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인문학이라고 하면 흔히 가지는 편견이 있다. 뭔가 고상해 보인다는 생각, 그러나 실용성은 없는 학문이라는 생각이다. 실은 고상해 보인다는 것도 실용적이지 않다는 데서 비롯된 생각이니, 방점은 대개 후자에 있다. 하지만 인문학은 결코 실용성이 없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의 실용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역사다. 역사는 인문학에 속하지만 의외로 사회과학의 한 분야인 경제학economics과 통한다. 접점은 절약, 즉 이코노미economy에 있다.
어느 나라나 사회에 관해 가장 절약적으로 알게 해주는 방법은 뭘까? 다시 말해 최소의 비용과 시간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게 해주는 지식은 뭘까? 그것이 바로 역사다.
어느 나라든 그 사회에 관해 말해주는 지식은 많이 있다. 그곳에서 간행되는 신문을 봐도 되고, 인터넷을 뒤져 관련 기사를 찾아봐도 된다. 영화나 노래를 참고할 수도 있고, 각 분야의 관련 도서를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의 비용과 시간밖에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역사서를 보는 게 최고다. 예를 들어 작은 나라에 외교관으로 부임하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그 나라에 관한 개략적인 지식을 얻어야 한다면 그 나라의 고등학교용 역사 교과서를 보는 게 가장 나을 것이다. 단 한 권으로 그 나라의 개요를 알 수 있게 해주니까.
나라나 사회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주변의 평판을 들어도 되고 그 사람이 한 말이나 쓴 글을 찾아봐도 된다. 그러나 가장 효율적으로 알고자 한다면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을 아는 게 가장 좋다. 그 내력이 곧 그 사람의 역사다.
최소의 비용, 최대의 효과, 효율성은 경제학에서 쓰는 개념들이다. 그런 개념들을 역사에 적용할 수 있다면 역사의 실용성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실용성은 무엇에 대한 실용성일까? 역사는 무엇을 절약적으로 알게 해줄까?
방송국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려 하거나 입시나 임용시험을 준비하려는 게 아니라면,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오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다. 오늘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 국가 중대사든 일상적 사건이든 모든 사건의 이면에서는 길든 짧든 역사가 작용한다.
펠리시앵 롭스, <창부정치 Pornocrates>,1896
II
지금 신문 국제면을 자주 장식하는 대표적인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과 발칸의 ‘시사적 현안’도 근원을 찾다 보면 결국 역사에 맞닥뜨리게 된다. 팔레스타인은 기원전 1300년경 모세가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유대인들을 거느리고 가나안에 새 터전을 잡으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가나안은 무주공산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민족이동은 결과적으로 원주민의 땅을 빼앗은 셈이 되었다(이 과정은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인과 블레셋인의 오랜 다툼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요약된다). 이후 1천 년가량 이곳에 살던 유대인들은 로마 시대에 박해를 피해 유럽 전역으로 흩어졌다가 또다시 2천 년이 지나 20세기에 이곳에 이스라엘 공화국을 세웠는데, 이때도 역시 이곳은 무주공산이 아니었다. 그래서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마자 곧바로 중동전쟁이 터져 오늘에까지 이르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낳은 것이다.
발칸의 경우에는 중세 1천 년 동안 비잔티움, 즉 동로마제국의 영토였다. 그러나 15세기에 제국이 멸망하고 이슬람 제국에게 정복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종교적으로 보면 그리스도교의 한 갈래인 동방정교 지역에 이슬람교가 이식된 것이다. 우리는 종교를 신앙으로 쉽게 등치시키지만,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 종교란 신앙이라기보다 생활방식이다. 그래서 발칸에서는 생활방식을 놓고 큰 갈등이 싹틀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민족적으로도 그리스인, 슬라브인, 아랍인이 뒤섞여 대단히 복잡했다. 이런 역사적 모순이 수백 년에 걸쳐 켜켜이 쌓여 결국 20세기 초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터져나온 것이다(19세기 말부터 발칸은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렸다).
이렇게 역사가 오늘을 규정하는 근본적 요인으로 기능하는 것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1948년에 공화국으로 탄생했으나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전한 공화국이 아니다. 정치인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음에도 마치 자신의 지위 자체에서 권력이 나오는 것처럼 권력을 남용하고, 경찰과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임용되었음에도 국민보다 상급 기관을 더 두려워하며, 재외공관은 재외 국민을 돌보는 게 기본 의무임에도 중앙정부의 눈치에 더 민감하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공화정이 우리 역사에서 형성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수천 년 동안 왕조시대를 거치며 왕정이라는 체제에만 익숙한 상태에서, 갑자기 서구에서 발생하고 발달한 공화정이 이식된 결과다. 서구 공화정이 발전하는 과정에는 왕정이 타도되고 모든 권력을 국민이 가진다는 공화정의 기본 원리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안착되는 역사가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 역사에서는 그 과정이 부재했기에, 권력의 원천이 국민이고 모든 개인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의식이 역사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역사의 생략은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 문화, 생활방식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도 그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국민이 자신의 권력을 위임할 공직자를 선출하는 선거임에도 후보자들은 마치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처신하고 발언한다. 심지어 일부 유권자들도 대통령 선거를 마치 ‘나랏님’을 뽑는 것처럼 여기고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쉽게 인정한다. 왕국의 왕은 종신 임기에다 세습까지 허용된 국가의 실질적 오너지만, 공화국에서는 국민이 국가의 오너다. 따라서 공화국의 대통령은 국가의 주인이나 지배자가 아니라 CEO 혹은 최고 관리자일 뿐이다. 정치인과 일부 국민이 그릇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공화정의 역사가 충분히 쌓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III
역사에는 생략이나 비약은 없어도 지름길은 있다. 단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어도 전체 과정에 소요되는 기간과 노력을 줄일 수는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역사적 두께를 채우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이 책은 흔히 접하는 시사의 배경과 이면에 있는 역사의 뿌리를 추적해 그 지름길을 찾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분쟁, UN의 활동, 이데올로기 같은 세계적 사건이나 통일 문제, 선거, 대학입시 등 국내적 사건은 사람들의 큰 관심사인 만큼 역사적 뿌리가 길고 깊다. 뿐만 아니라 종교, 예술, 가치관 같은 문화적 요소들도 그 역사를 캐 보면 복잡하게 뒤얽힌 뿌리가 주렁주렁 나온다.
오늘의 바탕에는 과거가 있듯이 모든 시사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 따라서 오늘의 시사를 올바로 인식하려면 과거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이 책에서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교육 등 신문의 지면 구분을 차용한 이유도 우리가 당면한 시사를 역사적 근원의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데 있다. 학술이나 연구를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나 묵직한 개념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때로는 독자에게 ‘부담스러운’ 통찰력을 요구하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실린 48편의 글은, 이 책을 위해 따로 쓴 것은 많지 않고 대부분 예전에 다른 지면이나 매체에 수록했던 것들이다. 물론 이 책을 위해 새로 다듬고 전반적으로 손보는 일은 생략하지 않았다. 자칫 일관성도 부족하고 내용도 성길 수 있겠지만, 여백이 넓은 만큼 독자의 역사적 성찰에 기여할 수 있는 폭도 크리라고 본다. 다양한 종류의 글들을 정리해 책으로 묶어준 메디치미디어의 정소연, 김정현 씨에게 감사드린다.
2013년 2월
남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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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남경태 저 | 메디치미디어
이 책은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교육이라는 6가지 카테고리에서 역사와 시사를 이으면서 동시에 레임덕, 기후변동, 자본주의, 혁명, 통일, 대학입시 등 국내외 사건부터 종교, 예술, 가치관 같은 문화적 요소까지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48가지 시사의 이면에 숨겨진 역사를 다룬다. 역사에 해박한 인문 저술가 남경태의 시사 이슈를 다룬 첫 번째 책으로, 읽고 이해하는 역사서가 아니라 현실에 사용하는 역사서로의 시도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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