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그런가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쩐지 좌심방이 빨라지고, 전두엽이 간질간질해지는 것 같다. 요즘에는 일상과 스크린의 경계를 비일비재 넘나드는 영화에서도 이런 말을 듣기 쉽지 않다. 우리가 더 이상 웬만한 이야기에서 ‘그날 이후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결말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결의에 차오른 이 믿음의 소리는, 현실은 점점 우리의 믿음에서 동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반추해보는 거울로 작동한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든가 ‘역사는 진보한다.’ 같은 진리의 말씀에 자꾸 되묻게 된다. 그런가요? 정말 그런가요?
모든 것에 배신당한 기분으로 연말 내내 방바닥에 누워있던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한 유일한 질문도 바로 그것이었다. 정말 그런가? 이런 의심이 드는 건 내가 무지해서 그런 건 아닐까? 기분 탓은 아닐까? 싶어 올 초부터 역사 공부도 하고 있다. 시야를 좀 더 넓혀보려는 공부다. 수세기에 걸쳐 외쳐온 그 믿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이, 나의 몇십 년 생애로 쉽게 부정될 리는 없다는 믿음 하에,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를, 조선의 역사를 뒤지고, 심지어 남의 나라 역사도 힐끔거린다. 지금은 잠깐 아닐지라도, 정의는 정말로 승리하는지. 시대가 변하듯, 정의도 그때그때 이겼다 졌다 하는 건지. 그런데 여기, 정의가 승리하는 건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외쳐대는 남자가 있다. <삼총사>의 주인공 달타냥이다.
달타냥, 말보다 행동이 빠른 성급한 성미 탓에…
모자랑 의상이랑 깔맞춤도 제대로 못해서 촌티 팍팍 풍기고 다니는 이 ‘방시남’(방금 시골에서 올라온 남자), 촌뜨기라는 말만 들어도 불같이 화를 내는 것으로 진정 촌뜨기임을 인증하고 다니는 이 남자 달타냥은 파리에 올라오자마자 작은 싸움에 휘말려 삼총사와 결투를 하게 된다. 신념 앞에서는 물도 불도 삼총사도 가리지 않는 달타냥은 여자가 위험에 처하면 정말이지 꼭 구하러 와줄 것 같긴 한데, 어디서 총 맞거나 칼 맞고 죽지 않았을 때에 한정해서다. 머리보다 몸이 더 빨리 움직이는 성급함 때문에 가는 곳마다 사건을 일으킨다.
하지만 바로 그 계산 없이 마구 들이대는 성격 때문에 삼총사도 금방 친구삼고, 아름다운 콘스탄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친구를 사귀고 연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달타냥은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정의만 목청껏 외칠 때는 외로운 적이 많았는데, 삼총사를 만나고, 콘스탄스를 알게 되면서 정의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지켜야 할 사랑, 우정이 많은 사람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 뮤지컬
<삼총사>는 귀족들의 모함에 빠진 왕을 구하는 삼총사와 달타냥의 이야기지만, 기사도밖에 몰랐던 얼간이 촌뜨기 달타냥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사랑과 우정을 지켜내는지, 좋은 친구로, 좋은 남자로 어떻게 성장해나가는지 볼 수 있는 드라마로도 흥미롭다.
우리가 뭘할 수 있겠어, 싶은 순간 뭐라도 하게 하는 힘
당시 프랑스 시대 역시, 신념으로 똘똘 뭉친 달타냥과 삼총사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귀족은 왕을 납치해서 혀를 마비시키고 철가면을 씌워버렸다. 이 모든 일을 꾸민 대주교는 부국강병 프랑스를 만들겠다며, 독재 권력을 휘두르려 한다. 삼총사가 속해있는 왕의 근위대 역시 해산할 지경이다. 총체적 난국.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싶은 순간, 우리가 뭐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삼총사>는 보여준다. 지금의 행복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랑과 좋은 우정이 있다면, 우리는 뭐라도 하게 된다는 걸
<삼총사>는 알려준다.
이왕이면 그 친구들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 좋겠다. 삼총사의 세 멤버, 아토스, 아라미스, 프로토스는 근위병이 되어 만나기 전에 각자 자기만의 색다른 역사를 가진 인물들이다. 왕년에 오페라 가수였던 아라미스, 보물지도를 꿈처럼 품은 해적 프로토스, 아픈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사는 아토스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 충분히 그려지면서 색다른 볼거리를 보여준다. 사랑이든 보물찾기든 한 번쯤 뜨거워 본 적 있던 사람이라면, 그들은 서로 알아본다. 그러니 뜨거운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일단 나부터 체온을 높일 일이다.
긴 머리에서부터 순정이 묻어나는 남자 신성우의 아토스, 아름다운 음색에 걸출한 가창력의 소유자 민영기가 맡은 오페라 가수, 저음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김법래가 연기하는 해적 프로토스는 흠잡을 데 없는 캐스팅이다. 여기에 마치 물 만난 고기인 양 무대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는 엄기준은 살짝 경박스럽지만 사랑스러운 달타냥을 연기한다. 저건 애드립인가 싶을 만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네 사람의 호흡이 좋다. 오랜 훈련을 받았다는 검술 씬, 코러스의 현란한 무술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리얼하게 펼쳐진다.
이 뜨거운 네 남자가 왕을 구하고 정의를 지켜냈는지,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이 뮤지컬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어떤 순간에 이 얼간하고 촌스러운 달타냥이 삼총사의 마음에 들었는지, 달타냥이 삼총사의 진짜 친구가 되는 순간은 언제인지 눈여겨보는 것이 훨씬 흥미롭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라면 달타냥처럼 달려가서 지금 일단 안아주는 것이 좋은지, 먼 미래의 행복을 생각해서 아토스처럼 잠시 헤어져 있는 것도 감당하는 게 좋은지, 아라미스처럼 목숨과 사랑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결정적인 순간
누구에게나 자신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정의를 동전 한 닢으로 쓰러뜨리겠다는 밀라디와 달타냥의 에피소드는 상징적이다. 일전에 한화 김승연 회장의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밀라디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이 사람을 때리면 내가 동전 한 닢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어떤 사람들은 순식간에 달타냥에게 달려들고, 어떤 사람은 달타냥 앞을 막아선다. 이게 좀 극단적이라면 이렇게 하자. “거짓말을 하면, 내가 큰돈을 주겠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여기서 제안을 물리친다면, 명예와 신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일 것이고, 까짓 거 한 대 때리고, 거짓말 한 번 하고 돈을 받겠다고 선택한다면, 그 사람은 주머니도 영혼도 궁한 사람이다. 이런 선택들이 그 사람을 보여준다. 도움을 청하는 많은 목소리 혹은 사소하지만 어쨌거나 옳지 않은 유혹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우리 이름을 불러댄다.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어떤 선택을 강요받는데, 실상 그것은 ‘너는 누구냐’고 정체를 밝히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나는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하는 달타냥이오,”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그에게 나는 뭐라고 나를 소개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가 믿는 것을 행함으로써 믿음을 실현하는 이 남자에게 감히 촌스럽다거나 얼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달타냥에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왜냐하면, 달타냥은 정의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의롭지 않은 것에 칼을 뽑아드니까. 그가 싸움에서 이기건 지건 상관없이, 정의는 이미 달타냥의 칼끝에서 실현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자꾸만 지치고, 이유 없이 우울하고, 바라는 대로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시급한 건 우정과 사랑이다. 잠깐 토닥토닥 어루만져주는 힐링의 메시지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손을 이끌고 밖으로 놀러 가자고 하는 친구다. 맘껏 허풍을 떨어놓고 과장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을 수 있는 그런 친구, 잘 되든 안 되든, 재미있는 일을 공모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필요하다. 잘 믿기지 않는다면 뮤지컬
<삼총사>를 보시길. 친구는 있는데 딱히 할 일이 없다면
<삼총사>를 보고 힌트를 얻으시길. 당장 함께 구호부터 만들고 싶어질 거다. ‘우리는 하나’라던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같은, 이왕이면 오글거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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