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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인의 기마병이 2천 명의 보병 궤멸 시켜

유목민은 방랑자가 아닌 전문적인 직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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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힘든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은 ‘다 때려치우고 유목민이나 될까’ 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유목민의 삶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유유자적하지 못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가축들을 돌보고, 가족과 공동체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여기저기 떠도는 여유로운 삶을 사는 방랑자가 아니라 매우 전문적인 직업인이다.

유목민은 방랑자가 아닌 전문적인 직업인

‘유’라는 글자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한자는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출유出遊나 유학遊學에서의 의미, 즉 ‘나간다’라는 의미다. 유목에서 ‘유’는 이동, ‘목’은 목축을 가리킨다. 즉 ‘이동 유목민’이라는 뜻이다.

높고 맑은 하늘, 바람이 녹색 대지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지나는 여름의 초원은 멋지다. 이때 말을 타고 초원을 질주하면 하늘과 땅이 내 몸과 하나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천국이 따로 없다. 그러나 일단 겨울이 되면 지옥으로 변한다. 혹독한 추위에 유목민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그저 참고 견디는 것뿐이다. 이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유목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유목민의 세계는 실로 거칠고 능력주의ㆍ실력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습득해야 하는 능력은 말을 잘 타는 것이다. 또 기상이나 자연환경 전반에 민감해야 한다. 가족이나 가축에 대한 주의 깊은 시선과 배려는 물론 계획성과 인내력, 순간적인 판단력과 과감성이 필요하다. 이렇게 유목민은 집단에 대한 귀속성과 강한 개인의식, 얼핏 모순처럼 느껴지는 두 가지 면이 개인의 인격 안에 공존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종종 힘든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은 ‘다 때려치우고 유목민이나 될까’ 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유목민의 삶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유유자적하지 못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가축들을 돌보고, 가족과 공동체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여기저기 떠도는 여유로운 삶을 사는 방랑자가 아니라 매우 전문적인 직업인이다.


기마의 위력

말을 타고 활을 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사. 기동성과 전투력을 가진 말. 이렇게 전사와 말로 이루어진 팀은 현대의 고성능 초음속 폭격기와 파일럿에 비유할 수 있다. 둘 다 매우 고가이며 희소성이 높고 다른 팀과 비교하기 어려운 정예이며 뛰어난 파괴력 등을 지니고 있다.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는 기마는 비록 단기單騎라고 해도 그 위력이 대단했다. 그것이 백, 천, 만기로 전투에 동원되면 실로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보병으로 구성된 군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송나라 때 말을 필사적으로 구입해야 했던 이유를 주제로 그에 투입된 재정과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사료를 통해 분석하고 종합한 미국인 동양학자 폴 J. 스미스Paul J. Smith는 저서 《천부天府에 과세를 해서》(하버드대학 출판국, 1992년)에서 12세기 초반에 발생한 작은 사건을 사례로 든다.

북송이 숙적 키타이Qitai의 요제국을 신흥 여진족이 세운 금왕조와 연합해 타도한 직후의 일이었다. 금왕조의 17기로 구성된 강화사절단이 본국과의 연결을 위해 북쪽으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북송의 군사지휘관이 전공을 세우기 위해 2,000명의 보병을 이끌고 이들을 습격했다.

무장하고 있던 17기는 곧바로 중앙에 7기, 좌우 날개에 5기씩 세 부대로 분열했다. 숙달된 전투 대형이었다. 이 작은 세 부대는 말 위에서 활을 쏘며 적을 교란시켰다. 2,000명의 보병은 완전히 농락당했고 결국 궤멸당하고 말았다. 금왕조는 17기 중에 단 1기도 잃지 않았다. 이것은 북송의 기록에 남아 있는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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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저/이경덕 역 | 시루
이 책은 그동안 야만족, 미개인이라고 치부되었던 유목민들이 은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아시스에 사는 정주민들의 고립을 막아주는 문화 교류자였으며, 그들이 사용한 아람어가 소그드문자를 비롯해 위구르문자와 만주문자, 한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등의 그동안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그동안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왜곡, 축소되었던 유목민들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짚음으로써 동과 서로 단절되었던 세계사를 연결시켜 비로소 역사의 실체를 마주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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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스기야마 마사아키

1952년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교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교토여자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 교토대학 교수다. 주요 연구 주제는 몽골 시대사로 일본 내에서 몽골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1995년 《쿠빌라이의 도전》으로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했고, 2003년 시바료타로상, 2006년 《몽골제국과 대원 울루스》로 일본학사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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