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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적 매력의 브릿팝 천왕, 다시 돌아오다 - 스웨이드, 존 그랜트, 홍대광
11년 만의 귀환, 스웨이드(Suede, London Suede) 진일보한 사운드로 돌아온 존 그랜트 비교적 성공적인 첫 걸음을 내딛은 홍대광의 데뷔 앨범
1990년대, 전 세계에는 브릿팝 열풍이 불었습니다. 당시 브릿팝의 사대천왕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스웨이드는 특유의 퇴폐미로 인해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이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죠. 이번 주에는 이들이 11년 만에 발표한 여섯 번째 정규 앨범, <Bloodsports>를 소개해드립니다.
1990년대, 전 세계에는 브릿팝 열풍이 불었습니다. 당시 브릿팝의 사대천왕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스웨이드는 특유의 퇴폐미로 인해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이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죠. 이번 주에는 이들이 11년 만에 발표한 여섯 번째 정규 앨범, <Bloodsports>를 소개해드립니다. 진일보한 사운드로 돌아온 존 그랜트의 앨범과 또 한명의 오디션 출신 가수로서 비교적 성공적인 첫 걸음을 내딛은 홍대광의 데뷔 앨범도 함께 만나보세요.
스웨이드(Suede, London Suede) <Bloodsports>
1993년, 스웨이드는 동명의 데뷔 앨범 <Suede>로 “도덕적인 것이 아름답다”라는 인식을 격파했다. 두 소년의 농염한 키스를 앨범 커버로 내걸었듯 동성애, 근친상간 같은 것들을 노골적으로 폭로했으며 당시 낡은 음악으로 간주되던 글램 록을 재해석했다. 순식간에 만개한 그들의 매력은 그만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
세련된 퇴폐미로 1990년대 브릿팝의 스타가 된 스웨이드는 2003년 해체를 통해 낙화했다. 일렉트로니카를 취입한 부작용과 혼잡한 구성이 담긴 4집 <Head Music>과 5집 <A New Morning>을 통해 소구력을 잃어버리더니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2005년엔 브릿팝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듀오로 인정받던 보컬 브렛 앤더슨과 기타리스트 버나드 버틀러가 더 티어스라는 밴드로 재결합했지만 단 한 장의 음반만 내고 사라져버려 상실감만 남겼다. 팬들은 스웨이드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낙담했지만 스웨이드는 2010년에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났다. 첫 번째 베스트 앨범 <The Best Of Suede>의 발매를 기점으로 재결합한 스웨이드는 투어로 활동을 재개했고, 2011년엔 지산 록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렇게 신보에 대한 기대가 영글어갈 때, 여섯 번째 정규앨범 <Bloodsports>를 내놓았다.
<Bloodsports>는 우연을 넘어 운명적으로 개화와 낙화를 이은 결실의 단계에 도달해있다. 수록곡들은 스웨이드의 정체성인 탐미주의가 짙게 깔린 2집 <Dog Man Star>와 대중적인 호황기를 누린 3집 <Coming Up> 사이를 가로지른다. 이 같은 위치는 대중성과 예술성의 저울을 수평에 맞춘다. 욕정에 대한 가사와 흥겨운 리듬감은 적당히 버무려져 있고, 최근 두 음반에서 보인 혼란과 균열도 보이지 않는다. 이 균형은 1집부터 3집까지 밴드의 초창기를 함께 보낸 프로듀서 에드 블러와의 재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밴드와의 높은 친밀도와 이해도는 11년 만에 발매한 이번 앨범을 안착시켰다.
<Bloodsports>를 위해 <Coming Up>을 제작하던 당시의 멤버들이 다시 모였다. 버나드 버틀러가 탈퇴하고 그 공백을 성공적으로 채워준 기타리스트 리차드 옥스와 새로운 사운드를 담당해준 키보디스트 닐 코들링이 가세했다. <Bloodsports>에서도 그들의 기여도가 높다. 모든 수록곡의 작사, 작곡에 참여한 브렛 앤더슨은 여전히 팀의 중추를 맡고 있지만 10곡 중 5곡을 세 명의 멤버가 함께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리차드 옥스는 뚜렷한 리프와 거친 이펙터로 멜로디를 안정적으로 풀어나가며 닐 코들링의 키보드 연주는 신스 팝의 트렌드와 영리한 교집합을 만들어낸다.
사운드와 분위기는 밝지만 낙천적이지 않으며 묘하게 음침하다. 음반의 첫 세 곡은 신나는 곡들을 배치했다. 신시사이저와 드럼 비트가 강조된 「Barrier」를 시작으로 기타가 멜로디를 지휘하는 「Snowblind」, 반복 소절을 내세운 첫 번째 싱글 「It starts and ends with you」는 에너지가 넘친다. 음반의 완급 조절을 하는 「For the strangers」와 「Hit me」를 지나 장엄한 어두움이 시작된다. 비록 한 옥타브 내려간 브랫 앤더슨의 관능적인 보컬은 예전처럼 도도하진 않지만 특유의 리버브가 그들만의 퇴폐성에 대한 습도를 맞춰준다. 리듬이 제거된 「What are you net telling me」부터 마지막 곡 「Faultlines」까지 후반부의 3곡엔 우울함이 자욱하다. 막판에 무게를 가중한 것은 귀환에 대한 반가움을 훼손시키지 않으며 음악에 대한 진중함을 더하는 관록의 선택이다.
대중은 <Bloodsports>를 UK 차트 10위에 올려놓았지만 여기엔 기다림에서 비롯된 막연한 환호만이 채워져 있는 것도 아니고, 추억의 회상 뒤 찾아오는 공허함을 남기지도 않는다. 기억 속에 자리하는 ‘스웨이드’다운 요소들을 섬세하게 추출해 현재의 연륜에 맞게 소생시켰고 이로써 한 날의 꿈으로 사라질 공산을 방어했다. 이제는 노장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스웨이드는 오랜 시간 끝에 밴드의 이상적인 모습을 복귀와 함께 <Bloodsports>에 정착시켰다. 화려한 과거와 풍부한 내실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이 농익은 결실이다.
존 그랜트(John Grant) <Pale Green Ghost>
우리나라에서 존 그랜트(John Grant)의 인지도는 확실히 낮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포털 사이트에서도 기본 자료의 양이 경미하고 그나마 정보나 소식을 발견한다면 일부 음악 팬들의 블로그에 등록된 몇 안 되는 것들이다. 물론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존 그랜트는 시장에서의 성공을 밟아본 적이 없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록, 포크에서부터 드림 팝에까지 이르는 너른 영역을 기반으로 두고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미국 인디밴드 짜르(The Czars)의 프론트 맨이 바로 그였고 그룹의 명작 <Before...But Longer>와 같은 결과물을 낳게 했던 지휘자도 역시 그였다.
국내에서의 조명은 세기가 낮지만 영미권 음악 팬들에게 있어 존 그랜트는 여러 배경으로 시선을 끄는 뉴스메이커다. 짜르에서의 경력이 디스코그래피로만 짜인 것만은 아니었다. 알코올 중독과 약물 중독이 늘 옆에 있었으며 이를 완전히 떼어놓은 2004년에까지 마라톤과 같은 긴 싸움을 겪어야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 무렵 알게 된 HIV 양성반응 결과를 얼마 전 스스로 공개한 바 있다. 일찍이 밝혔던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더불어 존 그랜트는 화제의 한복판 위로 다시 등장했고 부모의 방치로 보냈던 유년 시절과 우울증과 같은 예전의 이야기들도 주목을 받았다.
아티스트의 배경을 마치 황색신문 1, 2면의 화젯거리처럼 늘어놨지만 생각해보면 그 누구보다도 쓰라릴 아픔들이다. 물론 존 그랜트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경중에 어느 정도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라면 저 중 하나만 품어도 긴 고민의 시간이 뒤따라 요구되지 않을까. 아티스트 자신에게 다행인지, 음악을 듣는 우리에게 다행인지는 몰라도 존 그랜트에게는 이를 유려하게 풀어낼 줄 아는 재주가 있다. 보컬과 키보디스트, 메인 작곡자로 활약했던 짜르에서의 결과물들과 해외에서 극찬을 받았던 2010년의 첫 솔로 앨범 <Queen Of Denmark>이 바로 그 증거다. 갖은 사운드를 통해 펼치는 스펙트럼 속에 기억의 세계를 음의 차원으로 불러들이며 능숙한 실력을 드러냈다.
음악을 통해 삶을 토로하는 음악가의 무브먼트는 이번에도 동일한 궤적을 그렸다. 빛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밝고 경쾌한 소리를 들려줄 법도 하지만 존 그랜트의 시선은 결코 자신을 외면하지 않는다. 「Why don't you love me anymore」을 통해 어린 시절에 받았을 고독함과 외로움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반대로 「Vietnam」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사가 푸는 이야기는 자기 고백에서 그치지 않는다. 갖은 아픔에서 새어나온 불안과 떨림이 한 단계 더 나아가 「Pale green ghost」와 「I hate this town」의 기저에서 횡행하며, HIV 감염 진단을 공개하며 겪었을 여러 공격성 추측에 조소를 담은 「Ernest Borgnine」으로 화답한다.
경위는 동일해도 결과물은 다르다. 신보에서 드러나는 사운드는 오히려 3년 전보다 진일보했다. 색상이 없는 회색빛 음을 재료로 삼았으나 때로는 축축하게, 때로는 건조하게 습도를 달리하며 순간에 변화를 주었고 널찍함과 촘촘함을 오가며 구성에 다채로움을 기했다. 초반의 「Pale green ghost」과 「Black belt」부터 후반의 「Ernest Borgnine」과 「Glacier」까지 모든 트랙을 한 번 훑어보자.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일렉트로닉 노트와 믹싱으로 조합된 효과음들이지만 그 특색이 시시각각 달리 변화한다. 바로 이 점이 작품이 가지는 강력한 매력이다. 곡마다 개별적으로 다르니 사운드도 같이 달라진다는 상식선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철저히 개별적이고 분화된 이야기의 벽 앞에서 흔히 말하는 앨범의 유기성은 단숨에 와해된다.
분산된 시선으로 통일성을 흐린다는 평이 대개는 앨범에 찍힌 오점으로 기록되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는 잠시 옆으로 옮겨둘 필요가 있다. 현실 속의 불안과 상상 속의 공포 외에는 별 다른 공통점이 없는 <Pale Green Ghost>의 노래들에는 ‘뚜렷한 합집합’보다는 ‘애매하고 흐릿한 교집합’이 수식어로 더욱 적확하다. 일렉트로니카로 점철된 소리의 나열을 듣다가도 느닷없이 등장한 어쿠스틱 사운드에 허를 찔리고, 예상치 못 한 순간에서 등장하는 스트링 세션과 신디사이저 효과에 낯섦에서 오는 긴장을 다시 느끼니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운드는 낯설어도 방금 받은 긴장감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존 그랜트는 색깔만 다른 11개의 고무줄을 당겼다 풀었다하며 동일한 텐션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었다.
감흥을 방해하는 일체의 장애물로부터 감상을 자유로이 하겠다면 내연(內延)의 단계에 자리한 작품의 테마를 건너뛰어도 좋다. 음악이란 듣고 즐기려 만든 것이지 애초부터 이해하겠다고 접근하는데 목적을 둔 것은 아니지 않는가. 「You don't have to」에서 펼쳐지는 존 그랜트의 보컬 파라다이스와 「It doesn't matter to him」에서 등장하는 예측 불가능한 마무리와 같이 작품 그 자체만 받아들여도 분명 문제는 없다. 그러나 파편적으로 던져지는 사운드와 가사에 불안과 그림자를 이미 느꼈다면 본원을 직시해야할 필요 또한 존재하지 않을까. 작품을 장식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강박증과 공포증 다발, 그 형태로 표출되는 긴장의 커다란 덩어리다.
울분이 보이고 분노가 보인다. 화를 내뿜는 과정에 단순히 때려 부수는 소리를 들려주는 일차원적인 접근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존 그랜트의 방식은 달랐다. 11개로 나뉜 매 순간마다 그는 각기 다른 시각을 대었고 각기 다른 패러다임으로 접근했다. 경험의 나열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탁월한 실력과 실험으로 다져진 연륜에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어둡지만 다채로운 결과물들이 찬사의 근거를 대변한다. 아티스트에게 신보가 얼마나 많은 수익을 가져다줄지는 의문이어도 얼마나 많은 영예를 가져다줄지에 대해선 이미 자명해 보인다. 존 그랜트라는 재능으로 무장한 이 알레고리는 뮤지션 그 자신과 2013년의 팝 신 모두에 해당되는 최고의 작품이다.
홍대광 <멀어진다>
가왕 조용필의 복귀전과 글로벌 스타 싸이(Psy)의 두 번째 출격이 음악계를 점령한 요즘, 다른 가수들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자기 지분을 확보하기는커녕 이슈의 밖으로 하나 둘 밀려나고 있으니 이보다 어려운 순간이 또 어디 있을까. 시장 전체로는 물론 호재이나 시야를 조금 좁혀보면 누군가에게는 악재로도 다가올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제반 사항을 고려했을 때 홍대광의 데뷔 무대는 사실상 성공적이다. 밥그릇의 크기는 줄었다 해도 적어도 뺏기진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존재감을 전혀 잃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굵직한 소식들에 비하면 미약하기는 하나 뮤지션에 대한 팬들의 반응도 지속적이고 게다가 호의적이다.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홍대광의 손익 분기점은 어느 지점이었을까.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배경과 빠른 데뷔라는 사실이 분명 탄력적으로 작용했지만 이들만 가지고는 지금의 성취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가장 크게 반응하는 지점은 아티스트를 포장하는 이슈보다도 그 내실에 존재하는 실력에 있다.
홍보가 잦은 것도 아니다. 다른 신인 가수들이나 대형 기획사에 들어간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뮤지션들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다. 이런 조건에서 꾸준히 관심사로 오르내릴 수 있었던 건 “노래를 잘 부른다”는 대중들의 범위 넓은 평가가 있기에 가능했다. 뚜껑을 열어보자. 가창력이 중시되는 장르인 발라드라는 영역에서 딱히 흠잡을 곳이 없다는 점은 아티스트의 역량을 충분히 신뢰할 만 하다는 것이다. 먼저 공개한 싱글 「굿바이 (With 소유 of 씨스타)」보다도 괜찮게 들리는 「웃으며 안녕」이나 타이틀 곡 「멀어진다」가 수록되어있고 블루지한 기타 사운드와 탁월한 보컬이 상승효과를 창출한 「고백」이 의외의 한 수로 앨범을 빛낸다.
데뷔 음반이라는 사실을 복기시켜봤을 때 이 정도면 결코 나쁘지 않다. 물론 첫 작품들이 모두 나빠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메인스트림에 출사표를 내건 데뷔 앨범이 미숙함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잊혔던 전례들을 이미 여럿 봐왔지 않던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시선이 여러 수록곡으로 향해 있다는 점은 <멀어진다>가 그 전례들과는 다른, 반례로 자리할 가능성을 한층 끌어올린다.
다만 모든 레퍼토리가 연애소설로 국한되어 있다는 요소는 적잖은 반감을 산다. 싱글 단위로는 소구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대중 친화적인 주제이지만, 앨범 단위로 접근해보면 상당한 지구력을 요하는 장해물이다. 작품 스스로가 자기 발목을 잡은 형상이랄까. 콘셉트가 이렇다보니 곡들도 대부분 비슷한 사운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이래야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다”라는 제작자의 기획보다도 뮤지션의 욕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짧게 치고 빠지기에는 이만한 전략이 없다. 이는 단기성의 이름을 가진 아쉬움이다.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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