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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 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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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동안 갑자기 세차게 쏟아졌다가 그치는 비처럼, 어느 가을날 한줄기 소나기처럼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 소년과 소녀의 안타깝고도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소나기』는 황순원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이다. 오늘(3월 26일)은 소설가 황순원이 태어난 날이다.
그는 원래 시인에서 출발하여 소설로 정착하였으며, ‘시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형 문장을 사용하고 직접적 대화보다는 감각적 묘사와 서술적 진술, 그리고 옛날 이야기나 전설을 현재의 사건과 융합시키는 환상적인 수법을 통해 소설에 설화적 분위기를 부여했다. 『소나기』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 황순원이 가족들과 함께 피난처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황순원은 1915년 3월 26일,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태어났다. 만 4세 때 그의 부친은 3.1운동 때 평양 숭덕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한 일로 1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한다. 1921년 만 6세 때 가족 전체가 평양으로 이사하고, 만 8세 때 숭덕소학교에 입학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으며 자라났다.
1929년에는 정주에 있는 오산중학교에 입학했으며, 그 이듬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첫 발표는 1931년 7월 『동광』 을 통해서인데, 「나의 꿈」이라는 시가 그 등단작이다. 이후 중학교 시절 거듭 시를 발표하다가 1934년 졸업과 함께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와세다 제2고등원에 입학한다. 여기서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 연구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하고, 이 단체 명의로 27편의 시가 실린 첫 시집 『방가』를 간행하였다.
1935년 1월에는 평양 숭의여고 문예반장 출신으로 일본 나고야 금성여자전문 재학중인 동갑의 처녀 양정길과 결혼하였으며, 황동규 시인을 비롯 3남 1녀를 낳았다. 1936년 와세다 제2고등학원을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 황순원은 두 번째 시집 『골동품』을 출간한다. 그의 소설은 1937년 7월 『창작』 제3집에 발표한 「거리의 부사」가 첫 작품이다. 원고지 30장 정도의 길이인 이 작품은 동경에서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며 사는 조선인 유학생의 궁핍한 일상을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듬해 10월에 「돼지계」를 발표하고, 이 두 작품을 비롯해서 창작 연대가 확실치 않은 다른 11편의 단편을 함께 묶어 그로부터 3년 뒤인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을 출간하였다.
일제의 간섭을 피해 1943년부터 고향 빙장리에 머물러 있던 황순원은 해방되고 9월에 평양으로 돌아가지만, 곧 공산 치하에서 지주 계급으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이듬해 가족들과 월남한다. 그해 9월에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취임한다. 그때까지 가끔 시도 쓰고, 주로는 단편소설도 써왔는데, 처음으로 장편 구조를 가진 『별과 같이 살다』를 부분적으로 발표했다. ‘곰녀’라는 한 여성의 육체적 신분적 수난을 중심으로 일제 말기에서 해방전후의 열악한 시대상황을 부각시키고 있는 이 작품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은 1952년의 일이다.
1948년에는 7편의 단편을 수록한 『목넘이마을의 개』를, 1951년에는 「별」 「그늘」 등이 수록된 소설집 『기러기』를, 1952년에는 11편의 단편을 담은 단편집 『곡예사』를 출간했다. 이듬해인 1953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학」과 「소나기」가 발표되었다. 이후 「학」은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총 14편 단편소설을 수록한 단편집 『학』으로 출간된다. 1956년 말에 발표된 이 작품집 속에는 전쟁을 겪으면서 생명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 작가의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1953년 9월부터 『문예』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5회를 연재하고, 잡지는 폐간되지만 작가는 그 뒷부분을 따로 써두었다가 이듬해 겨울에 단행본으로 출간한
『카인의 후예』는 그를 단편 작가로 머물지 않게 한 작품이다. 평양에서 지주로 살던 작가 집안이 북한 공산주의 체제가 성립되면서 뿌리뽑힘을 겪어야 했던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고 알려졌다. 이 시기의 북한의 실상을 다루면서도 오작녀, 도섭 영감 등 토착적 삶을 배경으로 하여 급박하게 변화를 겪으며 살아 움직이는 인간상을 창조하여 존재의 의미와 사랑의 가능성을 묻고 있는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57년부터 경희대학교에 부임하여 문학적인 분위기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확보한 상태에서 더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다. 경희대학교에서는 특별한 보직 없는 평교사로 23년 6개월을 봉직하고 또 말년까지 계속 명예교수로 있었다. 이 시기에 단편집 『잃어버린 사람들』과 『너와 나만의 시간』, 『탈』,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 『움직이는 성』,『신들의 주사위』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1985년에 고희 기념집으로 낸 『말과 삶과 자유』 는 수필류를 쓰지 않은 황순원 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산문집으로, 그의 인생관, 문학관, 미래관 등을 엿볼 수 있는 짧은 산문들로 채워져 있다.
예술원 원로회원을 역임했고, 아시아 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 문학상, 인촌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경희대학교 국문과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많은 문인들을 배출해냈으며, 2000년 9월 14일 86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소설가인 아들(황동규)과 딸(황시내)가 있다.
※ 황순원의 대표작 ※
소나기 : 황순원 단편집
황순원 저/강우현 그림 | 다림
만약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음직한 이성에 대한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처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동묘사를 통해 내면의 심리를 두드러지게 하는 수법으로 영상처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소나기』에서도 소녀와 소년의 심리가 행동묘사로 독특하게 처리돼 있다. 또한 물의 이미지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 변화가 소설의 구성을 단단하게 해주는 묘미가 있는 단편소설이다.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카인의 후예
황순원 저 | 문학과지성사
창작 기간 내내 인간의 정신적 순수성과 아름다움,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을 지지한 작가 황순원. 앞서 나온 그의 단편선 『독짓는 늙은이』에 이어 황순원 문학의 만조(滿潮)를 이룬 장편소설 2편을 가려 뽑았다. 격동의 역사인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체득하면서 특유의 절제되고 간결한 문장으로 예술적 서사성을 풀어낸 황순원은, 변함없는 구체적 인물의 형상화를 통해 깊이 있는 감동의 세계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독 짓는 늙은이 외
황순원 등저/이연숙 등해설 | 하서
『독 짓는 늙은이 외』는 한국 대표 작가들의 단편 소설을 한권으로 묶은 「골드북스 시리즈」 중 12권이다. 황순원, 김동인, 나도향, 현진건 등 한국 문학 역사상 크게 공헌한 대가들의 소설집을 ‘문고판’의 사이즈로 제작해 보다 편리하게 작품을 감상하도록 도왔다. 이와 함께 현직 교사들의 생생한 작품 해설로 보다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산골아이
황순원 글/정혜정 그림 | 가교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함빡 쌓인 산골 마을에는 누군가 살포시 발자국을 찍어 놓았다. 그 길을 따라 불켜진 그 집에 들어가면 화롯가에 군밤이 구워지고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손자녀석은 턱을 괴고 그래서요? 하면서 궁금해하는 눈망울을 굴릴 것만 같다. 동화를 읽고나면 표지가 주는 느낌과 동화가 전달하는 느낌이 다르지 않다는, 그 포근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
황순원 저 | 문학사상사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다룬 최초의 본격 장편소설. ‘수난을 통해 구원’으로 이르는 사도 바울적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황순원 문학의 창조적 정력이 절정으로 표출되던 40대 중반기의 대표작이다. 비탈에 선 나무처럼 6?25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에 상처받고 몸부림치면서도 끝까지 구원의 삶을 갈망했던 젊은이들의 희생과 수난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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