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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남편이 얼굴 보고 도망갔지만… - 뮤지컬 <날아라, 박씨>

화려한 뮤지컬 무대? 속사정은 좀 달라요 ‘오늘의 할 일’에 치여 ‘내일의 꿈’이 가물가물해질 지경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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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는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가학적인 노력보다도, 지금의 내 모습도 인정할 수 있는 자존감이다. 좋은 걸 얻으려 할수록, 공들여야 하는 시간은 훨씬 더 기니까. 우리는 고3 시절에 선행체험을 했는데도, 늘 이 사실을 잊는다. 열매의 달콤함은 짧고, 그걸 위한 고행의 시간은 길다는 것. 간절히 원했던 것을 다행히 이뤄냈더라도,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무한한 기쁨이 아니라 더 높은 목표 앞에 던져진다는 것 말이다.

‘오늘의 할 일’에 치여 ‘내일의 꿈’이 가물가물해질 지경이라면


새 뮤지컬 한 편을 올리기 위해 오늘도 분주하게 준비하는 배우와 스탭들, 성공적인 프리뷰 무대를 올리고 자축하는 자리에서 컴퍼니 매니저 오여주는 관객에게 이렇게 귀띔한다. “마냥 좋아 보이는 이들, 하지만 내가 아는 속사정은 다르다.” 이야기는 스탭과 배우들의 첫 미팅, 긴장감 넘치고 경계심 가득한 그 자리로 돌아간다. 뮤지컬 <날아라, 박씨>는 무대 그 앞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음악감독과 작가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 만만치 않은 배우 섭외부터 좌충우돌 연습까지 재능 있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선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꿈꾸듯 열창하는 배우의 솔로 무대! 극 중 오여주의 말처럼 “뮤지컬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을 편집하고 압축한 무대”는 여러 사람의 꿈이다. 고민에 빠져 있다가도 노래 한 곡으로 무릎을 탁 치고 일어서고, 선남선녀들이 군무를 펼치며 삶을 즐겨보자고 노래하는 뮤지컬은 판타지 그 자체다. 거기서는 꿈꾸는 게 그대로 펼쳐진다. 모든 것이 정지되고 내 눈앞에 그 사람만 보이는 사랑의 순간도, 나만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은 외로운 순간도 눈앞에 그대로 표현된다. 보기만 해도 떨리고 설레고 내 이야기 같은데, 직접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는 오죽하랴!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지고 나면, 그 배우들에게도 무대와는 또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배우들 간의 질투, 스탭과의 갈등, 재능에 대한 고민, 진로 걱정. 이 삶의 과제는 배우건 관객이건 예외가 없다. 다만, 이 현장은 좀 더 극적일 뿐이다. 누구나 같은 꿈을 안고 한 무대로 모여들었는데, 야속하게도 이 무대의 주인공은 한 명뿐이니 말이다. 실력만 갖춘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타고난 키와 몸매, 혹은 아이돌의 인기 같은 걸 지닌 ‘듣보잡’이 불현듯 등장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어느 무명의 앙상블 배우를 좌절시키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노력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값진 것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대처하는 삶의 태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앞에 닥친 할 일을 해치우느라 급급하게 살다 보면, 어느새 꿈같은 건 가물가물해지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멘탈 붕괴의 수순은 당연하다. 이건 배우뿐 아니라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겪게 되는 일이다. 어떤 확신을 쥐고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막상 서 있는 길의 좌표를 알 수 없을 때. 앞길도 막막하고, 뒤돌아봐도 깜깜하기만 한 그때, 배우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간절히 바라던 게 신기루처럼 사라져가는 것만 같고, 아무리 소리쳐도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무도 몰라 준다”고. “두렵고 서럽다”고. 내 일기장에 혹은 당신의 일기장에 적혀있는 그 이야기를 <날아라, 박씨>는 꿈을 좇는 뮤지컬 단원들을 통해 들려준다.

이 작품은 2009년 창작 공모전에서 당선된 대본과 음악으로 제작됐다. 오늘날 공연에 이르기까지 배우와 스탭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면서 얼마나 짜릿했고, 불확실한 것들에 부딪혀가며 마음을 졸였을까? 공연 보는 내내, 공연 뒤에 있는 스탭들 생각이 났다. 대사도 노래도 시종 꿈을 품었던 초심을 두드리는데, 배우들에게도 남다른 의미의 작업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이야기는 더 간절하고, 노래는 진심으로 다가온다.


뭐든지 잘하는데, 예쁘지 않아서 슬픈 박씨 부인


이들이 준비하는 공연, 극 중 극으로 펼쳐지는 박씨 부인 이야기도 흥미롭다. 못생겼으나 현명하고 지혜로웠던 ‘박씨부인전’이 원작이다. 진정한 사랑을 얻으면 액운이 다해 미녀로 거듭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붙들고, 박씨 부인은 오늘도 인내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남편은 첫날밤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갔고, 사람들은 수군댄다. 박씨 부인은 ‘베틀왕’인데다가 좋은 살림꾼이다. 그런 남편을 잘 보살펴, 과거에도 합격시킨다. 그러니까 박씨 부인은 뭐든지 잘하는 여자다. 그저, 얼굴이 예쁘지 않을 뿐. 그것 하나 때문에 박씨 부인은 평생 울적했다. 기구한 삶이다. 슬프다.

박씨 부인은 늘 자신을 헐뜯는 소리와 싸워야 한다. “괴물 같아.” “못생긴 여자라면 쓸모라도 있어야지.” “네가 아무리 재주를 부린들, 서방이 너를 사랑할 줄 알고?” 만능 재주꾼 박씨 부인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박씨 부인은 그 말들을 극복해내기 위해 더 열심히 산다. 더 열심히 베틀을 짜고, 더 열심히 살림하고, 더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니까, “못생긴 여자라면 쓸모라도 있어야지.”라던 세간의 말을 따라 사는 거다. 어쩌면 박씨 부인도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평생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건 가학적인 노력보다도 자존감


그때, 박씨 부인의 주변을 맴돌던 천사는 이렇게 한마디 한다. “그 목소리가 어디서 들리니? 세상 밖에서 들린다고 생각하니? 그건 네 마음속의 목소리야.” 남들이 헐뜯어서 괴롭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가장 나를 괴롭게 한건 그 말에 동조한 내 자신, 누구보다 앞장서서 나를 미워하고 비난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비난이 그리 뼈아프고 속상했을 테다. 지금 내가 싸우고 있는 상대는 누군가? 내 꿈을 방해하는 진짜 적은 누군가? 나는 언제나 나 스스로에게 좋은 것들을 선택할 것 같지만, 예상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다. 부정적인 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신뢰보다는 불신할 때가 많고,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에 더 주목하는 평소의 내 모습을 박씨 부인에게서 볼 수 있었다.

꿈을 이루는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내일의 나’만을 위한 가학적인 노력보다도,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존감이다. 좋은 걸 얻으려 할수록, 공들여야 하는 시간은 훨씬 더 기니까. 우리는 고3 시절에 선행체험을 했는데도, 늘 이 사실을 잊는다. 열매의 달콤함은 짧고, 그걸 위한 고행의 시간은 길다는 것. 간절히 원했던 것을 다행히 이뤄냈더라도,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무한한 기쁨이 아니라 더 높은 목표 앞에 던져진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노력하는 그 많은 시간이 고행길이 아니라 여행길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법 따위 풀리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사는 피오나 공주는, 녹색 괴물 중 가장 자존감이 높을 거다. 주연을 목표 삼더라도, 앙상블과 조연의 삶을 거치는 그 순간순간에도 기쁘고 즐겁다면 더 좋지 아니할까. 그러려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복해있는 내부의 적과 진실한 대화와 타협은 필수다. 행복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말이 길어졌다. 구구절절한 설명 따위 귀찮고, 박씨 부인이 천사 만나 돈오(頓悟)한 것처럼 단박에 느끼고 싶다면, 대학로 PMC 소극장에 가보면 된다. 3월 17일까지 상연된다. 이런 저런 의미도 좋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다. “살아 있네”하며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애인절(angel)’ 대감부터 ‘배틀씬’ ‘조선시대판 지킬과 하이드’까지 포복절도할 만한 장면이 빼곡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실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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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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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뮤지컬 [날아라, 박씨!]
    • 부제: 창작뮤지컬 [날아라, 박씨!]
    • 장르: 뮤지컬
    • 장소: PMC 대학로 자유극장
    • 등급: 8세이상 관람가 (부모님 동반입장시 가능함)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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