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케아의 무언가가 얼마나 갖고 싶었던가. 쉽게 가질 수 없었기에 더욱 갈망했었다. 뉴욕에 가서 사는 친구의 방에 떡하니 들어앉은 빨간 이케아 소파를 보며, 그녀의 찬란했던 옷장 조립 후기를 듣고 부러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이케아 스타일이라고 하면 ‘무언가 디자이너스럽고, 우린 아직 가질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이며, 어쩜 그런 예쁘장한 가구들을 다 만들었나’ 싶은 로망 중의 하나였다. 심지어 디자인 시안을 잡을 때에도 “이 나뭇결 이미지는 이케아 가구처럼 고급스럽게 해주세요” 따위의 발언을 듣곤 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이케아처럼 “고급스럽게”라니! 창업자가 듣고도 놀랄 멘트다.
일단 팬시하고 예쁘다는 것 인정. 가격 대비 잘 만들어졌다는 것도 인정. 집이나 차, 배 같은 것 말고는 다 만들어 파니 제품의 다양성도 인정. 그런데, 웰메이드냐 라고 하면 그것까지는 살짝 자신이 없다(물론 인터넷에서 파는 만 오천 원짜리 대륙의 테이블 같은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북유럽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잘 가져다가 쓸모 있고 적당한 가격으로 만들어놓은 영리한 브랜드라고 할까?
이케아는 쇼룸에서 가구들을 골라 그들이 이곳저곳에 비치해놓은 이케아 연필로 사고 싶은 가구의 제품 넘버를 종이에 적은 후, 창고로 가서 스스로 찾아내어 계산대로 이고 지고 밀고 가는 시스템을 갖추어놓았다. “우리는 고객을 왕으로 떠받들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 고객이 직접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외치며 DIY를 행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신조다. 그래서 직원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이 자주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자신의 집 거실인 양 편히 앉아 올해 상반기 실적 평가 및 하반기 목표 설정, 내년 경영 계획을 다 세운 것이 분명한 아저씨, 자신의 집 거실에서 마음껏 뛰놀지 못했던 한을 멋지게 풀고 있는 어린이들, 어쩌면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아줌마들을 만날 수 있다.
쇼룸을 구경하다보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쥐 우리 정도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치명적인 지름신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날카롭게 훑고 지나가면서 대륙의 테이블이 놓여 있는 내 방에게 미안해진다. 집의 크기별로 쇼룸을 만들어 거실부터 부엌, 방까지 모조리 꾸며놓은 코너도 있다. 서랍을 열어보면 하나하나 작은 소품까지 모조리 이케아 제품으로 가득 차 있다. 집을 어찌 꾸며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을 때 그냥 여기 있는 것 다 벗겨서 주세요, 하면 쿨해 보일까?
이케아에서 파는 음식들은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가구들 뿐 아니라 음식에도 “이케아보다 싼 것은 가만히 서 있는 것뿐이게 하라”는 전략을 철저히 실행하고 있다. 특히 트레이드마크인 핫도그가 유명하니 핫하게 싼 맛에 한번 먹어봄 직하다. 다른 음식들의 맛도 그 정도면 썩 괜찮다.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셔틀도 무료이니 시간이 많다면 가서 한 끼를 때우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배도 채우고 눈도 즐겁게 한 후 쇼룸을 벗어나 뱅뱅 돌면서 내려오고 내려오고 내려오면 거대한 창고와 조우한다. 이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절대 바로 매장을 나갈 수 없다. 건물 내에서의 동선은 모든 물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봐야 하게끔 짜여 있다. 그 어떤 노선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미로와 같은 매장 구조다. 중간에 빠져나오려면 창문으로 투신하는 수밖에 없다. 교묘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가구를 산 다음에는 집까지 끙끙거리며 들고 와서 조립을 하게 된다. 설명서를 보고 나사를 조이고 번호를 맞추고 틈이 없나 확인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만들어놓고 나면 썩 자랑스러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의자에 앉았는데 “엇? 좀 삐걱거리잖아” 할 수도 있지만.
이케아에서 살 만한 것 중 하나는 패턴이 귀엽고 예쁜 이불 커버들이다. 지퍼가 달려 있지 않아 좀 펄럭거리긴 하지만 엄마들이 좋아하는 남사스러운 무늬가 아닌 꽤 세련된 패턴들을 만들어내니까. 그리고 가격이 싼 편인 조명기구들이 아주 적당하다. 자세히 보면 좀 저렴한 티가 나지만, 어두운 곳에서 불을 켜놓으면 예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전구가 오래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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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처럼 김나율 저/이임경 사진 | 네시간
디자이너이며 보통의 여행자인 두 저자가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 덴마크 코펜하겐 세 도시로 북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정에 얽힌 유쾌한 이야기, 먹고 즐기고 쉬기에 유익한 정보 등 여행지로서의 북유럽을 담으며 그들의 공간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필두로 독특한 문화와 날씨, 물가 등 다양한 관심 키워드를 다룬다. 보통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적당히 놀며 쉬며 접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북유럽 스타일의 감성으로 삶을 덜어내고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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