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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 닮았단 소리 백 번은 들었어요”

<그리스>를 바르고 파워 에너지로 무장한, 뮤지컬 배우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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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어머니가 점을 보고 오셨는데요. 저는 대박나지 않는대요. 인생에 대박이 없대요. 그런데 대박을 향해 인생 곡선이 끝까지 올라간대요. 그런데 요즘 그런 걸 느끼고 있어요. 발버둥 쳐도 안 될 땐 안 되더니 놓고 있으면 올라가더라고요.”



“10년 전? 집 앞에 여자들이 줄을 섰죠”

<그리스>가 한국에서 정식으로 초연된 게 벌써 10년. 현재 <그리스>에서 매력적인 바람둥이 대니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정민의 10년 전 모습도 대니와 비슷하다.

“여자들이 집 앞에 100명씩 있었어요. (웃음) 농담이고요. 그 땐 바빴죠. 군대에 있었으니까요.”

은근슬쩍 웃음으로 넘겼지만 결코 농담 같지만은 않았던 그의 말, 180cm 훌쩍 넘는 키와 수려한 외모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당시 그는 여자보단 춤에 미쳐 있었다.

“2005, 6년도에 그리스를 처음 봤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스>가 그 때도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으로 유명했거든요. 그 때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가 좋았어요. 지금처럼 대니 역을 맡게 됐죠. 하지만 경력도 없었고 저는 그냥 검증만 받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계약하는 날 다른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못할 것 같다고 했죠. 그 땐 공연에 대한 욕심이 없었거든요.”

뮤지컬 무용단에서 6년 동안 춤만 췄을 정도로 춤에만 미쳐 있던 그는 맹렬한 춤을 요하는 <그리스>를 통해 자신의 상품성을 점쳐봤던 것. 그래서 <그리스>를 그저 관객으로만 볼 때도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욕망은 일지 않았다.

“2006년에 댄스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로 데뷔를 했어요. 춤에만 빠져있던 때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춤 이외의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연극이 전공이라 연기에 대한 욕심은 물론 많았거든요. 그래서 오디션을 보면서 뮤지컬을 시작하게 됐죠.”


“그리스, 그 어떤 공연보다 힘들어요”

10년 전이나 지금 <그리스>가 변함없는 건 뮤지컬 스타의 등용문이라는 것. 역대 엄기준, 조정석, 주원, 김무열, 지현우, 강지환, 이선균 등이 대니 역을 거쳐 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바. 그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얼마 전에도 배우들이 술을 마시는 자리가 있었는데 예전에 같이 <캣츠>를 했던 선배가 요즘 뭐하냐고 해서 그리스를 한다고 했더니 ‘그걸 지금 네 나이에 하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요즘 만나는 배우들은 저한테 다 그런 얘기들을 해요. 역할이 고등학생이라 쉴 새 없이 파이팅 에너지가 넘치거든요. 가만히 있어도 체력적인 방전이 돼요. 춤과 노래도 그렇고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공연보다 더 힘들어요. 그리스에 참여했던 배우들도 모두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공연으로 그리스를 꼽죠.”


2005년, 단지 검증받기 위해 임했던 오디션과 2012년 마음먹고 임한 오디션은 체력적으로, 의식적으로 많이 달랐다.

“제가 조금 더 어렸을 때 시작했으면 뮤지컬 스타의 등용문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의식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리스 뮤지컬 배우들 중에 ‘왕고’예요. 뮤지컬을 시작한 뒤에는 2005년에 그리스를 하지 않았던 걸 후회도 했죠. 그 때 했으면 몇 년 빨리 이루지 않았을까.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그 때 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날렵한 인상에 비해 생각은 매우 순하다. 게다 인생을 길게 놓고 볼 줄 아는 안목도 있어 보였다.

“그 때 그 배역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뮤지컬 인생을 계단처럼 하나씩 순차적으로 올라왔거든요. 이쪽 바닥이 아이돌처럼 반짝 스타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천천히 길게 올라가는 게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원래 성격 자체가 그래요. 어려서부터 좋은 제의를 받아도 항상 하는 것에 충실했어요. 내가 뭔가 준비가 되었다 싶지 않으면 좋은 기회가 와도 안 했어요. 음...그런데 후회해요. 서른 넘으니까. 그나마 그 땐 파이팅이 넘쳤으니까요.(웃음)”

30대 배우들이여, 뮤지컬 <그리스> 제의는 심각하게 고민하시라.


“작품 끝나고 수고했단 말을 들을 때까지 했죠”

무던할 정도로 긍정적인 성격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근성이라 하기에도 부족한 지경의 승부욕을 보인 유난했던 일화가 있었으니. 2006년 춤 하나로 캐스팅되었던 뮤지컬 <더 플레이>, 하지만 연습을 하던 도중 춤보단 연기력이 우선인 주인공 역이 맡겨졌다.

“춤추는 게 좋아서 하려고 했는데 주인공을 맡게 된 거예요. 더블 캐스팅이었는데 공연 없는 날에는 앙상블로 무대에서 춤을 췄어요. 그 때 연기나 노래도 많이 배웠죠. 춤만 추다보니까 연기 공부에 소홀했거든요. 첫 작품을 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어요. 그 때 딜레마에 빠져 어금니를 꽉 깨물었죠.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싶었어요. 이 작품 끝날 때 ‘수고했다, 좋았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거든요. 작품이 끝난 4개월 뒤에 그 얘기를 시원하게 못 들은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달 뒤에 다시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기에 제가 찾아가서 다시 한 번 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여기에서 뭔가 졸업을 하고 싶었던 거죠. 그 땐 춤이 아니라 연기로 승부를 걸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방점을 찍고 한 계단 오르고 싶었던 정민. 남다른 승부욕은 <더 플레이>에서 원캐스팅으로 연기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사랑은 비를 타고>에 참여하면서 노래의 매력에도 빠지게 됐다고. 하지만 아직, 여전히 그에게 자신 있는 건 춤. 건 뭐 한 5년 후, 30대 후반이 된 배우 정민에게 다시 물어보자.


“유지태 닮았단 소리 백 번은 들었어요”

최근엔 드라마에 투입될 예정으로 방송연기도 따로 준비했다. 뭐 그 바닥이 늘 그렇듯 틀어져버렸지만. 그렇다고 서른 즈음에 뭔가 이루지 못해 일었던 조급함이 다시 생기진 않았다.

“방송을 하면 인지도가 좀 높아지겠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이제 안 들어요. 지금은 뮤지컬 하는 것만으로 행복하고요. 그래도 나중에 나이 먹으면 영화는 꼭 해보고 싶어요.”

정민이 생각하는 멋진 영화 속 역할은 다소 CG의 도움을 받아 존재만으로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남자가 아닌 빈틈이 좀 있어 인간적인 멋이 사는 남자다. 그런 배역이 잘 어울릴 거라 생각이 든 건 그가 쓴 모자 아래 그늘이 가실 때마다 그의 눈빛에 어룽대는 유지태의 형상을 느끼고서.

“그 소리 백 번은 들었어요. <그리스>하면서 빠진 살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군대 가기 전 65kg 정도였는데 10년 만에 다시 60kg대가 됐어요. 그래서 저녁마다 엄청 많이 먹고 자거든요. 그랬더니 위병이 생겼어요. 그래도 안 그러면 얼굴이 핼쑥해 보인다고 해서 계속 먹고 있어요. 보쌈, 햄버거, 라면, 자장면 이런 걸 먹었더니 이제 배가 좀 나오려고 해요.”

그 말은 못 들은 걸로.


“제 인생에 대박은 없대요”

평소에도 그렇지만 새해가 되면 유난히 귀 얇은 여기자들이나 노처녀 작가들은 소문난 점집으로 우루루 몰려가 듣기 좋은 소릴 골라 듣곤 한다. 배우들도 과연 올해 대박 날 조짐이 있는지 점이나 신년운수를 좀 볼까?

“재작년에 어머니가 점을 보고 오셨는데요. 저는 대박나지 않는대요. 인생에 대박이 없대요. 그런데 대박을 향해 인생 곡선이 끝까지 올라간대요. 그런데 요즘 그런 걸 느끼고 있어요. 발버둥 쳐도 안 될 땐 안 되더니 놓고 있으면 올라가더라고요.”

2년 뒤엔 그래서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을지 몰라 인터뷰 안 해준단다.

“올해도 그래서 바쁘거든요. 새로 다가오는 해가 항상 일도 많고 가장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스>를 통해서도 더 업그레이드된 배우가 될 것 같고요. 그리고 저는 지금이 행복해요.”

(굳이 점쟁이 말을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대박은 없다지만 대박을 향해간다는 정민의 인생. 그가 꿈꾸는 대박 역시 순하고 긍정적이다. 돈 버느라 바빠 아이들과 아내와 놀아주지 못하느니 돈은 많지 않더라도 가정의 소박한 행복이 바로 그의 대박. 올해 그가 바라는 꿈, 이룰 수 있을까?


뮤지컬그리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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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예진

일로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닌 지 벌써 15년.
취미는 일탈, 특기는 일탈을 일로 승화하기.
어떻게하면 인디밴드들과 친해질까 궁리하던 중 만난 < 이예진의 Stage St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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