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이란 무엇인가?
미식이란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먹느냐에 달렸다. 참돔은 대가리 부분이 맛있고, 내장까지 먹어도 되는 꽁치는 뱃살이 맛있다. 이처럼 재료가 지닌 특성을 이해하고 제대로 먹는 것, 그것이 바로 미식이다.
<참돔대가리구이의 일미, 눈주위살>
무엇을 먹느냐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먹느냐를 고민하자는 게 내 지론이다. 그리고 이 지론을 설파하기 위해 ‘맛객 미식쇼’를 기획했다. 많고 많은 쇼가 있지만 미식쇼라니. 이 생경한 쇼의 등장에 대체 미식쇼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길 터. 자~ 미식쇼에 대해서 알아보자.
미식쇼의 기획과 연출은 나의 몫이다. 요리를 즐기는 분들은 출연자이고, 블로그와 잡지, 책을 통해서 후기를 감상하는 분들은 관객이라 할 수 있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출연자든 관객이든 미식을 놀이로 쇼처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미식의 수준이 향상되어 삶의 행복이 커진다면 이것 또한 의미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동안 우리의 미식은 3단계로 진화되어 왔다. 1단계는 예찬의 시대였다. 1대 맛평론가들에 의해 행해진 맛집 소개가 대표적이다. 주류 언론에서는 현재 맛집 블로거들을 주례사 비평이라고 비판하지만, 그 원조는 1세대 맛평론가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단계는 삶의 질 향상과 미식에 대한 욕구상승으로 인해 미각도 점차 까다로워지기 시작했다. 예찬과 비판이 싹트기 시작했다. 적당한 상찬과 적당한 비판은 현재의 경향이다. 3단계는 앞으로 다가올 흐름이며 진정한 미식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미식은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특수한 부류들만의 미식이었다. 내가 말하는 미식의 시대는 미식의 대중화, 미식인구의 저변확대를 말하는 것이다. 예찬과 비판을 넘어 미식을 놀이로, 또 쇼처럼 즐기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아직 맛집 탐방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국내 미식의 수준을 향상시키자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전망이기도 하다.
개개인의 미식 수준이 식당의 맛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는 건, 식재에 대한 안목이나 재료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음식에 대한 분석이 접시 안에서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식재에 대한 조예가 깊어진다면 요리에 대한 평가는 접시 안이 아니라, 요리의 재료를 따라 산지까지 넘나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식재에 대한 탐구는 맛객 미식쇼의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미식쇼 이전의 미식 모임에서는 요리가 나오면 사람들은 맛을 보기 전에 음식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그럴 때마다 일단 맛부터 보라고 했다. 나의 설명이 앞서면 음식에 대한 집중이 떨어질 뿐 아니라 관념적인 맛만 느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각이란 타고난다. 하지만 집중과 훈련, 노력, 지식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미각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기에 미식쇼를 통해서 식당처럼 단순히 맛만 보여주지는 않을 생각이다. 식재에 대한 안목, 제철 재료가 지닌 특성, 요리법 등 복합적인 요소를 다룰 생각이다. 진정한 미식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착각하지는 말라. 미식은 고급이고 값비싼 식재료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편견은 껌을 싼 종이를 버리듯 해라. 그런데 나의 기우는 벌써 현실이 되고 있다.
“미식쇼 참가비가 올라간 걸 보면 이번엔 엄청 고급일 듯합니다.”
어느 분이 남긴 댓글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미식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다. 미식쇼의 미식을 단순히 가격으로만 보는 시각을 나는 경계한다. 미식이란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격과 가치는 궁극적으로 맞닿아 있지만 한편으로는 차이가 있다. 가격은 물질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가치는 정신에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미식쇼에 나온 요리 중에 유기농 달걀에 버무린 옻순무침이 있었다. 옻순은 산채이다. 하지만 일반 산채와 달리 채취 시기가 무척 짧다. 약 일주일간의 때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말하자면 죽순만큼이나 찰나의 식재료이다. 나는 멀고 먼 길을 떠나 남도 어느 야산에서 적기를 맞은 옻순을 채취해왔다. 100g도 안 되는 옻순은 가격으로 치면 단돈 천 원도 안 된다. 시골에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나무순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채취한 옻순의 가치도 천 원에 불과할까?
<옻순무침>
아니다. 이 옻순에는 제철의 식재를 구해서 요리로 만들겠다는 나의 정신과 시간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이는 예술가의 작품을 평가할 때와 같다. 화가의 작품 원료는 종이와 물감에 불과하다. 가격으로 치면 맥주 몇 병 값밖에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에는 화가의 영혼이 들어있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물어보겠다. 당신의 어머니가 차려준 소박한 밥상과 일류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중 어느 음식에 더 가치를 매기겠는가?
물론 음식은 가치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음식의 덕목 중에 큰 비중을 하지하고 있는 게 맛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음식은 기본적으로 맛있어야 한다. 옻순이 맛있냐 하면 솔직히 맛은 없다. 달지도 시지도 않다. 지방이 풍부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옻순은 미식의 소재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나는 입을 다물고 말을 아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미식에 대해서 고찰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얘기를 하겠다.
맛이 없다고 해서 미식이 아닌 건 아니다. 또 맛있다고 해서 반드시 미식은 아니다.
『로산진 : 요리의 길을 묻다』(박영봉, 진명출판사, 2010)이라는 책에서 로산진은 미식의 깊이에 대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량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무량의 매력을 무미의 미라고 덧붙였다. 이는 대미필담(大味必淡, 정말 좋은 맛은 담백한 맛이라는 의미)으로도 풀이된다. 정의 내려지지 않는 맛, 때문에 무한한 전개성이 있는 맛, 그리하여 혀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채우는 맛이다. 이것이 바로 깊이 있는 미식이다. 그런 차원에서 옻순은 무량의 매력이 있는 소재인 셈이다. 내가 옻순을 미식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재료들로 나만의 미식쇼를 연다. 이 미식쇼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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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객 미식쇼 김용철 저,사진 | 엠비씨씨앤아이
예약 대기자 1000여 명, 맛객 미식쇼! 이 생경한 이름의 쇼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지 궁금증이 일 것이다. '맛객 미식쇼'는 한 달에 두 세 번, 맛객 김용철이 제철 자연에서 찾은 재료들로 소소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다. 『맛객 미식쇼』에는 그의 요리 철학과 미식 담론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맛, 인생에서 찾은 맛을 나누며 행복을 느낀다고 믿는다. 그래서 맛객의 요리를 접한 사람들은, 맛은 몰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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