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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 콘수엘로와 장미 2

[어린 왕자 탄생 70주년 특집]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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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던 거야! 그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그 꽃은 내게 향기를 뿜어주고 마음도 환하게 해주었어. 절대로 도망을 쳐버리지는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 꽃의 대단치 않은 심술 뒤에 애정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꽃들은 앞뒤가 어긋나는 말을 너무나 잘 하니까! 하지만 난 너무 어려서 꽃을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그러나 그 동안 그들 부부의 관계는 그리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어린 왕자가 다른 장미꽃들을 만나게 되는 장면(제20장)은 생텍쥐페리가 결혼한 뒤 많은 다른 여성들과 지속한 애정관계들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저명한 작가요 비행사인 생텍쥐페리의 곁에는 아내 콘수엘로 못지않게 오랜 동안 서신을 주고받는 사이인 르네 드 소신느, 파리 문단과 재계에 영향력이 큰 넬리 드 보귀에, 미국의 여기자 실비아 해밀턴 등 내밀한 친분관계인 여성들이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수많은 여성 애독자와 추종자들이 화려한 꽃밭을 이루곤 했다.

『어린 왕자』에서 우리는 그런 정황의 암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왕자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몹시 불행하게 느껴졌다”. “그의 꽃은 이 세상에 자기와 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고 늘 그에게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정원 한 곳에만 똑같은 꽃이 오천 송이나 피어 있는 게 아닌가! ‘내 꽃이 이걸 보면 무척 속상할 거야……’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아마 기침을 마구 해대며 창피한 꼴을 면하려고 죽는 시늉을 할지도 몰라. 그럼 나는 그를 간호해주는 척해야겠지. 그러지 않으면 내게 죄책감을 주려고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어린 왕자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진 부자인 줄만 알고 있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가진 꽃은 겨우 평범한 장미꽃이군. 그리고 기껏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화산 세 개. 그중 하나는 영영 꺼져버렸는지도 모르는데, 그 정도 가지고는 대단한 왕자가 되긴 틀렸어……’ 그래서 그는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전기 작가의 증언에 따르면 “생텍쥐페리는 아내에게 멀어지면 곧 아내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수없이 되풀이되는 별거생활중에도 문득 예고 없이 꽃다발을 들고 아내를 찾아오곤 했다.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는 짧은 머리의 여인(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종이에 연필.

반면에 콘수엘로는 그의 저서 『장미의 기억』에서 유명한 작가의 아내 됨에서 맛보는 어려움과 고통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한 작가에게 그의 작품보다 더 개인적인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젊음과 재산과 사랑을 모두 바치고, 그가 좌절한 순간에 곁을 지키며 용기를 북돋아주었을지라도 결국 그렇게 헌신했던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토니오가 강연을 하고 나면 모든 여성 청중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비행 조종사이자 『야간비행』을 쓴 위대한 작가의 조언자이자 충실한 친구, 그를 이해하는 단 한 명뿐인 찬미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 순간에 아내인 나는 고개를 빼어들고 그에게 말해야 한다. “여보, 너무 늦었어요, 집에 돌아갑시다.” 게임은 끝이었다. 얼마나 심술궂고 둔한 여자란 말인가! (……) 나는 남편이 파티에 갈 때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죽인 뒤, 그를 찾으러 그의 친구 집에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러한 내가 무척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남편과 별거하며 파리 프롸드보 거리에 아틀리에를 얻어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가며 근근이 혼자 살고 있던 시절, 콘수엘로는 자신에게 찾아온 남편에게 마지막 남은 돈으로 샴페인을 사가지고 와 함께 마시고 나서 소리친다. “가세요. 저는 일하고 싶어요! 저는 자유롭고 싶어요. 더이상 노예 같은 구속은 참을 수가 없어요! 달마다 봉급 받는 당신의 부인이 되는 것도 그만 하고 싶어요!” 콘수엘로는 위의 책에서 이어 말한다. “그래도 나는 이 커다란 소년을 사랑했고, 이 사람은 내 남편이었다. 그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유로운 남편이 되기를 원했고 나는 집세와 전화요금과 식비가 필요할 때마다 그를 내 곁으로 부른 것을 후회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키스한 뒤 샴페인잔을 들고 서로를 영원히 사랑하기로 맹세했다. 그리고 그는 내 침대에 머물렀다. (……) 새벽 다섯시에 깨어났을 때 나는 내 방에 혼자 있었다. 그는 짧은 글과 자기의 초상화를 남겼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는 광대 그림. 얼마 후 나는 그 꽃이 다름아닌 나였음을 알게 되었다. 토니오가 『어린 왕자』에서 말한 거만한 꽃이었다.”

그러나 ‘장미’에 대한 직접적 해석을 넘어서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사실은 콘수엘로에 대한 생텍스의 깊고 솔직한 사랑을 『어린 왕자』에서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거기서 그녀가 없는 세상은 빛이 없는 세상이며 그들이 서로 나누어 가진 공동의 경험 때문에 자신은 항상 그녀에게 마음을 붙이고 지낼 것임을 인정한다. 장미꽃은 헤어지는 순간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인정하고 용서와 행복을 빈다. “나무라는 말이 없어서” 놀라는 어린 왕자에게 꽃은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넌 도무지 그걸 눈치채지 못하더라. 내 탓이지 뭐.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도 나만큼이나 어리석었어. 부디 행복해……”

이에 화답하듯 어린 왕자는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던 거야! 그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그 꽃은 내게 향기를 뿜어주고 마음도 환하게 해주었어. 절대로 도망을 쳐버리지는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 꽃의 대단치 않은 심술 뒤에 애정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꽃들은 앞뒤가 어긋나는 말을 너무나 잘 하니까! 하지만 난 너무 어려서 꽃을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장미에게서 멀어지면 어린 왕자의 마음속 평화는 불가능해진다. 그는 여우를 만나면서 마침내 자신이 장미꽃과 서로의 ‘필요’를 통해 영원히 서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우가 그에게 말해준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이제 어린 왕자는 『어린 왕자』의 핵심적인 주제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진실들 중 하나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누군가 수백만 수천만 개나 되는 별 중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그 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거야. 속으로 ‘저기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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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찾아서 김화영 저 | 문학동네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자이자 개성적인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으로 우리 문학계와 지성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온 김화영 선생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만났다. 이 책 『어린 왕자를 찾아서』는 『어린 왕자』를 번역하면서 ‘어린 왕자’를 태어나게 한 진정한 어른이었을 생텍쥐페리의 삶을 조망하고,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의미를 풀어냈다.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어린 왕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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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화영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치한 문장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탁월한 평론을 선보인 전 방위 문학인으로,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는 『지중해, 내 푸른 영혼』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로베르여 안녕』 『예술의 성』 『프랑스문학 산책』 『공간에 관한 노트』 『바람을 담는 집』 『소설의 꽃과 뿌리』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미당 서정주 시선집』 『예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흔적』 『알제리 기행』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프랑스 현대시사』 『섬』 『청춘시절』 『프랑스 현대비평의 이해』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노란 곱추』 『침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팔월의 일요일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짧은 글 긴 침묵』 『마담 보바리』 『예찬』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최초의 인간』 『물거울』 『걷기예찬』 『뒷모습』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이별잦은 시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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