함성이었다. 설령 노래의 진의가 그것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음악수요자들은 모두가 그렇게 들었다. 마치 지친 사람, 기가 빠진 사람, 잠에 든 사람을 딱 치고 깨워 후다닥 일으켜 세우는 듯했다. 얼마 전 돌아온 들국화가 내놓은 신곡의 제목 그대로 「노래여 잠에서 깨라」였다.
이제는 시그니처 송이 된 상기한 2곡은 물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세계로 가는 기차」, 「사랑일 뿐이야」, 「더 이상 내게」, 「매일 그대와」 등 9곡 전곡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따가운 회초리이자 정신 들게 하는 매였고 그렇게 꿈과 용기를 제공하는 한편으로 따스한 위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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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중에서
‘더 이상 내게 그런 말하지 마/ 거기서 거기 그 얘기들/ 그보다 니 몸짓이 보고 싶어/ 더 이상 지난 얘기하기 싫어/ 저기 봐 파란 하늘 있잖아/ 그리고 너는 아름답잖아/ 아직도 그런 생각하는 동안/ 태양은 저기 뜨고 저리 또 지고…’-「더 이상 내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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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앨범이 지금까지 국내 언론과 평단 이곳저곳에서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을 뽑을 때마다 단골로 1위에 선정되는데 그러한 정치사회적 의미망이 작용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대에 저항적으로 대치하고 그것을 반영한 능동적 록 스피릿’은 정말로 들국화의 전유물이다.
작곡 연주 노래의 예술적 앙상블
아무리 그렇게 시대성과 저항성을 읽어낸다 해도 음악은 어디까지나 음악이다. 예술성이 구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선언이며 그 사회성 때문에 도리어 음악이 더 도탄에 빠질 수 있다. 사회적 의미 깨기는 뒤의 문제이며 먼저는 대중의 청각을 휘감으며 움켜주는 음악 예술성이다.
이 점에서 들국화의 첫 앨범은 기막힌 앙상블의 산물이다. 들국화의 상징이 청춘의 아우성을 대리한 전인권의 목소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게다가 「행진」을 작곡했다. 최근 전성기 시절의 전인권 목소리가 돌아왔기 때문에 ‘돌아온 들국화’가 완성되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전인권의 목소리는 당시로는 경험하지 못한 패턴과 진행을 담은 발군의 곡 감수성과 합쳐졌기에 거대한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멤버와 세션 전원이 (최구희의 신들린 기타연주와 주찬권의 드럼은 압권이다) 앨범 예술성 제고에 기여했지만 곡 측면에서 일등공신은 최성원(베이스)이다. 그는 「그것만이 내 세상」을 비롯해 「더 이상 내게」, 「사랑일 뿐이야」 그리고 자신이 부른 「매일 그대와」를 썼다. 아마 「그것만이 내 세상」 한곡으로 그의 진가를 알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리드 부분을 최성원이 노래하고 클라이맥스 대목에서 전인권이 치솟아 오르는 「사랑일 뿐이야」를 통해 들국화의 정체성은 ‘전인권의 거친 소리와 최성원의 세련된 곡 감성’의 합작에 있음을 알리고 있다. 두 사람은 이 앨범의 작사 작곡은 물론 편곡 작업도 주도했다.
여기서 조덕환(기타)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비틀스의 곡을 연상시키는 「세계로 가는 기차」를 위시해 「축복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들국화의 대표곡이 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 세 곡을 작곡한데 이어 「세계로 가는 기차」는 직접 노래하기도 했다. 멤버 거의 전원이 리드 보컬을 맡은 밴드는 서구에서도 비틀스나 이글스 등 몇이 되지 않는다. 조덕환은 하지만 1987년 봄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면서 실상 6개월 정도만 들국화 활동을 했다. 당연히 라이브나 2집에 그의 이름은 없다. 들국화의 또 다른 창작의 축이었던 조덕환을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순수 들국화 앨범이라는 점에서도 앨범은 별도의 가치를 발한다.
언더그라운드의 시작
들국화의 첫 앨범은 이렇게 멤버 전원이 곡 작업에 나서고 심지어 노래까지 가세하면서 ‘멤버간의 밸런스’가 유지되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다. 가사 측면에서도 유기적 측면이 살짝 발견된다.
‘난 노래 할 거야/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 까지/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로 된 첫 곡 「행진」에 「매일 그대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의 제목이 등장한다. 곡 작업에 있어서 멤버들 간의 혼연일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틀스의 <렛 잇 비(Let It Be)>의 재킷을 떠올리게 하는 앨범 커버도 전설이다. 멤버들은 실제로 ‘밴드의 원조’인 비틀스의 열혈 광팬들이었다. 최성원은 폴 매카트니에게 심대한 영향을 받았고 전인권은 “곡 「행진」은 존 레논의 창법을 따라한 것”이라고 밝혔을 만큼 존 레논을 영웅화했다. 상기한대로 조덕환의 「세계로 가는 기차」는 아예 「A hard day's night」 같은 비틀스의 초기 곡 냄새를 풍긴다.
그들이 비틀스를 섬긴 것은 예술성만이 아니라 밴드의 정체성에 대한 영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틀스는 자본과 매니지먼트의 기획 작품이 아니라 청춘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무수한 공연을 통해 내공을 다지고 끝내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른 팀이다. 들국화는 막연히 그들을 숭앙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들은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고 섭외에 응하지도 않았다.
록의 터전은 주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언더’고 ‘인디’라는 것을 실천한 셈이다. 들국화는 국내 언더그라운드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위상은 상승한다. 청춘의 포효, 시대의 반영, 멤버간의 평등, 록 예술성의 완성 외에 언더그라운드 가치의 실천까지 굴착해낸 것이다. 록의 모든 것을 집결한 셈이다. 그들은 이 한 장의 앨범에 그 모든 것을 담아냈다. 한국 록과 한국 록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실로 많은 것을 했고 남겼으며 또 많은 게 기억되는 역사적 명작이다.
글/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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