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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꼭 다리를 잡고 마셔야 한다고?

오버하지 말고 편하게 마시자,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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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와인 서빙을 받다 보면 일단 숨이 컥, 막힌다. 웨이터가 와인을 가져오고 라벨을 확인시킨 후 천천히 코르크를 열고 테이스팅을 한다. 따라놓은 와인을 손님이 천천히 맛본다. 이 장면에 흐르는 정적은 종갓집 기제사 수준이다. 손님들은 엄숙하게 입을 다물고 있고, 웨이터 역시 술을 바치는 종손의 표정처럼 진지하기만 하다.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와인 서빙을 받다 보면 일단 숨이 컥, 막힌다. 웨이터가 와인을 가져오고 라벨을 확인시킨 후 천천히 코르크를 열고 테이스팅을 한다. 따라놓은 와인을 손님이 천천히 맛본다. 이 장면에 흐르는 정적은 종갓집 기제사 수준이다. 손님들은 엄숙하게 입을 다물고 있고, 웨이터 역시 술을 바치는 종손의 표정처럼 진지하기만 하다.


우리는 조금만 와인을 알면 전문가 행세를 한다. 그때부터 와인 마시는 게 불편해진다.

이거, 참 심하다. 20년 정도 지하 카브Cave 와인 저장고에 잠자고 있던 정체불명의 와인을 개봉하는 순간 같다. 너무들 쫄았는지 와인 마시는 것을 신성시하는 집단처럼 보인다.

왜들 그럴까. 와인이 처음 우리나라에 전해질 때 받은 잘못된 교육(내지는 눈치껏 알게 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회사의 중역진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교육’이 있고, 호텔이나 레스토랑에도 와인 교육 프로그램이 많다. 내게도 교육 요청이 오곤 한다.

“수능시험장에 온 수험생들 같다니까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 호텔 직원의 말이다. 서점에 가서 와인 책을 열어보시라. 테이스팅Tasting 하는 법을 아주 자세히 써놓은 책들이 많다.

“입을 오므리고 숨을 훅 들이마신다. 천천히 입 안에서 굴린 후 음미하듯 목구멍으로 넘겨라…….”고 쓰여있다. 정말 웃긴다.

종종 외국의 유명 와이너리Winery(양조회사) 사장이나 와인메이커Winemaker(와인 제조자)들이 구경 온다. 꼴에 와인업계 종사자라고 내게도 초청장이 온다. 그곳엔 잘 차린 음식이 있고 충분한 와인이 있다. 그냥 먹고 마시면 된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외국의 와이너리 사장들은 특이한 감상평을 내놓곤 한다.

“이분들 모두 소믈리에나 와인 품평가들인가요?”

사실 앞서 와인 책에 묘사된 테이스팅 법은 와인 종주국의 일반인조차 거의 모르는, 또는 알고도 하지 않는 방법이다. 소믈리에나 품평가들이 해야 할 방법을 일반인이 쓰고 있으니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우리나라는 이런 과잉의 경우가 흔하다. 청담동 레스토랑에 몰려드는 아주머니들이 뉴욕 직장여성의 옷차림과 명품 가방을 들고 오질 않나(이걸 ‘청담동 며느리룩’이라고 부른다), 종주국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제대로 마시기 힘든 와인을 수시로 마시는 사람도 많다. 내 돈 내고 내가 마시겠다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문제는 늘 과잉이고 ‘오버’라는 점이다. 이제 갓 사진 이론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이 ‘라이카Leica 풀 세트’ 카메라를 장만하는 것처럼 말이다(실제로 충무로에 가면 이런 사람들 때문에 카메라 상점이 먹고산다고들 한다).

여기에 한술 더 뜬다. 와인잔은 그저 편하게 잡고 마시면 된다. 그런데 어디서 와인 교육을 받거나 책 한 줄 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잔 다리Stem를 잡고 마신다.

영 어색하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 뉴스에서 와인 마시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 2004)>를 봐도 그렇다. 대부분 잔의 몸통Bowl을 잡고 마신다.

프랑스 수상이나 유럽의 고급 관료가 나오는 뉴스 화면을 봐도 그들은 몸통을 잡는다. 격식을 가장 중요시하는 관료들의 행동이니 믿을 만하지 않을까. 부르고뉴Bourgogne나 보르도Bordeaux의 와인 기사 작위 수여식 같은 축제 장면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와인 전문가들이 몸통을 잡고 건배를 한다. 와인 기사 작위를 받기 위해 초청된 한국과 일본 사람만 유독 위태롭게 다리를 잡고 마신다.


자, 이게 무슨 뜻일까. 지금까지 당신이 받은 와인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종주국 사람들, 그중에서도 와인업계 관련자들마저 하지 않는 습관을 우리는 애써 하고 있는 것이다. 와인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왜 그것을 둘러싼(껍데기라 해도 좋다) 것에만 몰두하는 것일까. 와인에 대한 깊은 애정은 고사하고 “무슨 무슨 그랑크뤼를 마셨는데 기막히더군”하는 말이나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와인잔은 다리를 잡고 마시면 안 될까? 그렇지는 않다. 내가 편한 대로 들고 마시면 된다. 책에 나온 대로 “와인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꼭 다리를 잡고 마셔야 한다”는 말이 틀렸을 뿐이다. 아니, 당신의 체온이 얼마나 높기에 와인의 온도가 변한다는 건가. 설사 그렇더라도 온도가 좀 변하면 큰일이 나는 건가? 그런 건 와인을 품평하는 전문가들이 가치를 매길 때나 하면 되는 일이다.

다리나 잡으면 다행이다. 어떤 이는 다리 밑의 받침Base을 들고 마신다. 정말 위태롭고 안쓰럽기 짝이 없다. 받침을 들고 마시면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는 어떻게 하나? 그런 방법은 와인 전문가가 되기 위해 시음을 할 때나 쓰는 방법이다. 그것도 아무 와인이나 그렇게 하는 것은 우습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거나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쓰는 방법이다. 이걸 일반 레스토랑에서 연출하면 결례는 아니지만 한참 ‘오버’가 되는 것이다. 편하게 좀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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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의 와인 박찬일 저 | 나무수
와인을 술이라기보다 일종의 국물로 해석하는 서양 요리사 박찬일. 그가 한국인의 잘못된 와인 지식을 바로잡아 올바른 와인 상식을 알려주고 일상 속 ‘보통날에 와인 마시는 즐거움’을 전한다. 와인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와인에 대한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와인을 마시는 법을 알려주는 이 책은 2007년 출간된 『와인 스캔들』의 완전개정판이다. 5년 동안 달라진 와인 정보와 더불어 작가의 장점인 요리와 와인 분야를 강화했다.

 





요리, 와인 관련 서적들

[ 보통날의 파스타 ]
[ 샐러드가 필요한 순간… ]
[ 와인에 어울리는 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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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찬일

기자로 일하던 중 이탈리아 영화에 매혹되어 3년간 이탈리아에서 와인과 요리를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귀국해 셰프 생활을 시작했다.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제대로 권할 줄 아는 국내 몇 안 되는 요리사다. 트렌드세터들이 모이는 청담동,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등의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아 음식 본연의 맛을 요리했다. 시칠리아 유학 당시 요리 스승이었던 주세페 바로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가장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요리를 만든다”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 ‘동해안 피문어와 홍천 찰옥수수찜을 곁들인 라비올리’,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과 청양고추’, ‘봄 담양 죽순찜 파스타’와 같은 우리 식재료의 원산지를 밝히는 명명법은 강남 일대 셰프들에게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지은 책으로는 『보통날의 와인』,『보통날의 파스타』,『박찬일의 와인 셀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어쨌든, 잇태리』,『추억의 절반은 맛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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