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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은 나이 들지만, 여전히 미소 지을 줄 안다: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의 브루스 윌리스

브루스 윌리스가 미소 짓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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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다시 부활한 시리즈의 5편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전작들에 비해 배경은 훨씬 방대해졌고 제작비도 1,000억 원대로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러닝 타임은 더 짧아진 채로 개봉했다. 러시아에서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된 아들 잭 맥크레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5편의 핵심이다.


<다이하드 1>


<다이하드 4.0>

우리가 <다이하드> 시리즈의 1편을 만났던 건, 벌써 25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아내를 만나기 위해 LA에 온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이 빌딩에 갇힌 채, 홀로 테러리스트들과 맞선다는 이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근육질 마초가 주인공이던 액션 영화 속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도 유머와 여유를 잃는 법이 없는 능글맞은 소시민 영웅 ‘존 맥클레인’ 그 자체가 되어 빛난다. 존 맥티어난 감독이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긴박감과 액션 장면을 연출해 냈다면, 1990년 레니 할린 감독은 공항과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을 활용해 더욱 화려한 액션 장면을 연출해 낸다. <다이하드> 시리즈가 지닌 두 가지 장점은 ‘한정된 공간’과 ‘지켜야 할 가족’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1995년 존 맥티어난 감독이 1편에 이어 다시 한 번 연출한 <다이하드 3>는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한다. 뉴욕이라는 도시 전체를 상대로 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맞서는 이 영화에는 ‘가족’도 ‘크리스마스’도 없다. 첨단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도 여전히 구식인 존 맥클레인의 고군분투를 담아낸 <다이하드 4.0>은 딸이라는 ‘가족’과 최첨단 장비에 맞서 싸우는 존 맥클레인의 아날로그 액션을 대비시키면서 ‘가족’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 번 현재에 환기시키는 영화였다.


6년 만에 다시 부활한 시리즈의 5편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전작들에 비해 배경은 훨씬 방대해졌고 제작비도 1,000억 원대로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러닝 타임은 더 짧아진 채로 개봉했다. 러시아에서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된 아들 잭 맥크레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5편의 핵심이다. CIA 요원인 아들과 짝이 되어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이번 시리즈는 차세대 액션 히어로 제이 코트너의 등장과 최고 스턴트맨들이 총동원된 카레이싱 장면 등 스케일도 크고 화려한 액션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시리즈 중에서 가장 밀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싱싱한 제이 코트너에 비해 노쇠한 존 맥클레인의 모습도, 허술해진 이야기를 화려한 볼거리로 채워보려는 존 무어 감독의 연출력도 모두 이전 작품들에 비해 부족하고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는 한국에서 <베를린>과 <7번방의 기적> 사이에서도 자존심을 지키며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하는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능글맞아 보일 정도로 긍정적인 태도가 올드 팬들의 향수를 충족시켜주고 또한 위안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25년 전 생사를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존 맥클레인은 농담을 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영웅이었다. 배트맨의 망토도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도, 아이언맨의 장비도 갖추지 못한 존 맥클레인이라는 소시민 영웅의 가장 큰 매력은 극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그 미소와 여유에 있다. <다이하드 4.0>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던 시리즈를 다시 한 번 살린 건 브루스 윌리스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 때문임은 확실하다. 우리가 바라는 영웅은 철갑을 뒤집어 쓴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퍽퍽한 세상 속에서 웃을 줄 아는 자, 그 여유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에 녹아들어 있는 그 변함없는 유들유들함은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다행스럽게도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


브루스 윌리스가 미소 짓는 법



<루퍼>


<문라이즈 킹덤>

능청맞은 수다쟁이 혹은 액션영화의 영웅이란 이미지는 늘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 브루스 윌리스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이미지에 갇혀 자멸하거나, 상업영화의 얼굴이 되어 실패를 거듭하기보다 인디 영화와 코미디로 눈을 돌린 이 배우는 게을러 보이는 인상과 달리 주목할 만한 독립영화와 블록버스터의 경계를 명민하게 오가면서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영화를 찍어왔다. 눈에 띄게 성공한 블록버스터의 중간 중간에 적은 개런티로도 기꺼이 독립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2년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하드>를 포함해서 무려 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조셉 고든 래빗과 함께 한 액션 SF 영화 <루퍼>, 범죄 스릴러 <캐치 44>, 나이든 영웅들이 모두 모인 영화 <익스펜더블 2>, 액션영화 <파이어 위드 파이어>와 함께 <문라이즈 킹덤> 같은 작지만 알찬 영화도 포함된다.


<펄프 픽션>


<식스 센스>

90년대의 브루스 윌리스의 행보는 늘 긍정적이었다. 액션 영웅이란 타이틀을 함께 짊어지고 걸어갔지만 이것은 이제는 한물간 배우가 되어버린 실베스터 스탤론과 정계로 눈을 돌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다르게 그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수많은 흥행작들 사이에서도 브루스 윌리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다이하드>라는 영화가 떠오른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그의 아킬레스 건으로 남았다. 많은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활약했지만, 영화의 흥행이나 비평적인 실패의 경우 그 중심에 브루스 윌리스가 서 있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최대 장점이며 동시에 한계가 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늘 주인공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다른 배우들과 불꽃 튀기는 경쟁을 하기 보단 그들 사이로 조용히 묻히는 편이다. 그래서 주목할 만한 영화에 출연을 하고서도 그 존재를 강하게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는 <펄프 픽션>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지만, 이 영화로 재기에 성공하며 주목 받은 사람은 브루스 윌리스가 아니라 존 트라볼타였다. 그리고 <식스 센스>에서는 할리 조엘 오스먼드에게, <제5원소>에서는 밀라 요보비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넘겨주었고, 이보다 앞서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는 골디 혼과 메릴 스트립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많은 작품들을 거쳤지만, 영화제와 인연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지만, 브루스 윌리스는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는 조금은 시니컬하고 대부분은 낙천적으로 보이는 브루스 윌리스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다이하드> 시리즈는 브루스 윌리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인 동시에 그가 방점처럼 찍으면서 거쳐 가야 할 걸림돌이기도 하다. <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를 보면 명확해진다. 이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에게는 거대한 걸림돌이면서 동시에 그를 숨통 트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브루스 윌리스는 전혀 기죽거나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이하드> 시리즈는 80년대 브루스 윌리스를 영웅으로 삼았던 3040 세대에게 지나가 세월에 대한 향수, 혹은 영웅의 부활 혹은 현존을 꿈꾸는 일종의 판타지 그 자체처럼 보인다.

한 시절, 우상으로 자리 잡았던 배우들이 인기 시리즈로 복귀하는 것이 팬들 입장에서는 마냥 기대되고 설레는 일만은 아니다. 한때는 어렸지만, 지금은 충분히 나이가 들어버린 시리즈의 팬들은 이미 너무 늙어버린 우상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자신의 나이를 되돌아보게 되고, 기운 빠져 허덕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현재의 내 모습을 씁쓸한 입맛으로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오랜 팬들은 더 방대하고, 스펙터클해진 액션보다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뺀질거리면서 한 박자 쉬어갈 줄 아는 존 맥클레인 형사의 인간적인 면모에 여전히 반가워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능청스러울 정도로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이 오랜 그의 팬들에게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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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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