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자전거는 매우 중요한 이동수단이다. 대체로 우리나라를 벗어나는 순간 자전거라는 도구가 인간에게 엄청나게 가까운 것이었다는 감상을 즉각 느끼게 되는데, 이번 여행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거의 모든 곳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져 있고,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차도와 자전거 도로와 인도를 구분해서 각자의 위치를 점령한다. 자칫 별 생각 없이 인도와 붙어 있는 자전거 도로에 발을 딛고 서서 신호등의 초록 불을 기다리고 있다가는 자전거 운전자의 호된 꾸중을 들어야 한다. 특히나 좁은 길이 많은 곳에서 자전거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가는 나의 엉덩이나 허벅지를 뚫어버리겠다고 쫓아오는 그들의 패기를 막을 재간이 없다.
사람 따위가 절대 이유 없이 자전거의 질주를 막아서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동차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룰이다. 그래서 인간과 자동차보다 우위에 서 있는 자전거 운전자들은 아주 명쾌하고 편안한 운전을 즐기며 능숙한 수신호로 도시의 곳곳을 질주한다.
민망한 쫄바지에 헬멧, 장갑과 선글라스를 끼고 두건으로 입을 가린 채 몸을 앞으로 숙여 돌진하는 모습으로 ‘아, 저들은 운동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아우라를 무시무시하게 풍기며 비켜서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바로 내려서면 출근을 할 수 있고 그대로 쇼핑을 할 수 있는 복장으로 뚜벅뚜벅 걷는 다리 대신 쪼르르 달려 나가는 바퀴를 이용하고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미니스커트를 입은 날에도 예외는 없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이들을 실은 수레도 종종 달려 있다. 엄마는 수레에 딸을 싣고 쇼핑을 가고, 아빠는 작은 자전거에 아들을 태워 훈련을 시킨다. 어려서부터 자전거는 그들의 일상이자 권리이고 의무인 듯 보인다. 지하철에도 트램에도 자전거 운전자를 위한 공간이 반드시 마련되어 있고, 그들은 그것을 당연히 영유한다. 우리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그들은 자전거를 몰고 다닌다. 그렇게 자전거를 편히 탈 수 있는 조건이 부럽기도 하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언덕과 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것이 심히 어렵기도 하거니와, 허벅지의 힘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도로의 점령자인 자동차를 피해 다녀야 하니까 위험천만이다.
우리에게 도로의 대마왕이자 무법자인 자동차는 이곳에서 가장 너그러운, 어찌 보면 가장 소심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단단한 철로 마감된 육중하고 비싸며 기름을 먹어대는 탈것들은 가느다란 프레임과 바퀴로 사람을 싣고 가는 날쌘돌이들을 매우 조심히 피해 다니고 보호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런 조심성 없이 길을 건너는 인간들을 위해 언제든 달리던 바퀴를 멈춰주어야 하며 잠시 후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설지도 모르는 인간들의 심리까지 파악하여 교차로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곤 한다. 기름을 먹고 매연을 내뿜는다는 이유로 심각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한 몸짓이다. 항상 자동차에게 먼저 갈 길을 양보해야 하고 그 앞을 막아설 시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며 도로의 한켠에 쭈그러져 있어야 했던 나의 육신은 그곳의 너무나 친절한 자동차들 때문에 당황하곤 했다. “아직 내가 저 길을 건너려면 열 발짝은 더 걸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서서 기다리시면 저는 뛸 수밖에 없질 않습니까” 하고 송구스러워하며. 길을 건너며 운전자에게 꾸벅 감사 인사를 하면, 그들은 쟤가 왜 갑자기 나한테 인사를 하나 하는 표정으로 그저 여유롭게 기다린다. ‘너를 위해 1분쯤 기다리는 것은 내 인생에 잠시의 휴식을 더해줄 뿐이야’ 하는 태도로. 멋들어지기가 여간 수준 높은 것이 아니다.
그런 상황을 몇 번 겪다보니, 나중에는 나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길을 걷는 것이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니’ 하면서 조금 막 나가는 기분도 느껴본다. 집에 돌아오는 공항버스에서 내려 작은 골목을 건너는 순간부터 다시금, 조금만 더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가는 나의 옆구리에 사정없이 입맞춰줄 기세의 트럭 앞에서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뒷걸음질을 쳐야 했지만.
그나저나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완벽히 탈 줄 몰라 쩔쩔매는 사람이라서 이런 자전거 타기 좋은 곳들에서도 미처 자전거를 이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심히 아쉽다. 덩달아 수세미양까지 걸어 다녀야 했으니까. 여행갈 때마다 조금씩 배워보려 노력은 했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다.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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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처럼 김나율 저/이임경 사진 | 네시간
디자이너이며 보통의 여행자인 두 저자가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 덴마크 코펜하겐 세 도시로 북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정에 얽힌 유쾌한 이야기, 먹고 즐기고 쉬기에 유익한 정보 등 여행지로서의 북유럽을 담으며 그들의 공간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필두로 독특한 문화와 날씨, 물가 등 다양한 관심 키워드를 다룬다. 보통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적당히 놀며 쉬며 접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북유럽 스타일의 감성으로 삶을 덜어내고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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