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가까이에서 유혹한다, <마마 돈 크라이>
충무아트홀 중극장블랙은 반원형의 낮은 무대가 특징이다. 무대를 둘러싼 객석은 무대와 초근접해 있어 배우들의 세밀한 표정 연기는 물론 땀방울까지도 HD급으로 캐치할 수 있다. 물론 눈높이나 내려다보게 되는 무대는, 저 멀리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 무대, 혹은 배우의 아우라를 감소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눈앞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실감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배우와 눈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클로즈업 무대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 연기하고 노래한다면? 팬들에게는 더없이 황홀한 무대가 아닐 수 없다. 미남 배우 두 명의 열연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마마 돈 크라이>는 그런 황홀함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송용진, 고영빈, 장현덕, 허규, 임병근의 팬이라면, 당장 충무아트홀로 달려가 중극장의 맨 앞자리를 사수할 일이다.
물론, 이들의 팬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만한 요소가 있지만, 서사 보다는 두 배우의 캐릭터와 역량을 강조한 콘서트 뮤지컬 형식인데다가 실제로 배우들이 객석 가까이 다가와 아낌없는 팬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음침한 분위기, 비장미 넘치는 노래, 두 미남이 한껏 뽐내는 메트로섹슈얼 매력은 작정한 듯이 여심을 공략한다.
이를 방증하듯, 객석에 대부분이 여성이다. 미성의 배우가 들려주는 세레나데, 마이클잭슨을 불사하는 섹시한 댄스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야기의 서사를 중시하는 관객에게는 맥락 없이 이어지는 콘서트 무대가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드라큘라, 저도 사랑받는 남자가 되고 싶어요.”
열두 살에 대학에 입학, 열여덟에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 과학자 프로페서 V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거부하고 기자회견을 자청한다. 그 자리에서 수상을 거절한 이유이자 자신의 비밀을 밝힌다. 바로 자신과 드라큘라와의 관계를 폭로한다. 천재라고 불렸지만, 보통 사람은 되지 못한, 외로웠던 소년. 인기 없고 사랑받지 못한 소년은 자신이 만든 시간 여행 기구를 통해 과거의 드라큘라 백작을 찾아간다.
당시 수많은 여성을 매료했던, 여전히 많은 영화와 문학 속에서 되살아나 유혹을 멈추지 않는 드라큘라. 프로페서V는 그에게 절박하게 외친다. “저도 사랑받고 싶어요.” 드라큘라의 사랑은 프로페서V에게 구원이 된다. 그의 사랑이 프로페서V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드라큘라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고 프로페서V는 달라진다. 이제 그는, 모든 여자를 사로잡는다.
매력남으로 거듭나기 위해 드라큘라가 어떤 가이드를 제시해줬느냐고? 궁금하다면, 극장으로 고. 5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된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프로페서V 역의 송용진은 혼신의 연기와 더불어 시원한 가창력으로 객석을 들썩이게 한다. 고영빈의 드라큘라는 중후한 중저음으로 섹시한 매력을 뽐내고, 장현덕의 드라큘라는 싸늘하고 음침하게 치명적인 유혹을 그려낸다. 이미 뮤지컬을 본 사람이라면 조금 더 곱씹어보자. 도대체 프로페서V는 왜 자꾸 엄마한테 미안해하는 걸까?
프로페서V의 아버지는 지하실에 자기만의 신전을 만들어놓고, 대부분 시간을 그 안에서 행복해하는 몽상가였다. 어린 프로페서V는 그런 어머니가 늘 외로웠고 불쌍해 보인 모양이다. 헌데 평균으로 불리는 보통 남자가 되지 못한 프로페서V, 어머니가 맺어준 소개팅에서도 번번이 퇴짜를 맞고, 결혼하기 싫어서 게이 흉내를 내기도 하는 등 어머니가 기대한 아들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런 그를 슬프게 바라보는 엄마에게 그는 말한다. “Mama, don’t cry. I’ll be a good boy.”
프로페서V, 엄마한테 미안해마요
어머니에게서 나온 아들은, 어머니의 일부로서 성장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되는 일, 성장하는 일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연출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다 큰 프로페서V가 엄마한테 계속 미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식이 성장하면서 이전과 달라지는 건, 변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한 주체로 완성되는 거니까. 엄마도 아들도 서로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독립은 당연한 순서니까.
오히려 여기서 외쳐대는 엄마(mama)는 프로페서의 친엄마를 지칭하기보다, 프로페서V의 마지막 양심, 마지막 순정이라고 보는 게 낫겠다. 그의 변신이 유혹에 의한 것이고, 부정한 행위를 통해 벌어지는 일이기에, 그는 그때마다 목놓아 mama를 부른 게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 순정에게 “더는 울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좋은 사람? 그보단 좀 더 나다운 사람이 되도록
프로페서V가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그는 어려서는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고, 지금도 ‘good boy'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다짐은 이뤄지지 않을 확률이 크다. 그 스스로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프로페서V의 모든 비극은 그의 이 두루뭉술한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그는 드라큘라를 찾아가서 “사랑받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때 그가 정확하게 원하던 것은 “첫사랑 매텔의 사랑을 얻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가 모든 여자에게 사랑받아도 언제나 허전한 까닭은 진짜 원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추상적이고 모호한 일이다. 누구에게 좋은 사람이 돼야 할까?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구분될까? 규범에 맞는 사람? 사회 평균치? 좋은 사람보다는 좀 더 나다운 사람이 되는 편이 낫다. ‘좋다’는 것만큼이나 ‘나다운 것’을 찾는 일은 만만치 않지만, 최소한 후자의 것이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이다.
프로페서V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 모습이, 과연 나다운 것일까? 내가 원하는 모습과 좀 더 나다운 모습은 괴리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나, 그러니까 많은 남자의 혼을 빼놓고, 언제나 씩씩하고, 매력이 철철 넘치는... 모습은 좀 허황된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내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때때로 필요 이상의 목표를 갖고 산다. 하지만 모든 바람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내가 정말 원하는 ‘어떤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공허해질 거다. 프로페서V처럼. 그뿐이랴. 큰 걸 바라면, 대가도 크다는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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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사족.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마 생각이 많이 났다. 남편도, 아들도 자신의 기쁨이 되어주지 않아서 늘 울었다는 그 마마. 드라큘라 백작을 만났어야 하는 건, 정작 마마가 아니었을까. 마마도 부디 삶의 즐거움을 찾으시길. 드라큘라 백작과 상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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