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를 무엇에 찍어 먹든 무슨 상관인가요?”
먹는 것에 무슨 윤리가 필요한가요? 채식주의자는 육식주의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
자기가 먹는 방식만이 ‘정상’이고 ‘진리’이며, 다른 방식은 촌스럽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남이 무엇에 찍어 먹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을 수도 있을 테고, 심지어 마요네즈에 찍어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입맛에만 맞는다면.
앞에서 종교적 채식주의나 취향에 의한 채식주의는 일반화가 가능하지 않은 개인적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점에서는 건강을 위한 채식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 대해 어리석다거나 의지력이 없다고 말하기는 해도 비윤리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담배를 피우면 온갖 질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으므로 분명코 그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꼭 그렇게 말할 수만도 없는 것이, 병에 걸릴 줄 알면서도 담배가 주는 다른 이익 즉 집중력이나 이완감을 위해 담배를 계속 피운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어쨌건 담배 피우는 사람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는 있어도 그를 비윤리적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물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므로 당연히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담배 피우는 것은 윤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이것은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건강을 위해 금연을 택한 사람에 대해 현명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그래서 포상금을 주는 회사도 있지만), 그 사람을 보고 윤리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건강을 위해 채식을 선택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래 살겠네~”라는, 약간의 비아냥섞인 칭찬은 하겠지만, 그 사람에 대해 “참 착하네!”라고 윤리적 평가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똑같은 논리로 보면 채식주의자도 육식주의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 저렇게 계속 고기를 먹다가는 건강을 해치고 빨리 죽을 것 같아 안타깝고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그것을 비윤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먹는 문제는 윤리와는 무관한 것 아닐까? 무엇을 먹을지의 문제는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지, 입맛이 어떤지, 건강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개인적 선택 문제이지, 옳거나 그르다고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순대 논란’이라는 것이 있다. 순대를 무엇에 찍어 먹는지를 두고 인터넷에서 네티즌들끼리 싸우는 얘기다. 순대는 예전부터 먹던 고유 음식이 아닌데도 희한하게 지역마다 찍어 먹는 양념의 종류가 다르다. 서울 지역에서는 고춧가루 섞은 소금에, 전라도에서는 초장이나 맨소금에, 경상도에서는 쌈장이나 후추 섞은 소금에 찍어 먹는다. 또 강원도에서는 새우젓이나 후추 섞은 소금에, 제주도에서는 심지어 간장에 찍어 먹는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싸움이 붙는 모습을 보면 이러하다.
“서울 촌놈들은 순대를 소금에 찍어 먹는다면서요? 순대는 쌈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 아닌가요?”
“헐, 님이 촌놈이네요. 순대가 양파나 고추인가요? 쌈장에 찍어 먹게.”
“두 분 다 황당하네요. 순대는 초장에 찍어 먹어야 정상이죠.”
“무식하네요. 순대는 새우젓에 찍어 먹는 게 진리입니다.”
자기가 먹는 방식만이 ‘정상’이고 ‘진리’이며, 다른 방식은 촌스럽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남이 무엇에 찍어 먹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을 수도 있을 테고, 심지어 마요네즈에 찍어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입맛에만 맞는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고기 논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왜 먹는 것 가지고 시비를 거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나라마다 먹는 문화가 다 다른데 자기들은 우리가 먹지 않는 별의별 것을 다 먹으면서 유독 우리가 개고기 먹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결국 순대를 찍어 먹는 양념이 다르다고 비웃는 것이나 매한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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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채식, 순대,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강원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세종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호주 멜버른대학교, 캐나다 위니펙대학교,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현재 강원대 인문사회과학대학 교양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다.
전공분야인 논리학, 과학철학, 윤리학 등 철학의 응용 분야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과 함께, 철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것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대중적 눈높이에 맞는 철학서 집필에 꾸준히 힘쓰고 있다. 그런 결과물로 논리ㆍ논술 분야의 대표적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논리는 나의 힘』(2003)을 비롯하여 『데카르트 & 버클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벤담 & 싱어: 매사에 공평하라』 『라플라스의 악마, 철학을 묻다』 『변호사 논증법』 『좋은 논증을 위한 오류 이론 연구』 등을 펴냈고, 청소년 교양도서로 『생각을 발견하는 토론학교, 철학』 『나는 합리적인 사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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