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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살다 죽을게, 넌 그렇게 살다 죽으렴

한 조각의 ‘다’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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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오늘 죽을 수도 있고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격하게 말하자면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산뜻한 해답이 나왔다. ‘늘 즐겁게 살자, 행복하게 살자, 감사하며 살자’라고.

intro _ 북극성을 바라보며 걷는다

무언가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는 사람을 보고 누군가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북극성을 향해 갑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걸으면 북극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환한 얼굴로 그가 답했다.
“북극성까지 못 가도 좋습니다. 다만 걷고 또 걸으면 죽을 때쯤엔 북극성 가까이에 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당신은 아무리 걸어도 북극성까지는 결코 못 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예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거나 정반대의 길로 향한다면 사는 게 너무 갑갑하지 않을까? 그냥 기웃거리거나 머뭇거리면서 우왕좌왕해서는 결코 북극성 근처에 갈 수 없다. 북극성을 바라보며 늘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북극성 가까이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시작은 비슷하지만 끝은 너무도 다르다. 우리가 바라보며 걸어가야 할 머나먼 별, 북극성은 희망과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그걸 바라보며 힘차게 걸어가는 길은 멀어도 행복하지 않겠나. 그 최고의 순간을 위해 우리는 멈추지 않고 그저 걸어가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

추워도 봄은 시작된다. 처음 만난 사이에 얘깃거리가 궁하다 보면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 지경에 이른다. 4지선다형인데도 그때마다 답이 달랐다. 이젠 요령이 생겼고 준비한 답은 이렇다. “다음 계절이요.” 겨울에는 봄, 여름에는 가을. 그야말로 긍정, 낙관적인 대답이 아닌가. 가장 좋은 계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간주하니 걸음조차 가벼워진다. 오바마 대통령도 말하지 않았던가.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The best is yet to come)’라고.

얼마 전 외동아들이 대학을 졸업했다. 어릴 적에 부모가 사다 준 《레 미제라블》을 읽고 난 후, 표지에 적힌 빅토르 위고와 번역자 이름을 가리키며 누가 더 돈 많이 버느냐고 묻던 녀석이다. 그때마다 아들에겐 ‘책 많이 읽으면 저절로 돈 많이 벌게 된다’는 대답을 해주곤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다독가’가 아니었다.

책 많이 읽었다고 뻐기는 건 밥 많이 먹었다고 자랑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나의 ‘궤변’은, 앙상한 독서력을 가리려는 자기변명의 일환이었다. 한때 입사지원자의 자기소개서에 ‘나를 키운 건 O할이 OO이다’라는 구절이 유행한 적이 있다.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 일부를 원용한 것인데(원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비록 책이 나를 키우지는 못했지만, 이를 나에게 적용시킨다면 1할 정도는 ‘신문지’에 배당할 의향이 있다. 신문이라 하지 않고 굳이 신문지라 한 것은, 신문에 세상이 담겨 있다면 신문지엔 세월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여섯 살 때 생모를 여의고 고모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이 서울 돈암동시장이었다. 교육 환경은 좋지 않았다. 집에 책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폭풍우 속에서도 등대는 보이는 법. 신문을 구독할 리 없는데도 가게엔 신문지가 널려 있었다. 물건 팔 때 싸주는 봉투 대용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거리는 바로 그 봉투가 되기 전의 신문, 아니 신문지였다. 심심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걸 읽기 시작했다. 읽어도 아주 꼼꼼히,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신문엔 성공한 사람도 나오고 실패한 얘기도 나온다. 실패로 잃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얻는 것도 있다. 바로 ‘실패의 경험’이라는 보석이다. 이런 깨달음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신문지였다. 어린 소년은 치정 사건의 개요도 읽고 시사만화도 보았을 게다. 당시엔 특히 영화 광고가 많았다. <아낌없이 주련다>, <맨발의 청춘> 등 영화 포스터를 가위로 오려서 노트에 붙이며 놀았다. 상상력이 커지는 시간이었다. 고모의 상술을 보며 배우는 협상력은 덤이었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음에도 벌써 열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매번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아 건넸다. 좋은 경험이었음은 물론이다. 매번 책을 펴낼 때면 조바심이 난다. ‘제목을 어떻게 달 것인가’가 그중에 제일 고민이다. 제목이 눈길에 닿아야 책에 손이 가고 책이 손에 닿아야 비로소 책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갑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건 그다음 순서다.

근래 서점에서 마주친 수많은 책 중에 제목 하나가 마음을 스쳤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을 입으로 내뱉는 순간 예전에 썼던 짧은 시(?) 하나가 떠올랐다. 제목은 없었다. 발표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굳이 제목을 짓는다면 인생, 저주, 작별 등을 제치고 ‘존중’이 적당할 듯하다).

난 이렇게 살다 죽을게.
넌 그렇게 살다 죽으렴.

그러고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얼마나 살 것인가’를 나에게 물었다. 우리는 누구나 오늘 죽을 수도 있고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격하게 말하자면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산뜻한 해답이 나왔다. ‘늘 즐겁게 살자, 행복하게 살자, 감사하며 살자’라고.

만나는 후배에게 인사처럼 던지는 질문이 있다. “괴롭히는 사람 없냐?” 문장은 하나지만 실은 두 가지를 물은 것이다. 첫째 너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둘째 네가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그러나 내가 준비한 답은 하나였다. 바로 자기 자신.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스스로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이젠 그만두라고 권하고 싶었다. 박람강기(博覽剛氣)도 아니요, 대단한 명문은 더더욱 아니지만 삶의 희망을, 긍정을 조금이나마 건네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펴내기로 했다.

몇 해 전부터 누가 사인을 청하면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라고 써주곤 했다. 그렇게 서로를 작게나마 응원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고민 끝에 그 말을 제목으로 정했다. 인쇄된 표지 시안을 보니 ‘지금부터’와 ‘다’를 떼어놓았다.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나는 다다이즘과는 다른 ‘더다이즘’을 말해왔으니 말이다(‘더다이즘’은 ‘더’ 잘사는 것도 좋지만 ‘다’ 잘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평소의 지론이다). 이왕이면 ‘더’보다는 ‘다’를 더 큰 글씨로 쓰고 싶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렵게 깨달은 한 조각의 단어였다(누군가는 무슨 구름 잡는 얘기냐며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구름 잡는 사람으로 살다 죽더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소박한 바람은 이것뿐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이들이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 다 행복하고 모두 다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래야 조금 더, 모두 다 좋은 날이 시작될 테니까.
2013년 봄, 주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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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 주철환 저 | 중앙m&b
한 자리에 말뚝을 박는 ‘집념’은 부족했지만, 매 순간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더 행복한 일을 선택하는 ‘잡념’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아온 주철환. 그는 “돈과 명예를 쫒아온 인생은 아니라서 ‘사회적 성공 비결’을 말해줄 순 없지만, 일상의 웃음과 행복을 발견하는 ‘긍정의 레시피’는 말해줄 수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인사 발령에서 ‘물 먹은’ 이와 낙방한 지원자를 위한 위로에서 ‘식물성’ 부부 혹은 친구 같은 아빠로 사는 법, 사랑할 때 버려야 할 것들과 같은 일상적인 레시피가 담길 수 있었다. 소중한 인연, 감동의 멜로디, 눈물의 순간이 만든 프로듀서 주철환의 행복한 인생 강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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