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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어보이 3년 만의 무대, 피로 얼룩져 - 런던에서 공연보기

제임스 맥어보이의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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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맥어보이의 ‘맥베스’ 캐스팅은 이른바 ‘스타 캐스팅’으로 통했습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으로 만나온 배우를 무대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죠. 실제로 그는 지난 2009년 이후 3년 여 만에 무대에 서는 것입니다.



제임스 맥어보이를 만나기 위한 호된 기다림의 시간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하는 연극 <맥베스>는 지난 2월 9일 시작돼 4월 27일까지 런던 트라팔가 스튜디오에서 무대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맥베스’는 소화하기 힘든 배역이기에, 캐스팅 자체에 배우의 연기력을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는 편인데요. 무엇보다 영화 <라스트 킹 오브 스코틀랜드> <비커밍 제인> <어톤먼트> <엑스맨:퍼스트 클래스> 등은 물론 BBC의 다수 드라마를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드러내 온 제임스 맥어보이의 ‘맥베스’ 캐스팅은 이곳에서도 이른바 ‘스타 캐스팅’으로 통했습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으로 만나온 배우를 무대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죠. 실제로 그는 지난 2009년 이후 3년 여 만에 무대에 서는 것입니다.

덕분에 <맥베스>의 티켓 구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리플릿을 본 것이 1월 말인데 그때부터 티켓 예매 사이트를 통해 구할 수 있는 모든 표는 ‘매진’이었습니다. 저는 별 수 없이 공연이 시작된 2월부터 수시로 극장을 직접 찾아가야 했습니다. 취소된 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였죠(물론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공연 관람이 예정되지 않은 토요일에는 데일리 티켓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 극장 앞에서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1시간 넘게 칼바람과 맞선 저는 16자리가 제공되는 토요일 데일리 티켓을 눈앞에서 놓치고(대신 감기를 얻었죠!) 비통함에 목 놓아 울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제 앞에 서 있던 4인 가족은 자리가 한 석만 남았는데(그래서 제 것이라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는데요!), 며칠째 데일리 티켓을 구하러 극장 앞에 왔다며, 어머니 혼자라도 보겠다고 낙찰을 보았습니다(그녀에게도 제임스 맥어보이는 ‘드림’이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들에게는 독특한 티켓 예매 방식이 있는데요. 바로 매주 월요일은 모든 자리를 단돈 15파운드(우리 돈으로 약 2만5천 원)에 제공하고, 매달 1일, 그 달의 월요일 티켓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저로서는 3월 1일에 운명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웹사이트와 현장판매가 가능한데요. 이들의 웹을 믿지 못하는 저로서는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비까지 내린 금요일 아침, 극장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이들은 직장도 학교도 가지 않는지,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1시간, 2시간... 단 두 명의 직원이 날짜와 좌석, 이름과 연락처까지 물어보는 그들의 티켓팅은 쉽게 인파가 줄어들지 않게 합니다. 이러다 좌석을 구할 수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언 몸과 굳은 다리를 독려합니다. 그렇게 3시간 30분, 런던에서 제임스 맥어보이를 만나기 위한 특별한 경험이라고 하기에는 심신이 무척 고단할 무렵, 마침내 티켓을 구했습니다. 물론 저는 몸살로 앓아누워야 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Macbeth)>

<햄릿> <오셀로> <리어왕>과 함께 셰익스피어 4대 비극으로 불리는 <맥베스>는 정치적 욕망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심리 변화의 극단을 보여줍니다. 한껏 욕심을 부리며 악행을 마다하지 않지만, 그만큼 정신적으로 고통 받으며 결국에는 스스로 파멸하죠.

반역을 제압한 맥베스와 뱅코 장군은 숲 속에서 세 마녀를 만납니다. 이들은 머지않아 맥베스가 코도어 영주가 된 뒤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르고, 뱅코의 자손이 왕이 되리라 예언하죠. 왕이 보낸 전령이 맥베스가 코도어 영주로 책봉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맥베스는 자연스레 마녀들의 예언에 말려들기 시작합니다. 그의 아내는 산란한 그를 부추깁니다. 하여 부부가 함께 덩컨 왕이 그들의 성을 방문한 날 왕을 살해하죠. 두 왕자가 국외로 탈출하자 맥베스는 어렵지 않게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맥베스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예언을 함께 들은 뱅코,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뱅코의 자손이 눈에 밟힙니다. 맥베스는 뱅코와 그의 자손을 없애기 위해 자객을 보내는데요. 뱅코만 살해되고 그의 아들은 도망쳤다는 말에 분노와 불안이 하늘을 찌릅니다.

왕과 친구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맥베스는 괴롭습니다. 그는 뱅코의 환영을 보는가 하면 날로 거칠고 포악해집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맥베스는 온건한 신하 맥더프의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도 살해하는데요. 맥베스의 부인 역시 심리적인 고통을 겪다 결국 정신이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왕이 됐지만 모든 것을 잃은 맥베스는 덩컨 왕의 아들 맬컴 왕자가 이끄는 군대에 맥없이 무너지고 맥더프에게 목숨을 내놓게 됩니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맥베스>

제임스 맥어보이를 무대에 올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맥베스>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물론 그는 연기력이 입증된 스타 배우, 티켓 파워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로 살펴볼 때는 그가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점, 누구보다 맥베스를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공연 관람 때 제 옆에 앉은 여인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관광객이었는데요. 그녀는 평소 ‘맥어보이의 스코티시 발음에 열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영국이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발음은 꽤나 차이가 있는데요. <맥베스>의 배경은 스코틀랜드입니다. 그래서 잉글랜드 출신 배우들이 연기할 경우, 조금 과장하자면 마치 번역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군요(저에게는 모든 영어가 어렵습니다!). 현지 언론들도 강한 스코티시 악센트가 점령한 이번 <맥베스>에 일단 흡족한 모습입니다. 게다가 맥어보이의 표정 연기는 압권이죠. 저는 무대에서 꽤 가까운 자리에 앉아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요. 광기와 불안, 욕심과 고뇌로 번갈아 치닫는 그의 연기는 티켓을 사느라 3시간 이상 기다린 저의 노력을 보상하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과한 면도 있습니다. 역대 가장 ‘피가 낭자한 <맥베스>’로 꼽히는 이번 연극은 콘크리트 벙커가 주 무대입니다. 마녀들은 군대 위장복에 가스 마스크를 쓰고 있고, 맥어보이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도 전투 차림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 몸에 피를 묻히고 있습니다. 천정에서 피가 흩뿌려지는가 하면 마지막 장면에서 맥더프는 맥베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무대를 활보하는데요. 무대 연출이 원작과 달라지면서 필요 이상의 잔혹한 장면이 넘쳐납니다. 맥어보이 역시 역대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맥베스’였는데요. 살을 찌워 스크린에서 본 것보다는 나이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신사답고 깔끔한 맥어보이만 봐 왔던 저는 광기가 아닌 섬세함으로 떨리는 그의 눈동자가 그리웠습니다. 어쨌든 런던에 머무는 동안 제임스 맥어보이가 캐스팅된 연극을 본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그가 출연한 영화 <테이크다운>이 4월 개봉을 앞두고 있고, <트랜스>도 곧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겠죠? 그러고 보니 제임스 맥어보이, 2013년 가장 ‘핫’한 배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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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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