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피아니스트와 까칠 칼럼니스트의 특별한 만남
낭만시대를 살아간 음악가들의 뜨거운 교류와 삶을 이야기하다
“예전에 준호 형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너희 집에 피아노가 있으니까 같이 뭔가 해보면 어떻겠냐’ 파리나 비엔나, 베를린에 예술가들이 모여서 교류하는 것처럼 우리도 해보는 게 어떠냐는 거였어요. 연주자는 연주만 하고 평론가는 평론만 하는 게 아니라 말이죠. 제 생각에도 우리가 그 시작이 되어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우리의 잔치에 관객을 초대하는 느낌으로요.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하고 싶어요.”
기자는 문외한이라 할 것까진 없지만 애호가라 할 수도 없는 대중적인 수준의 클래식 감상자다. 그런데 혼자 카페에 앉아 고즈넉이 음악 감상할 여유가 없다며 스스로 나무라던 어느 오후에 문득 <윤홍천, 정준호의 낭만시대>라는 공연 포스터에 눈길이 갔다. ‘Romanticism'이라는 주제와 ‘멀리 있는 연인에게’ 라는 부제, 그리고 독일 바이에른 주 문화부장관으로부터 ‘젊은 예술가상’을 받으며 독일 음악을 더 잘 해석하는 남자로 평가받는 피아니스트 윤홍천과 클래식 라디오 채널의 진행을 맡고 있는 칼럼니스트 정준호의 조합이라... 그 연결고리가 몹시 궁금해졌다.
윤홍천 : 고전주의 음악에 어떤 틀이 있었다고 보면 베토벤은 그런 형식에 얽매였다가 나중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아졌어요. 또 슈만의 환상곡을 봐도 지극히 자신의 개인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곡이고요. 낭만시대 음악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미있었고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아서 좋았어요. 또 준호 형도 작곡가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걸 좋아해서 같이 얘기하다가 낭만시대로 정하게 됐어요.
정준호 : 모든 시대 안에 다 낭만성이 있잖아요. 예술사라는 게 뒷날에 그은 선에 불과하니까요. 고대 그리스나 바로크 시대에도 낭만적인 면이 당연히 있지만 유독 19세기 전반에 시작해서 후반까지 이어지는 낭만주의 시대가 다른 시대와 달랐던 건 예술가가 자기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었죠. 바흐나 모차르트는 자기 작품의 주인공은 아니었어요. 신이나 귀족을 위한 음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베토벤의 ‘운명’은 자신의 운명을 나타낸 거고, ‘영웅’도 자신이 영웅인 거고, ‘전원교향곡’에서 전원을 산책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죠. 예술가가 자아의 정체성을 인식했던 시기라는 거고요. 거기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연결해보자는 거죠.
사실 두 남자, 뭔가 함께 작업하자는 데에서 시작한 얘기의 합이 낭만시대로 이끌었단다. 그만큼 그들이 할 이야기가 많다는 뜻일 터.
멀리 있는 연인에게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베토벤과 슈만, 리스트의 뜨거운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콘서트, 사실 ‘멀리 있는 연인에게’라는 베토벤의 곡만 떠올려도 당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궁금해진다.
윤홍천 : 사랑의 얘기가 있죠. 슈만의 곡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하고요. 낭만이라는 말 자체가 사랑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작품과 해설을 통해 깊이 있는 낭만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 같고요. 다만 달콤하고 그런 얘기만은 아니라는 걸 아시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음악가의 사랑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건 사실이다. 그들의 사랑 새로 배어나오는 숱한 명곡들만 봐도 그렇고.
정준호 : 베토벤이 얼마나 사랑에 목말랐던 사람인가에 대한 얘기가 있죠. ‘멀리 있는 연인에게’라는 곡을 작곡하기 4년 전에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썼는데 그러면서 영혼이 많이 피폐해진 것 같아요. 46살인데 나는 왜 혼자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있을 거고요.
윤홍천 : 리스트는 사랑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죠. 하지만 베토벤과 슈만은 사랑을 아이디얼리즘으로 본 것 같아요.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 가사를 보면 ‘가고 싶지만 너에게 갈 수 없고, 나의 노래를 너에게 전달하리라.’ 이런 구절이 있는데요. 저도 그래서 이 곡을 연주하면서 저의 개인적인 경험보다는 사랑 자체, 낭만 자체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애절했던 사랑과 삶에 대한 열정을 음악에 담은 낭만시대 특별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잘 들으려면 베토벤과 슈만, 리스트의 신상명세 정도는 익히고 가는 것이 좋겠다.
클래식의 대중화에 대한 담론
칼럼니스트 정준호는 말한다. 이번 공연이 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진지한 청중과 멋진 음악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서 말이다.
정준호 : 어느 라운지에서나 흘러나오고, CF에서도 흔하게 나오는 게 클래식이잖아요. 클래식은 대중 속에 이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중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홍천 :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보통 대중적인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가잖아요. 제가 이런 콘서트를 준호 형과 하고 싶었던 이유가 클래식을 쉽게 풀어주는 것으로만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콘서트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클래식 대중에게 새로운 파장을 형성하도록 말이죠.
그래서 평소 강의하는 문화 강좌시간에도 내용이 어렵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 정준호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한다. 한 번에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곡들은 많지 않다고, 하지만 지금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더 여지가 있는 곡들이라고 말이다.
들리는 것 너머의 이야기
그런데 참, 이 두 사람 보통 사이는 아닌 듯싶다. 까칠한 말투임에도 피아니스트 윤홍천을 연신 토닥이는 칼럼니스트 정준호, 윤홍천 역시 정준호를 형이라 부른다. 기자와 아티스트로서의 첫 만남 이후 나이차를 넘어 친구가 된지 벌써 9년 째. 윤홍천의 음반 부클릿에 애정을 듬뿍 담은 정준호의 글만 봐도 알겠다.
윤홍천 : 사람이 친해지면 일을 안 하는 게 좋잖아요. 그런데 형과는 꼭 같이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의 연주에 해설을 한다면 준호 형이 적격이 아닐까, 그리고 준호 형의 해설에 저의 연주가 잘 맞지 않을까 생각했죠.
정준호 : 제가 음악잡지 기자를 할 때 기자와 음악가로 만났지만 그건 최소한의 끈이었지 그 이후에는 음악과는 무관했던 것 같아요.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요. 서로 공연이나 행사가 있으면 서로 가고요. 홍천이는 진지하고 속 깊은 동생이죠.
아티스트와 칼럼니스트라는 관계를 넘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는 음악적 동료로 이번 무대를 준비한다는 것만으로도 ‘프리미엄 클래식’ 딱지를 붙일 만하다. 그래서 <윤홍천, 정준호의 낭만시대>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윤홍천 : 예전에 준호 형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너희 집에 피아노가 있으니까 같이 뭔가 해보면 어떻겠냐’ 파리나 비엔나, 베를린에 예술가들이 모여서 교류하는 것처럼 우리도 해보는 게 어떠냐는 거였어요. 연주자는 연주만 하고 평론가는 평론만 하는 게 아니라 말이죠. 제 생각에도 우리가 그 시작이 되어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우리의 잔치에 관객을 초대하는 느낌으로요.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하고 싶어요.
그럴 것이다. 이번 그들의 무대가 쉽고 재미있기만 하진 않을 거라면서도 이미 파워포인트로 사진과 각종 자료를 꼼꼼히 준비해 음악을 지루하게 들을 틈이 없도록 준비한 ‘준호 형’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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