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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믿으면서 믿지 않고, 믿지 않으면서 믿어야 하는 이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어느 소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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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다시는 안 하겠다고 얘기할 때 부모는 아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줘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그것 또한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믿으면서 믿지 않고, 믿지 않으면서 믿는 연습이 필요하다. 부모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완벽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이에게 예습을 하라고 하듯이 무엇이든 철저하게 준비하고, 아이에게 공부를 재미있게 해야 한다고 하듯이 일을 재미있어 하고, 아이에게 TV 보지 말고 책을 읽으라고 하듯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 대신 책을 읽는 부모가 과연 존재할까?

[출처: //www.morguefile.com/archive/display/216256 by singhajay]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문제 학생은 항상 아름답다. 그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만 그것은 상황이 만든 문제일 뿐 원래 심성은 곱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공감한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를 일으키는 10대를 보면 영화나 드라마와 같이 매력적인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을 끄는 매력을 지닌 아이들은 굳이 문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 놓인 문제 학생들은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없다. 그 아이들은 인기도 없고, 매력도 없기에 억지로 얻어내야 한다. 그런 행동은 사람들이 그들을 피하게 만들고, 그들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그 무언가는 점점 더 멀어진다. 프랑스 영화감독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은 영화 <무쉐뜨>에서 잔인하도록 냉정하게 무쉐뜨라는 불량소녀를 객관적으로 그려낸다.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하는 10대 소녀 무쉐뜨. 그녀의 집은 가난하고, 어머니는 병으로 죽어간다. 게다가 동생은 갓난아기라서 무쉐뜨가 돌봐야 하고 아버지와 오빠는 그녀에게 이상하리만큼 냉정하고 잔인하다. 이러한 불행은 무쉐뜨를 무뚝뚝하고 불량스럽게 만들었다. 합창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모두 노래를 따라 부를 때 혼자만 입을 다물고 있고, 아무 이유 없이 같은 학교의 또래 소녀들에게 진흙을 집어던져 옷을 더럽힌다. 비뚤어진 그녀를 선생님은 무시하고, 아이들은 따돌린다. 그렇기에 무쉐뜨는 더 비뚤어져 간다. 그것만이 그녀가 아직도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쉐뜨는 폭풍우를 만나 숲에서 길을 잃게 되고 아르센에게 겁탈당한다. 하지만 무쉐뜨는 아르센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아르센을 위해서 범죄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겠다고, 그를 위해서도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새벽에 집에 들어오자 엄마는 더욱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동안 관객이 무쉐뜨에게 공감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불쾌함마저 주던 감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무쉐뜨의 통곡을 보여준다.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엄마가 죽어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죽고 무쉐뜨는 동정과 경멸을 동시에 받는 처지가 된다. 밀렵꾼 아르센이 감옥에 잡혀가면서 그와 관계를 가진 것이 마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무쉐뜨를 불쌍하게 여긴 가게 주인이 과자와 차를 공짜로 주지만 동시에 경멸한다. 무쉐뜨는 반은 고의로, 반은 실수로 찻잔을 떨어뜨려 깨뜨린다. 한 노파가 무쉐뜨의 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장례식 때 입을 옷도 없을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잘난 체를 하자 무쉐뜨는 옷을 받아 나오면서 노파에게 욕을 한다. 그리고 무쉐뜨는 새 옷으로 온몸을 칭칭 감싼 후 언덕에서 강을 향해 몸을 굴리고 물에 빠진다. 영화는 그 흔한 주인공이 허우적대는 모습도 없이 끝이 난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느끼고자 영화를 보러간다. 그래서 감독들은 어떻게 해서든 관객을 감동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로베르 브레송은 10대 불량소녀의 진짜 삭막한 삶을 철저하게 관객의 공감을 차단한 채 그려낸다. 관객들은 어떻게 해서든 동정하기 위해 기를 쓰고 감독은 무쉐뜨의 못된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그런데 실제로 문제 청소년들을 옆에서 대하는 이들의 시선은 로베르 브레송의 시선에 더 근접한다.

가출 청소년이나 범죄 청소년에 대한 언론 보도는 항상 우리 사회가 문제 아이들도 더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상투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막상 소위 문제아가 내 주위에 다가오면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고, 어떻게든 내 아이와 떨어뜨리고자 한다. 제3자였을 때 보이던 동정심은 이해 당사자가 되면 씻은 듯 사라지고 두려움과 경멸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어쩌면 로베르 브레송은 <무쉐뜨>라는 영화를 통해서 우리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러한 속물적인 심리를 끌어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문제 청소년을 도와주던 자원봉사자가 우울증으로 외래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소년원에서 본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보다 더 심성이 착하고 순수한 것 같았고 사회에 나가면 성실하게 살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래서 소년원을 나간 후에도 아이들과 계속 연락도 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는 척 하던 아이가 알고 보니 계속 나쁜 짓을 하고 있던 것이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환자는 며칠 잠도 못 잤다고 했다. 자원봉사를 나가도 왠지 아이들과 거리감이 느껴졌고 결국 소년원 자원봉사도 그만두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사실 내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반복되며 일어난다.

나는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다시는 안 하겠다고 얘기할 때 부모는 아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줘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그것 또한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믿으면서 믿지 않고, 믿지 않으면서 믿는 연습이 필요하다. 부모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완벽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이에게 예습을 하라고 하듯이 무엇이든 철저하게 준비하고, 아이에게 공부를 재미있게 해야 한다고 하듯이 일을 재미있어 하고, 아이에게 TV 보지 말고 책을 읽으라고 하듯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 대신 책을 읽는 부모가 과연 존재할까?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부모 본인부터 지키면서 산다면 당연히 인생이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러지 못한다. 부모 역시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에게 완벽함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이번에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면 항상 처음 들은 얘기처럼 공감해야 한다. 설혹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 매번 속기만 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아이 역시 부모의 깊은 마음을 깨닫고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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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명기

지은이 최명기는 마음경영 전문의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2003년 듀크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하고, 내친김에 건강의 통합적 방법을 모색하다 듀크 대학교 Health Sector Management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에 돌아와 부여다사랑병원을 열었다.
경영학을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라는 독특한 이력을 살려, 경영학과 정신의학을 통합한 마음경영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고 있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병원경영 강의를 했으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의료경영학과 겸직교수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즈리뷰」에서 마음경영을 주제로 칼럼을 썼고, 의료전문 사이트 ‘메디게이트’에 의료경영 칼럼을 연재 중이다. 한국생산성본부(KPC)에서 CEO 마인드테라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정신분열증을 대처하는 방법』, 『심리학 테라피』,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 『마음이 경영을 만나다』, 『트라우마 테라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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