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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만나고 싶었던, 기자 손에 꼽는 배우 이정열. 그래 선배에게 부탁해 기획사도 아닌 배우 이정열의 전화번호를 뚝뚝 눌러 만남을 청했다. 다름 아닌 지난 20일 예스24에서 첫 예매가 시작된, 그러나 공연 날짜는 한 달 이상 남은, 그에겐 아직 인터뷰 비수기일지 모를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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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아닌 배우의 색깔 논하는 건 똥배우
도리 없이 아직은 18세기로, 또 현재를 오가며 무대와 연습현장을 누비고 있지만 큰 걱정은 않는 배우 이정열, 분장을 하고 무대의상을 입는 순간 변화됨을 느낀다. 그게 바로 배우의 치열한 몰입이던가.
“동시에 다른 작품을 하더라도 몰입도가 떨어진다면 배우의 문제지, 상황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철저하게 캐릭터의 옷을 입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 그럼에도 기자는 연이어 <넥스트 투 노멀>의 댄에 비친 배우 이정열의 색깔을 물었다, 어리석게.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극인데 내가 그 캐릭터가 되어야지, 그 캐릭터를 내 색깔로 보여줘야겠다고 하는 건 똥배우입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다르니까 같은 걸 해도 당연히 달리 보이니까요.”
그래서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거다. 무대 위에는 배우가 아닌 배역만 있으므로.
당신은… ‘Are You Fine?’
평범해 보이는 한 가정, 하지만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 다이애나와 그래서 소외감을 느끼는 딸 나탈리, 위태로운 가정을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아버지 댄. <넥스트 투 노멀>의 굿맨 패밀리, 그들의 평범한 행복 찾기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말 그대로 착한 사람들인데요.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no good이거든요. 항상 'Are You Fine?,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산다는 얘기는 괜찮지 않다는 얘기거든요. 원작자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게 식구들이 이름이 굿맨이라는 것부터 ‘이 사람들한테는 no good이 많군’ 싶었는데 이름에도 복선이 깔려 있다는 거죠. 괜찮지 않은 집에서는 괜찮냐는 말 잘 안 하잖아요. 또 새로운 호흡을 주는 의사가 등장하는데 처음에 등장하는 의사의 이름은 닥터 파인(Fine)이에요. 결코 Fine하지 않거든요. 2막에서는 정신상담 의사가 나오는데 댄디하고 멋져 보이지만 이름이 닥터 매든(Madden)이에요. Mad에서 온 말이죠.”
어제와 다른 오늘이 내일에도 있다는 평범한 축복
평범하게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말을 시켜보면 이내 범상치 않은 인생 스토리가 쏟아지는 법.
<넥스트 투 노멀> 역시 그에 벗어나지 않는다.
“‘평범하다, 정상적이다’ 이런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사건, 아침에 해가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와서 밥 먹고 하는 누구나 다 할 것 같은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난데없이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아버지가 쓰러지거나 하는 나한테 안 생길 것 같은 일들이 닥쳐오거든요. 그리고 겉에서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가정도 들여다보면 한두 가지 상처가 없는 집은 없어요.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그렇다면 배우 이정열에게 ‘평범함’이란 얼마나 동떨어진 삶일까?
“전 정말 말 그대로 ‘노멀’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이 많았어요. 최근에는 난데없이 몸에 이상이 있다고 진단을 받고, 아이다 공연 중에 병원에 갔다가 다음날 수술을 받았어요.”
지난 크리스마스 다음날의 일이다. 믿기지 않는 일들도 이제는 덤덤히 수용할 수 있어 보이는 이정열. 어쩐지 수척해진 모습, (한두 달 새 10kg이상이 빠졌단다.) 하지만 시종일관 미소와 센스를 잃지 않는 그에겐 삶을 운용해가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내일도 있을 거야’ 하는 것처럼 큰 축복이 없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지루할지 모를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걸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저한테도 지금은 이렇게 걷고 연기하고 연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축복이에요.”
병 주고 약 줬던 작품 나의 <개똥이>
배우 이정열이 간결한 평범함이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박박’ 기었던 <개똥이>의 벌레 시절이 한몫 했다. 1995년 당시 ‘락 오페라’로 분류됐던 김민기 연출의 <개똥이> 초연에 참여하게 된 이정열은 노래와 대사로 드라마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처음 알게 됐다.
“한 마디로 병 주고 약 준 작품이죠. 김민기 선생님의 지하철 1호선이 대박이 난 뒤에 올린 창작 뮤지컬이 ‘개똥이’였어요. 정말 하루 종일 ‘빡빡’ 기었어요. 벌레니까. 창작 초연이라 컨텐츠가 없어서 다 같이 힘들었어요. 무대극의 매력을 흠뻑 알게 된 작품이었고, 무대극의 힘듦을 절절히 알게 된 작품이죠.”
그래서 10년만 같이 뮤지컬 해보자는 연출 김민기를 뒤로 한 채 뒤도 안 보고 가요계로 내달렸나보다.
“어려서 그랬지만 배우로서보다는 가수로 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던 욕심이 컸어요. 그 뒤로는 무대극을 전혀 안 봤어요. 너무 하고 싶을까봐.”
폐인에서 다시 뮤지컬 배우로 불리기까지
욕심을 내본 가수로서의 전성기도 그리 길진 않았다. 탄탄대로를 걸을 줄만 알았던 그에게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발표된 음반도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그로 인해 제작자에게 소송까지 당했다. 참으로 평범하지 않게.
2000년대 초반엔 새벽 1시 라디오 DJ를 하던 방송이 끝나면 늘 술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다만 몇 번 있다는 인생의 기회라는 게 찾아왔다. 폐인으로 살던 당시 한 통의 전화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게 최무열이라는 사람이었어요. ‘개똥이’ 때 함께 했던 그가 극단을 만들었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작품이 떠올랐다며 전화를 한 거죠. 7, 8년 만에 온 전화였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더라고요. 저도 ‘그래, 하자’ 그랬죠.”
‘개똥이’ 때 자신과 함께 ‘빡빡’ 기었던 배우들을 돌아보면 남우주연상을 받는 황정민이, 연극계 한 획 긋는 오지혜가, 꿀 조연으로 빛나는 최용민이, 극단 대표가 된 최무열이, 가수로 MC로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는 윤도현이 되어 있었다. 그도 10년간 ‘빡빡’ 기었다면 지금의 위치가 달라졌을까?
“제가 가수로 데뷔를 하고, 히트를 치고, 앨범이 엎어지고, 소송을 당하는 동안 10년간 김민기 연출과 함께 했던 배우들은 지금 메인 스트림이 되어 있었어요. 저도 같이 했다면 좀 더 편하게 왔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한테는 재미있는 여정이었어요.”
두문불출하고 사람 만나기 싫었던 그를 결국 뮤지컬계로 다시 돌아 세운 건 힘들었던 기억이 지배적이었던 ‘개똥이’ 시절의 에너지였음을. 후회는 않는다. 돌아왔으되, 그래서 지금 그의 영역은 깊고 넓어졌다.
P.S.) 요즘 인터넷은 참 친절하다. 공연관련 사이트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통계. 이정열은 총 52개의 공연에서 224명의 출연진, 108명의 제작진과 함께 작업을 해왔다. 기자의 말에 그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뜬다. 콘서트 횟수보다 많을 것 같단다. 앞으로 콘서트 횟수도 조금씩은 늘어갈 것이다. 다만 따로 음반을 발표하고 판매하기보다는 여건이 될 때 팬들과 조용히 교감의 시간을 가질 심산이다. 이미 그가 바라는 대로, 내려놓은 대로 무대 위에서는 그 역할에 적절히 잘 맞는 사람, 무대를 내려와서는 옆자리에 앉아도 부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이다.
이정열의 TIP BOX
“넥스트 투 노멀은 음악, 극적 구성, 그리고 조명 자체에 매료되실 거예요. 특히 조명이 배우들의 이야기를 거의 다 해줘요. 3층 구조와 밀어서 닫는 식탁 정도만 갖춘 단조로운 무대지만 다이내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또 많은 분들이 공연을 잘 보려고 앞에 앉으려고 하시잖아요. 그러면 놓치는 게 많을 거예요. 또 앞에 앉아서 소리가 잘 안 들린단 말씀도 가끔 하세요. 어느 극장이나 스피커의 구조는 센터나 뒤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앞에 앉으면 생소리가 들릴 수 있으니까 한 번쯤은 2층이나 뒤편에서 전체를 조망해 보세요.”
인물의 심리상태 하나도 조명 하나로 드러내는
<넥스트 투 노멀>, 전체를 조망하고, 가까이에서 배우의 표정도 살피려면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보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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