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안은영의 여자인생충전기
죽을 때까지 연애할 수 있는 여자
뜨거운 사랑을 끝까지 지켜낼 수 없을 때
실연하고 머리를 바꾸고, 갑자기 미니스커트에 킬힐을 신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가 당신을 사랑했던 모습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게 사랑받는 여자의 수순이다. 갑자기 스타일을 바꾼다는 건 과거를 부정하는 행위로 읽혀지기 쉽다. 안쓰러워 보인다. 바꾸려면 진화하고, 유지하려면 도태되지 말 것. 우연히 신호등에 서 있는 당신을 알아보고 그가 다시 가슴이 뛸 수 있어야 한다. 헤어져서도 누군가의 심장을 움찔하게 하는 여자, 팜므파탈의 새로운 정의다.
대한민국의 성공한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
그녀는 내 취재원이었다. 한 번의 취재 후에 남산에 위치한 호텔의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어떤 파티에서 다시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일상적이고 뻔한 인터뷰용 대화가 오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파티에서 만난 그녀는 내가 알던 천진하고 고운 여자가 아니었다. 길고 검은 선 하나가 물결치듯 우아하게 걸어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큰 키에 가무잡잡한 피부와 군살 없는 몸매, 옆으로 크고 긴 눈과 까만 눈동자는 이미 아름다웠지만, 아니 그보다,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녀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에 단박에 매료됐다. 이 세계에선 유리된 듯한 식물성이었다. 검은 생머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묶고 메이크업도 별로 하지 않은 검은 미니드레스 차림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웃음은 크지 않았는데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분명했다. 배우가 아니었는데 그 자리에 모인 어떤 톱배우보다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엔 결기가 넘쳤다. 검은 비단이 가진 투명함이랄까. 그녀에게선 쉽지 않은 우아함이 휘돌았다.
이런 여자라면 남자를 첫 눈엔 아니어도 일단 눈에 들면 오래도록 결박하지 않을까. 색기가 넘치거나 선명하고 쨍한 매력으로 상대를 휘감는 것은 오히려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무감각하게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화악 감싸버리는 장막처럼 도저한 아름다움이라니. 나로선 도저히 흉내낼 수조차 없는 매력이었다. 이런 여자에겐 나 같은 스타일은 게임이 안 된다. 깊고 검은데 습하지 않은 온기. 여자에게 남자가 기대하는 낮과 밤의 모든 것이라고 나는 혼잣말을 했었다.
상상해보자. 이런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일반적으로 남들이 오르고 싶어 하는 위치에 올라 있으면서 속물스럽지 않은 남자라야 하겠다. 고유한 취향을 갖고 있어서 물건이며 사람을 대할 때 몸에 밴 습성이 슬몃 엿보이는 남자. 이를테면 조용하면서 빠른, 경박하지 않은 기민함 같은 것. 갖지 않은 것에 안달하지는 않지만 갖고 싶은 것은 욕망하는 남자, 그렇게 성공하게 된 남자.
대한민국의 성공한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이렇다. 또래의 기준을 상회하는 사회적 지위, (아내와 아이를 비롯해) 균형감을 갖춘 가족들, 상대를 포획하는 노련한 말솜씨와 매력적인 미소. 하지만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퇴폐적 지성미다. 그게 아쉬웠다. 다정한 마초, 믿음직한 선동자, 물질적 여유가 주는 섹시함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완벽한 숨을 불어넣는 것이 ‘텅 빈 듯 가득찬 우수’ 바꿔 말하면 ‘정복욕을 부르는 우아한 남자의 면모’다.
이렇게, 팜므파탈의 매력을 가진 여자와 견고한 인생의 룰대로 살아온 남자가 만나 파도처럼 부딪히고, 거품처럼 산화한 이야기가 있다. 『데미지』다.
『데미지』는 다 가진 남자와 다 욕망하는 여자가 만난 욕망의 이중주를 그린다. 영화가 먼저였고 이를 바탕으로 책이 나왔는데, 책은 영화의 전개를 충실히 따라가면서 되레 영화가 주지 못하는 이차원적 감상으로 독자를 매혹한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침대에 누웠다. 30년이나 같이 산 아내를 속일 수 있는 눈빛과 30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그렇게 속아 넘어갈 수 있는 아내. 우리의 습관 같은 몸짓은 잘 아는 옛날 노래처럼 쾌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자 아무 것도 아닌 마지막 떨림에 무릎 꿇으면서 나는 알았다. 잉그리드는 싸우는 줄도 모르는 전투에서 마지막 패배를 거두었음을. 그리고 싸운 적조차 없는 안나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몇 가지 tip_ 영상이 먼저여서 좋은 점은 책을 읽으면서 줄리엣 비노시와 제레미 아이언스가 벽에 두 팔을 붙인 채 격렬한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다는 점. 영상과 활자가 쌍생하는 좋은 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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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데미지, 제레미 아이언스, 줄리엣 비노쉬, 여자 인생 충전기
여성들의 사랑과 연애,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한 상큼발랄한 조언서 『여자생활백서』로 40만 독자를 사로잡으며 2030 여성들의 멘토로 자리잡았다. 남자와 연애에 관한 지침서 『여자생활백서2』, 연애와 결혼의 갈림길에서 좌충우돌하는 이 시대 여성들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충고와 따듯한 위로를 담은『여자공감』이 있으며, 소설로는 『이지연과 이지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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