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거부하고 채식만 하는 사자
동물끼리는 서로 잡아먹는데, 왜 인간은 동물을 먹으면 안 되나요? 채식하는 사자가 사는 목장
동물들이 서로를 잡아먹으니 인간 역시 동물을 먹어도 된다는 말은 인간도 동물의 하나라고 보는 입장이다. 맞는 말이다. 인간도 동물의 하나이다. 그리고 동물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인간이 동물을 먹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통이므로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나아가 자연스러운 일이니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안 될까?
채식주의자들이 흔히 받는 질문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동물끼리는 서로 잡아먹는데, 왜 인간은 동물을 먹으면 안 되나요?” 이 질문에 대해 살펴보자.
서울시립대학교 차건희 교수는 ‘동물 윤리’라는 말에 대해서 윤리의 ‘윤倫’ 자에 사람 ‘인人’이 들어 있으니 윤리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 아닌가라는 말을 했다. 의미 있는 해석이다. 그러나 나는 윤리를 축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해도, ‘인’은 윤리의 주체를 말하는 것이지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만이’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윤리에 ‘인’ 자를 썼다고 생각한다. 윤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동물일 수도 있으며 자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은 윤리를 가질 수 없다.
오랫동안 채식주의자로 지내왔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어느 날 스스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는 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낚시하는 것을 구경하는데, 낚시에 잡힌 물고기의 뱃속에 또 다른 물고기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서부터라고 한다. 예전에 어떤 구충제 광고에서는 구충제 한 알만으로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까지 모두 박멸한다는 뜻으로, 가장 큰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를 삼키고 그 물고기가 다시 작은 물고기를 삼킨 채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그림을 보여준 적이 있다. 바로 이런 식이다. 동물들도 서로를 잡아먹는데, 나는 왜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느냐고 생각한 것이다.
윤리란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만 우리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기를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고기를 먹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잘 살 수 있기까지 하다. 반면 동물에게는 채식의 의무를 부여할 수 없다. 호랑이나 늑대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육식동물은 선택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은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반성적인 활동을 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윤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들이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도 먹을 수 있다는 주장은 올바른 추론이 아니다.
1950년대에 미국의 한 목장에 채식을 하는 사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자는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만 했다는데 덕분에 다른 동물들과 ‘평화롭게’ 지냈다고 한다. 이 사자의 이야기는 『채식하는 사자 리틀타이크』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이사야 11:6)라는 성경의 이야기가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리틀타이크는 돌연변이일 뿐 인간처럼 윤리적인 반성에 의해 채식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고기를 먹을 수 있는데도 안먹은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다른 사자에게도 리틀타이크처럼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강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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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채식, 리틀타이크, 채식주의,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강원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세종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호주 멜버른대학교, 캐나다 위니펙대학교,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현재 강원대 인문사회과학대학 교양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다.
전공분야인 논리학, 과학철학, 윤리학 등 철학의 응용 분야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과 함께, 철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것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대중적 눈높이에 맞는 철학서 집필에 꾸준히 힘쓰고 있다. 그런 결과물로 논리ㆍ논술 분야의 대표적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논리는 나의 힘』(2003)을 비롯하여 『데카르트 & 버클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벤담 & 싱어: 매사에 공평하라』 『라플라스의 악마, 철학을 묻다』 『변호사 논증법』 『좋은 논증을 위한 오류 이론 연구』 등을 펴냈고, 청소년 교양도서로 『생각을 발견하는 토론학교, 철학』 『나는 합리적인 사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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