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사람과 함께 전쟁을 겪다!유럽 문화에는 여전히 세계대전과 관련된 작품들이 많고, 이를 통해 잊히기 쉬운 역사의 한 대목이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연극 <워 호스>의 원작도 동화작가 마이클 모퍼고(Michael Morpurgo)의 소설입니다. 2012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스크린에 올려 세계적인 이목을 모았습니다만, 이미 지난 2007년 닉 스태포드(Nick Stafford)가 각색해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린 후, 6년째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연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웨스트엔드를 넘어 미국 브로드웨이와 아일랜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까지 진출했고, 2011년에는 토니상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연극 <워 호스>가 무슨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소년과 말의 우정’이 가장 간단한 답변일 거예요. 영국의 시골 마을, 경제관념 없는 주인공 알버트의 아버지가 떡하니 어린 말을 한 필 사옵니다. 그 일로 알버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투지만, 알버트는 좋은 친구를 얻게 되죠. 새로운 친구에게 ‘조이(Joey)'라는 이름을 지어준 알버트는 조금씩 그리고 조심스레 조이와 가까워집니다. 그 모습이 마치 소년소녀의 어여쁜 첫 만남 같습니다. 어느덧 장성한 조이는 알버트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인데요. 그러는 사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항상 사건을 일으키는 알버트의 아버지는 조이를 군대에 팔아버립니다. 16살 밖에 되지 않은 알버트는 입대조차 할 수 없는데 말이죠.
군에 소속된 조이는 참전한 군인들과 같은 운명입니다. 총소리에 익숙해져야 하고, 총포 속을 뚫고 전진해야 하며, 때로는 동료를 잃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영국군에서 독일군으로 소속이 바뀌기도 하는데, 사실 조이에게는 아군도 적군도 없습니다. 다만 최선을 다하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한편 기다림에 지친 알버트는 나이를 속이고 군에 입대해 직접 조이를 찾아 나섭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알버트와 조이는 또 한 번의 죽을 고비 앞에서 재회하는데요. 이렇게 뻔한 스토리에 감동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뻔하지만 너무 쉽게 잊고 사는, 사실은 품고 지켜가기 힘든 마음이기 때문 아닐까요?
세계대전으로 이야기를 넓혀 봅니다. 마지막 즈음, 모든 동료를 잃은 조이는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 철조망에 걸려 괴로워하는데요. 이때 총을 겨누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조이를 얻기 위해 서로 동전던지기를 하며 농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연극 <워 호스>가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큰 키워드는 바로 전쟁 안에 숨은 사람의 어리석음과 인간성 회복입니다.
모형 말, 무대에서 살아 숨쉬다!배경은 세계대전, 게다가 말이 등장하는 작품. 스케일은 정확히 영화를 위한 규모입니다. 그런데 <워 호스>는 6년째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고, 보는 사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도대체 그 무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무대에는 실제 말 크기의 조이가 등장합니다. Handspring Puppet Company가 공연을 위해 제작한 말은 나무와 쇠, 가죽과 천으로 된 ‘모형 말’입니다. 훤히 보이는 모형 안에서 말을 지탱하고 움직이는 2명과 모형 밖에서 말의 머리를 잡고 다양한 소리를 내는 1명, 이렇게 모두 3명이 모형 말을 조종하는데요. 모형 말은 귀와 다리 관절, 꼬리가 움직이고, 숨을 쉴 때면 갈비뼈가 들썩이는 동작도 구현해 냅니다. 여기에 말 특유의 콧김이며 울음소리까지 더해지는 것이죠.
무대 위에서는 실제 말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현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기했던 말이 나중에는 가짜라는 것이 믿기 어려워집니다. 모형 말은 들판을 달리기도 하고, 사람을 태우기도 합니다. 분명히 3명의 조종사가 보이는데도, 수시로 ‘저건 모형 말이야!’를 되새기는 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연극 <워 호스>의 가장 큰 힘입니다. 감동적인 주제와 짜임새 있는 구성, 탄탄한 연기력, 적재적소의 음악을 뛰어넘는 연극 <워 호스>의 핵심은 공연 예술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을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는 것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사람’이 말이죠!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은 전해진다!언어 장벽에 대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새어 나올 때 홀로 침묵을 지킨 적도 있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하지만 제때 웃지는 못했으나, 제때 울기는 했습니다. 알버트와 조이도 말은 통하지 않지만 진한 우정을 나눴던 것처럼, 무대의 메시지는 고스란히 제 마음에 전달됐습니다. 이 작품의 코믹코드 역시 말을 하지 못하는 거위가 담당하고 있어요. 뒤뚱뒤뚱 마당을 휘젓는 거위 역시 사람이 조종하는 모형 거위인데요, 그 움직임만으로도 하나의 캐릭터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냅니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 때도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런던에는 정말 많은 공연이 있습니다. 유명 팝 스타의 콘서트는 물론 클래식 연주회, 발레, 뮤지컬, 연극... 하나같이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공연 예술의 경이로움’이라는 수식어를 적용한다면 연극 <워 호스>를 앞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어 때문에 연극 <워 호스>를 꺼렸다면, 그냥 New London Theatre로 달려가 무대 위 조이와 마음껏 교감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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