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 지폐에 그려져 있는 퇴계 이황 [출처: 위키피디아]
글을 쓰기 전에 지갑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았다. 앞면에는 인자한 퇴계 이황의 얼굴이, 뒷면에는 도산서원의 절경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이황은 우리의 곁에 존재하는 친숙한 위인이다. 심지어 ‘이기’와 관련한 이론도 들어 봤다. 중, 고등학교 때 시험을 보기 위해서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암기는 암기일 뿐. 지식에 대한 이해 없이 암기만 반복해봐야 자신의 몸 속에 녹지 못한 채 죽은 지식으로 존재하다 잊혀진다. 결국 우리는 이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셈이다. 과연 우리가 중, 고등학교 때 배웠던 이황의 말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동양고전, 2012년을 말하다> 강연에서는 ‘향기로운 삶의 길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이광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와 성학십도를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대상적 지식과 인간 완성의 학문
“퇴계 이황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퇴계에 대해서 잘 알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는 것이 그리 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5년 동안 성학을 공부했고 이제서야 몇 마디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대 이후에 자연 과학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그 결과 미시 지식이 확대되어 인간의 지식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들은 모두 대상적 지식입니다. 대상을 연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식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대상화되지 않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대상화될 수 없는 지식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과학의 발달로 삶은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삶이 무언인지 모릅니다. 삶의 방식이 황폐화되었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가 대상화 되지 않았나 반문하고 싶습니다.”
<동양고전, 2012년을 말하다>에서 많은 강연자가 서양 문명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광호 교수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그는 서양 문명을 대상적 지식으로 지칭하며 비판했다. 이광호의 말에 따르면, 서구 문명의 도입으로 삶이 풍족해졌지만 삶이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그가 말하는 성학(聖學)은 성인이 되는 학문이다. 성인이 되는 길은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한다고 열리지 않는다. 과학적인 학문 체계에서는 대상화되고 객관화되는 것들만 학문으로 인정한다. 그렇기에 과학적인 학문이 학문의 전부라 여겨지는 현대에는 성학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학문들은 학문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이광호는 이러한 통념에 대한 반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유학을 고민하고 공부해 왔다고 한다.
퇴계 이황 [출처: 위키피디아]
퇴계 이황의 생애
본격적으로 성학십도를 읽기 전에 간략하게 이황의 생애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이광호는 이황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이황이 가진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따라가 볼 것을 권하였다. 이황은 1501년에 태어나 12세 때 논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12살의 이황은 논어에 나오는 ‘집에 들어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면 어른을 공경하라’ (弟子, 入則孝, 出則弟.)는 구절을 읽으며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14세에 도연명의 시를 사랑하기 시작하여, 15세에는 냇가에 가재(石蟹)를 보고 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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負石穿沙自有家
前行却走足扁多
生涯一( )山泉裏
不問江湖水幾何
돌을 짊어지고 모래를 펴고서 스스로 그 속에 집을 가지네
앞으로 물러 갔다가 뒤로 내딛던데 발만 많구나
한 평생 동안 한 줌 산속의 물 속에 살면서
강과 호수에 물이 얼마나 있는지 묻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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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은 냇가에서 노니는 가재를 보며 바다나 호수 같은 큰 물을 모른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곳에서도 즐겁게 살 수 있는 가재를 보며 이황은 감탄했다. 즉, 생명 자체의 즐거움을 알게 된 이황의 깨우침이 담겨있다. 이광호는 이 시를 읽으면 이황이 가진 삶의 즐거움에 대한 문제의식, 도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였다.
43세에 이황은 성균관의 사성으로 승진하나 성묘를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당시에 조선 정치계에서는 사화가 많이 일어났는데, 이황은 이를 보며 정치로는 즐거움을 찾기 어려우리라 깨닫고 학문을 통해 즐거움을 찾으려고 마음먹었다. 48세에는 단양군수로 발령이 나지만, 49세에게 사직서를 3번 낸 다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후 53세에 다시 성균관의 대사성으로 부임하고 꾸준히 유학에 매진하여 67세에 선조에게 성학십도를 바친 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자기를 위한 공부
자신을 위한 학문과, 타인을 위한 학문 두 가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둘 중에서 어떤 학문이 올바른 학문일까?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답을 해보면 타인을 위한 학문이 올바른 학문인 것 같다. 배워서 자기 혼자 좋아서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왕이면 세상 사람을 위하는 그런 학문이 좋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이라는 표현은 이기적이라는 뉘양스를 풍겨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다. 하지만 성학에서 말하는 학문은 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이다. 성학의 학문은 자기 완성적, 자기 실현적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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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之學, 爲己而已. 所謂爲己者, 卽張敬夫所謂無所爲而然也.
如深山茂林之中有一蘭草, 終日薰香而不自知其爲香. 正合於君子爲己之義.
군자의 학문은 자아 완성을 위할 따름이다. ‘자아 완성’이란 장경부(張敬夫, 1130~1180, 송나라 학자)가 말한 ‘인위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깊은 산 무성한 숲 속에 한 떨기 난초가 꽃을 피워 종일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지만, 난초 스스로는 향기를 내고 있는 줄 모르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군자가 자아 완성을 위해 공부하는 뜻과 꼭 들어맞는다. 깊이 체득하라.-「퇴계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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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군자의 학문은 오로지 자기를 위한 것이다. 이황의 학문도 자기 완성을 추구한 군자의 학문이었다. 이광호는 이황의 학문에는 깊은 산 속 난초처럼 향기로운 삶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이 담겨있다며, 그래서 강좌 제목을 ‘향기로운 삶의 길을 열다.’라고 지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황 학문의 정수가 담긴 저서가 바로 성학십도다.
성학십도는 이황이 편찬한 책이지만 전부 이황이 만든 책은 아니다. 과거 성현들이 그렸던 그림과 말들을 이황이 모아 편집한 책이다. 성학십도는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경재잠도, 숙흥야매잠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그림과 그림을 그린 성현들의 해설, 그리고 퇴계의 주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엄청나게 어려워 보이지만, 이광호는 성학십도가 한자가 어려워서 그렇지 내용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이황은 인간 삶의 박자에 맞추어 학문을 하라고 말했기에 성학십도 역시 내용 그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성학은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이고, 성학십도는 성학의 요점을 잘 정리한 책이다. 결국 성학십도는 성인이 되기 위한 방법을 서술해 놓은 책이다. 그런데 정작 성인이란 무엇일까?
“성하면 세인트, 종교적인 걸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유학에서 말하는 성이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於事無不通, 謂之聖) 동양철학에서는 도통이란 단어를 좋아했습니다. 이는 도를 진리로 생각했다는 의미이며, 도통은 진리에 통달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은 진리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맹자에 보면 성인에 대해서 잘 설명해 놓은 구절이 있습니다.
도가 바람직한 것임을 아는 자는 선인(善人)이라 한다. 도를 자신에게 지닌 자를 신인(信人)이라 한다. 도를 충실하게 갖춘 자를 미인(美人)이라 한다. 대인으로서 질적 변화를 이룬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한다. 성인으로서 그 경지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은 신인(神人)이라 한다. (맹자 진심장구 하)
힘쓰지 않아도 중용을 행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중용을 행하는 경지. 즉, 자연스럽게 도에 일치하는 경지입니다. 성학을 공부하고 인격의 변화를 통해서 마음의 진리에 도달하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되는 길, 어렵지 않다
이광호는 성인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만약에 성인이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면 성인이 되는 학문인 성학을 권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성학을 공부하려고 해도 책이 너무 많다. <동양고전, 2012년을 말하다>만 보더라도 4서 중에서 공자, 맹자, 중용 이렇게 3권이나 다뤘지만, 사실 못 다룬 유학 고전의 수가 더 많다. 유학 고전만 많으면 다행이지만, 유학 고전에 딸린 주석서는 더 많다. 결국 공부하는 사람은 어떤 읽어야 할지 초입단계에서부터 헤매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황은 유학고전에서 요체를 뽑아 성학십도를 만들었다. 이광호는 성학십도에 나온 것만 잘 익혀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성학십도는 크게 두 가지 구조를 띈다. 태극도, 서명도, 소명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이렇게 앞의 5도는 실천학문적 방법으로써 성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 뒤를 잇는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경재잠도, 숙흥야매잠도는 마음을 다스리는 심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광호는 이 두 체계를 불교의 교종과 선종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다양한 계파와 경전을 가지고 있는 교종은 성학과 유사하고, 본성을 깨우쳐 부처가 되는 선종은 심학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성학은 학문을 통해서 성인이 되는 방법이고, 심학은 마음을 다스려서 성인이 되는 방법이다. 이황은 성학과 심학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을 병행해야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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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曰 :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學也者, 習其事而眞踐履之謂也. 蓋聖門之學, 不求諸心, 則昏而無得,故必思以通其微. 不習其事, 則危而不安, 故必學以踐其實. 思與學. 交相發而互相益也.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하였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그 일을 익혀서 참으로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으면 어두워서 얻는 것이 없으므로 반드시 생각함으로써 그 미묘한 이치에 통달해야 하며,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 위태롭고 불안하므로 반드시 배움으로써 그 실질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이렇게 서로 이치를 드러내고 서로 도와주는 관계입니다.-「진성학십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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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은 생각과 배움, 생각과 실천을 성학의 기본 박자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대상적 지식은 대상에 대한 지적인 인식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성학은 삶에 대한 실천과 인식의 문제입니다. 옛 성현들의 삶을 보고 생각하고 실천하면 자기 자신도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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要之, 兼理氣統性情者, 心也. 而性發爲情之際, 乃一心之幾微, 萬化之樞要, 善惡之所由分也. 學者誠能一於持敬, 不昧理欲, 而尤致謹於此, 未發而存養之功深, 已發而省察之習熟, 眞積力久而不已焉, 則所謂精一執中之聖學, 存體應用之心法, 皆可不待外求而得之於此矣.
요컨대 이기를 겸하고 성정을 어울러 거느리는 것은 마음이요, 성이 발하여 정이 되는 순간이 바로 한 마음의 기미요, 온갖 변화의 지도리로서, 선과 악이 이로부터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배우는 자는 진실로 한결같이 경을 유지하여 리와 욕의 구분에 어둡지 않고, 더욱 여기에서 삼가기를 지극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 마음이 발하기 전에는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공부를 깊게 하고, 마음이 이미 발하였을 때에는 성찰하여 습관을 익숙하게 하여 진을 쌓고 오래도록 힘써 그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른바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 중을 잡는’ 성학과 ‘체를 보존하여 작용에 응하는’ 심법을 밖에서 구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여기에서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심통성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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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에서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는 마음에 대해서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심통성정도가 퇴계의 심법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리가 있고 생산적인 인법이 있습니다. 마음을 잘 살펴서 자신의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 생산적인 인법에 의해서 나온 것인지 잘 구별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정일집중으로 성학과 심학을 역기서 다 요약하고 있습니다.”
경의 자세로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황과 함께 경(敬)이라는 한자를 함께 외웠던 것 같다. 이황의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바로 경이다. 그렇다면 경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광호는 조심하고 존경하는 자세를 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조심하고 존경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무엇을 향해 조심하고 존경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까?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성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한다. 자기마음에 천명과 진리가 있기 때문에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이광호는 이런 자세가 바로 경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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要之, 用工之要, 俱不離乎一敬. 蓋心者, 一身之主宰, 而敬, 又一心之主宰也. 學者熟究於主一無適之說, 整齊嚴肅之說, 與夫其心收斂常惺惺之說, 則其爲工夫也盡, 而優入於聖域, 亦不難矣.
요컨대 공부의 요체는 모두 하나의 경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대게 마음이란 한몸의 주재이며, 경은 또 한마음의 주재이다. 배우는 사림이 ‘주일무적’의 설과 ‘정제엄숙’의 설, 그리고 ‘그 마음을 수렴한다’는 설과 ‘항상 또렷이 깨어 있게 한다’는 설에 대해 깊이 궁구한다면 그 공부를 다하여 충분히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심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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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는 마음이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만 알아도 학문의 절반을 해낸 것이라 말한다. 사실 우리 모두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건 익히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알면서도 마음을 하찮게 여기거나,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황은 심학도를 풀이하며 마음을 잘 모으고 깨어있으라 조언한 것이다.
이광호는 학문이 크게 인간 완성의 학문과 대상 완성의 학문으로 구분된다고 이야기 한다. 대상 완성의 학문 또한 중요하다. 대상 완성의 학문이 존재했기에 현대의 삶이 이토록 편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매진해야 할 학문은 인간 완성의 학문이다. 이광호는 인간 완성의 학문이 인문학으로써 대상 완성의 학문을 뒷받침 해줄 때 인류의 삶이 더욱 향기로워 질 수 있으리라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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