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일 저녁은 입춘을 예고한 따뜻한 햇살에 화를 내듯 얼어 있었다. 패티 스미스의 첫 단독 내한 공연이 펼쳐질 서울 광장동 유니클로 악스 앞도 스산함을 감추지 못했다. 펑크록의 대모로 불리는 그녀의 명성과 업적 그리고 1970년대 「Gloria」, 「Because the night」을 라디오에 신청하던 국내 빌보드 키즈를 떠올렸을 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더욱이 2012년 9월, 예술 탐구의 동행자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회고한 『저스트 키즈 Just Kids』가 한국어 번역판으로 나오며 서점에서 그녀의 얼굴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열성적인 수백 명의 팬들을 보자 전설에 흠집을 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사라졌다. 오히려 뉴욕시 맨해튼구 블리커로 바우어리가(街) 315번지에 위치했던 펑크의 성지 CBGB를 떠올릴 수 있었다. 라몬즈, 텔레비전, 토킹 헤즈, 블론디 그리고 패티 스미스의 출생지이자 아메리칸 펑크 발생지인 CBGB와 예술 탐구의 열기로 가득 찼던 뉴욕의 분위기가 입혀졌다. 1970년대 초반, 쓰리 코드의 폭발을 장전하던 선구자들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그곳에 운집해 있는 듯했다. 여전히 순수 예술을 추구하는 패티 스미스와 그녀를 만나러온 관객은 40여 년 전의 엔디 워홀과 벨벳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그들을 흠모한 뉴요커와 다를 것이 없었다.
모든 좌석은 입석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관중의 수를 보여주는 이것은 오히려 행운이었다. CBGB에서 뽐내던 패티 스미스의 도발적인 예술혼을 온 몸으로 영접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2009년 여름에 가진 지산 록페스티벌의 자유로운 분위기보다 그녀를 느끼기엔 소규모 공연장의 폐쇄성이 더 어울렸다. 몸을 부대끼는 그 쾌쾌함이야말로 그녀의 예술적 자유가 시작되고 완성됐던 최적의 분위기다. 그렇게 공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은 튀어올 땀과 침마저 성스럽게 맞을 준비를 한 채 무대 가까이에 밀집해 있었다.
헐렁한 재킷과 거칠게 왁싱된 바지에 워커와 비니를 착용한 패티 스미스가 무대로 올라섰다. 주술적이면서도 묘하게 젊음의 생기가 묻어난 의상은 앞으로 펼쳐질 공연을 예견하는 듯했다. 예술과 사회에 대한 진중한 메시지로 정신을 홀린 뒤 날리는 강한 펑크의 가격. 긴장에 휩싸인 부동의 육체는 한국어 “안녕하세요”로 인사한 뒤 흘러나온 「Redondo beach」의 경쾌한 레게리듬에 해제됐다.
산뜻한 출발을 뒤로 안고 2012년에 발표된 정규 11집
< Banga >의 수록곡 「April fool」이 연주됐다. 인트로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던 그녀는 “Shake it up”을 외치며 쓰고 있던 비니를 벗어던졌다. 예열을 마치자 곧바로 지진과 쓰나미로 입은 일본의 상처를 「Fuji-san」으로 공유했고, 여세를 몰아 「Distant fingers」의 절제된 흥겨움과 주술적인 몰입을 이끄는 「Ghost dance」로 공연장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뒤이어 2011년에 사망한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피사체로 그린 「This is the girl」을 선택했다. 이때 27클럽과 그녀의 오묘한 인연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미 헨드릭스 스튜디오에서의 데뷔 음반 작업과 짐 모리슨에 대한 어린 날의 동경, 무명 시절 재니스 조플린에게 우연히 들려줬던 자작곡의 추억이 있는 패티 스미스. 27살에 대한 조건 반사가
< Twelve >의 커트 코베인에 이어
< Banga >에서도 이어졌다. 우상의 죽음이 주는 슬픔과 신비로움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시인 패티 스미스의 깊이와 기교가 담긴 「Beneath the southern cross」를 지나 음악적 동반자 레니 케이와의 호흡이 돋보인 「Ain't it strange」로 안착했다. 이 두 곡은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은 패티 스미스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상상해봐. 화산의 꼭대기 끝에 서 있어. 따듯한 언어와 시들이 나오는 화산, 그 꼭대기 끝에 서 있는 거야.”라는 멘트로 시작한 「Beneath the southern cross」는 시와 음악 그리고 패티 스미스가 삼위일체 되는 아름다움을 선사했다(이 곡엔 시인 올리버 레이에 대한 패티 스미스의 헌사가 담겨있다). 그리고 40여 년이란 시간이 무색할 만큼 팽팽한 협연을 보여줬던 「Ain't it strange」에선 노래를 부르던 도중 거칠게 한 모금의 침을 뱉었다. 예순 여섯 살, 노년의 뮤지션이 보인 이 과격한 행동은 세월마저 끊지 못한 정신과 영혼의 일체감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어서 이번 공연에서 가장 재밌는 순간이 펼쳐졌다. 바로 메들리 곡 「Night time」을 레니 케이에게 맡긴 패티 스미스가 무대 밑으로 내려온 것이다. 경호원들은 당황했지만 팬들과 사진 찍고 함께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엔 명성과 위엄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 같고 소녀 같았다. 그렇게 상승한 흥분 지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공동으로 작곡한 「Because the night」의 피아노 리프가 흘러나오며 최고점에 다다랐다. 공연장의 모범생, 한국 팬들은 떼창으로 넘치는 아드레날린을 배출했다.
막바지가 다가오자 이번 공연의 메시지인 평화와 자유가 돌출됐다. 공연 도중에 “Peace”와 “Freedom”을 외친 패티는 「Peaceable kingdom」를 통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No more fucking bombs!” 핵폭탄 반대를 강하게 주장하는 음악에 관중들은 자유로운 선동을 경험했다. 가슴뿐만 아니라 머리와 이성이 각성하는 순간이었다.
명목상의 마지막 곡은 「Gloria」로 영광스럽게 장식됐다. 데뷔 음반
< Horses >의 첫 곡이자 밴 모리슨의 원곡을 멋지게 편곡한 그녀의 대표곡이 나오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Jesus died for somebody's sins, but not mine”를 읊조리고 다시 한 번 멋지게(?) 침을 분사한 그녀는 1975년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거세게 관중과 호흡했다. 재킷을 벗어던지고 함께 외친 ‘G-L-O-R-I-A’는 남아있는 흥분을 소각하는데 충분했다.
단 한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첫 번째 앙코르 「Banga」로 한바탕 어울렸다. ‘행복한 개’에 관한 곡을 들려주겠다며 시작된 밴드 멤버들의 강아지 울음소리가 무대 아래까지 퍼지며 재밌는 상황을 연출했다. 대미를 장식할 곡을 남겨둔 펑크 여제는 “여러분이 현재이자 미래입니다”라고 말했고 그 순간에 멸시를 무시하고 세상에 부딪히라는 가사를 가지고 있는 「Rock'n'roll nigger」가 용감한 로큰롤로 증대됐다. 그리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으로 기타 줄을 하나씩 끊어내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관객들에게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한 패티 스미스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감동과 충격의 1시간 40분을 경험한 모든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고 공연의 관련 제품을 취급한 판매점은 더욱 북적였다. 무대 위에서 음악을 연주한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레니 케이는 한 움큼 쥔 자신의 피크를 하나하나 아래로 건네주며 그 여운을 기억 속에 적시고 있었다.
모든 공연이 끝난 후, 소규모 무대와 관중에 대한 염려는 불필요했다는 걸 깨달았다. 진실한 관중만 있다면 몸을 불사르는 패티 스미스의 공연 철학에 규모와 허세는 애초부터 존립할 수 없었다. 오히려 무대 위와 아래의 경계는 희미했고, 이것은 밀도 높은 공연을 만들었다. 시간을 초월해 영롱한 예술혼에 세례를 받은 2013년 2월 2일, 이 날 한국에서의 공연은 ‘패티 스미스와 CBGB의 강림’으로 기록될 것이다.
글 / 김근호 (ghook04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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