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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끊겨 버린 그날부터 내 방은 너무 추워’ - 블록 파티, 엘 카스타, 진보
세상은 변했다.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 영국출신 개러지 록 밴드 블록 파티(Bloc Party) 국내의 신인 일렉트로니카 듀오 엘 카스타(El_Casta) 무료 배포용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한 통 큰 남자, 진보(Jinbo)의 신보
음악에도 유행은 있습니다. 2000년대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흐름이라면 개러지/ 포스트 펑크 계열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예전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신의 밴드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하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블록 파티는 그들 중 국내에서도 은근한 팬 층을 보유하고 있는 밴드죠…
음악에도 유행은 있습니다. 2000년대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흐름이라면 개러지/ 포스트 펑크 계열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예전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신의 밴드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하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블록 파티는 그들 중 국내에서도 은근한 팬 층을 보유하고 있는 밴드죠. 최근 발표된 영국출신 개러지 록 밴드인 그들의 신보, < Four >를 소개해 드립니다. 국내의 신인 일렉트로니카 듀오 엘 카스타의 앨범과 무료 배포용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한 통 큰 남자, 진보의 신보도 함께 소개합니다.
블록 파티(Bloc Party) < Four >
음악계에 소포모어 징크스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뮤지션들 중 개러지/포스트 펑크 밴드들만큼 많은 징크스를 보이는 이들도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밴드들이 놀랄 정도의 호평과 함께 화려한 신고식을 치르지만, 시간이 지나며 기억에 남는 그들의 모습 중엔 결국 데뷔음반이 8할 이상인 경우도 허다하지 않던가.
전부는 아니지만, 앞서 말한 경향은 특히 영국 그룹들에 더 집중되는 듯 보인다. 블록 파티 역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밴드다. 물론 이후의 행보가 졸작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데뷔앨범의 감흥을 잊게 할 만큼 모두가 납득할만한 결과물을 내놓은 것 역시 아닌 만큼,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표현 자체에 이견을 달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생기는 궁금증은 ‘왜 유독 개러지 록 신에서 이런 현상이 잦은 것일까’라는 물음이다. 확답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미디어 하이프의 거품이 빠지는 것과 함께 시대적 상황도 그 이유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부류의 음악이 사운드의 신선함과 함께 잊혀져가던 (혹자는 ‘그 빌어먹을 놈의’라는 수식을 붙일지 모르겠지만) 록의 정신을 되살렸다고 인식되었던 반면, 지금은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탓이다.
1990년대에 그런지 록을 위시한 얼터너티브 무브먼트가 헤비메탈을 밟고 올라서며 그 의미를 잃어갔듯, 개러지 록은 이미 세기 말-세기 초에 록의 지형도를 한 차례 흔들어놓은 바 있다. 그 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위세가 전만 못한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보컬 켈리 오케릭(Kele Okereke)은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이 블록 파티의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 이유로 댄 코멘트가 “우리가 여기서부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I don't know where we'll go from here.”)는 말인 것을 보면, 그는 밴드가 겪었던 과거의 갈등과 함께 아마도 이런 신의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한 만큼, 앨범은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가장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 Four >에는 「3X3」나 「We are not good people」과 같은 완연한 하드록 넘버들도 있지만, 브릿팝 밴드들이 울고 갈 만큼 감성으로 뒤덮인 「Day four」와 「Truth」, 완벽한 후크송인 「V.A.L.I.S」와 발 구르기에 제격인 「Team A」 같은 다양한 트랙들이 혼재한다. 한 가지로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갖가지 색들이 채색되어 있는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곡들에서 주인공이 블록 파티라는 것을 절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산만함이 없게 들린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중 타이틀인 「Octopus」는 이들의 자유분방함이 어떤 형태로 집약되었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곡으로, 이만큼의 단순하고 스트레이트한 전개 하에서 이런 몽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통해 이들이 분명하게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는 밴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있다. 말 그대로, ‘존재감 입증’의 싱글에 다름없다.
[ Silent Alarm ] [ A Weekend In The City ]
흡인력 면에서는 대표작인 1집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작품이다. 이 신의 밴드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인상이 짙은 요즘, 블록 파티의 활동이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해 보는 것도 좋을 듯. 리바이벌은 현재진행중이다. 신(Scene)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이들의 음반만큼은 확실하게 그것을 강변하고 있다.
엘 카스타(El_Casta) < Dam Burst! / The Galaxy Revisited >
쉽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재미있다. 많은 사람이 ‘일렉트로니카’ 하면 떠올릴 댄서블한 요소는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으나 그것에 줄곧 주력하지만은 않는다. 수록곡들이 저마다 제시하는 화두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어떠한 이야기나 문제를 한 번 더 고민하고 상상하게 한다. 그 순간순간은 때로는 미묘하며, 때로는 직설적이다. 신인 듀오 엘 카스타(El_Casta)의 이 앨범은 그래서 난해하게 느껴지고, 또한 흥미롭다.
초입에 자리 잡은 세 곡은 제목부터 묵직함이 느껴진다. 「모더니즘의 비판적 수용」, 「종의 기원」, 「발명의 발견」은 인문학과 관련한 사유를 공유하려는 곡들임을 짐작하게 되나 엘 카스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처음 두 곡은 가사가 전혀 없으며 「발명의 발견」은 가사가 있다고 해도 ‘발명의 발견은 모두를 흥분케 했다 / 발명의 발견은 모두를 망쳐 버렸다 / 발명의 발견을 돌이킬 방법은 없다 / 발명의 발견은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해야 올바른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비판적인 견지는 나타나더라도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주도적인 청취자라면 이 짧은 노랫말을 들으면서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사안에 대해 한번쯤은 문제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짧은 문장 몇 줄만으로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경부고속도로」는 개발과 공사가 능사인 줄 아는 현 정부에 대한 유쾌한 비판이며,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illie Jean」을 입혀 새롭게 윤색한 「도시가스 revisited」는 혼자 생활하는 사람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의 서러움을 ‘도시가스 끊겨 버린 그날부터 내 방은 너무 추워’라는 단 한 줄로 압축해서 표현한다. 명확하게 의도를 전달하는 표현력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곡들은 그러나 가사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부클릿에도 그 어떤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청취자는 감상에 더해 이 그룹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불친절한 구성은 감상자들의 자유로운 판단의 공간을 열어 주기에 흥미로움을 배가한다.
엘 카스타의 음악은 일렉트로니카의 다양한 영역을 감싸고 있기에 구미를 더욱 자극한다. 이주노의 「무제의 귀환(舞帝의 歸還)」 일부와 유사한 「모더니즘의 비판적 수용」은 브레이크비트, 「세개의 세계」 역시 비슷한 형식에 인도 전통음악 요소를 가미해서 이채로움을 내며, 「Phobia revisited」는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 Human After All >을 떠올리게 하는 일렉트로닉 록을 선보인다. 범패(梵唄, 불교 의식음악)를 접목한 「Hello world!」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he great gig in the sky」를 전자음악으로 구현해 보려는 노력으로 여겨진다. 전체적으로 컷 앤 페이스트식의 샘플링보다는 신시사이저로 곡을 소화하는 까닭에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잔향이 느껴진다.
가장 관심을 끄는 곡은 「공포의 전화기」다. 불편하게 들리는 전화벨을 반복해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은 핑크 플로이드가 「Money」와 「Time」에서 행했던 방식의 모방처럼 보인다. 전화벨이 루프가 되어 곡을 장악하는 동안 노래는 통화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건넨다. 단절과 완전한 소통, 이 사이에서 느끼는 화자의 불안감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사운드의 세공 부족, 효과음을 동원하거나 확실한 완급을 통해 음악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더 친절했으면 하는 것은 아쉽다. 그러나 한치(Hanchi)와 클레이더(Clader)로 구성된 엘 카스타의 본 작품은 분명 특색 있다. 무의미한 소비 지향적인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에 머물지 않고 생각에 윤활유를 뿌려 주기 때문이다. 신생 레이블 쿵짝쿵짝 연구소와 그곳의 첫 발자취인 엘 카스타를 돋보이게 할 앨범이다.
진보(Jinbo) < KRNB >
그냥 리메이크 앨범이 아니다. 편곡이랍시고 대충 현악기만 칠하고 마는, 특색 없고 뻔뻔한, 흔해 빠진 리메이크가 아니다. 그렇다고 순전한 창작곡으로 이뤄진 작품도 아니다. 원곡의 가사는 일부 바뀌었지만 주된 멜로디는 그대로다. 히트곡에서 모티프를 얻고 오리지널과는 완전히 다르게 재가공한 ‘반(半) 리메이크’ 앨범이다. 기존에 나온 리메이크 앨범들과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다.
진보(Jinbo)는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던 노래들을 선별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단순히 지난 세월에 대한 감성을 소환하는 데 늘어지지 않는다. 히트곡들을 자기 방식대로, 자신의 빛깔로 가공하고 윤색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수록곡들은 대체로 리듬 앤 블루스 형식을 띠고 있지만 진보는 이 성격을 더 진하게 끌어낸다. 이것이 < KRNB >에서 발견되는 제일의 특징이다.
그 작업의 한 축은 농도가 한층 짙어진 가사가 담당한다. 「Gee」의 사랑에 빠진 소녀의 귀여운 가슴앓이는 「Damn」에서 끈적끈적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I need you girl」은 「I need a girl」의 연애 감정 대신에 관능적인 묘사로 수위가 높아졌다. 아침이 시간적 배경이었던 「빨간 우산」과 달리 「아름다운 그녀」는 밤으로 시간을 옮겨왔으며, 풋풋함이 사라지고 데이트할 때 발생하는 남성 특유의 심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표현이 진한 사랑 노래가 다수를 차지하는 본토 R&B의 내용적 특성을 제대로 구현했다.
흑인음악의 면면을 포함하는 넓은 스펙트럼은 농후한 풍미를 내는 다른 축이다. 잽(Zapp)의 「Doo wa ditty (Blow that thing)」에 착안했을 펑크(funk)(「아름다운 그녀」)를 비롯해 디스코(「알고 있었어」), 뉴 잭 스윙(「I need you girl」), 슬로 잼(「Damn」, 「너와 함께하면 행복해」), 마크 디 클라이브 로(Mark de Clive-Lowe)류의 전자음악 기반의 네오 소울(「Love game」, 「Late night interlude: Listen girl」) 등 지난 40년 동안 있었던 리듬 앤 블루스의 굵직한 스타일 변화를 요약한다.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풍의 사운드 또한 간간이 도드라진다. 미국에서도 이런 앨범은 쉽게 볼 수 없었으니 귀하다고 해도 넘치는 말은 아닐 듯하다. 자칫 번잡스러운 백화점식 구성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커버와 R&B라는 기준을 잘 응용했기에 결과는 깔끔하게 나왔다.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진보는 샘플링을 소극적으로 행하면서 자신만의 리메이크를 만들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어」만큼은 샘플 의존도가 무척 높다. 노래에 차용된 실비아 스트리플린(Sylvia Striplin)의 「Give me your love」 주요 마디에 루프로 사용할 만한 멋진 리듬과 거기에 덧붙이는 용도로 쓰기 좋은 연주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득을 본 인물이 아만드 반 헬덴(Armand Van Helden)이다. 게다가 진보는 원곡의 코러스까지 고스란히 삽입했다. 쉬운 절차를 밟은 것 같아 유감스럽다.
그럼에도 < KRNB >의 근사함은 크게 휘청거리지 않는다. 일관성 있는 기획, 세련된 편곡, 래퍼로서, 싱어로서 출중한 능력이 어우러지면서 멋진 작품을 완성해 냈다. 은연중에 고착된 리메이크의 방식과 규범도 깼다. 새로움과 뮤지션만의 개성 있는 해석이 돋보인다. 최고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다.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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