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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마지막 사형수는 ‘여의도 묻지마 살인’의 원조

잡힐 듯 잡힐 듯 다가오던 민주정부의 신기루는… ‘절망투쟁’의 시대, 그리고 ‘절망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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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스크랩으로 1987~1991년을 뜯어보았다. 각 해의 대표 키워드를 내맘대로 정해본다. 1987년은 기대와 절망, 1988년은 5공청산, 1989년은 방북과 공안, 1990년은 3당통합, 1991년은 분신정국이다. 민주주의가 ‘개뿔’이라는 폄하를 당하던 시대였다. 1960~70년대 박정희 독재의 칠흑 같은 어둠과 80년 광주의 비극을 지나 이제는 좋은 날이 올 것만 같았다.






전경 100여명 집단난동
부산시경기동대 “부대해체→전속” 불만 술먹고
한밤 내무반ㆍ버스 등 박살
부대이탈 가두 농성까지
인근 중대 백여명도 합세…13시간 만에 해산


【부산=김대성 기자】2일 상오1시께 부산 남구용당동 부산시경 제2기동대장(중대장 정태습 경감) 소속 전경 1백7명이 부대해체에 반발, 내무반 집기와 창유리 1백20여장, TV, 커피자판기, 공중전화, 병력수송버스유리 등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고 농성하다 상오 8시40분께 부대를 이탈 서면 태화쇼핑과 동래구 사직운동장으로 옮겨가며 ‘부대해체결의’를 요구하며 시위했다.
또 동래구 온천2동 기동5중대원 1백1명도 2중대원들의 집단난동소식을 듣고 전경수송버스 2대를 타고 부대를 무단이탈 2중대원들과 합류했다.
이들은 시경간부들과 면담, 부대해체 후 전경대에 배치하지 않고 다른 부서로 배속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하오2시께 자진해산, 부대로 복귀했다.
이들은 당초 현역병으로 입대했으나 전경으로 차출돼 시위진압 현장에 동원된데 대한 불만이 누적된 데다 부대가 해체돼 타부대로 전출될 경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을 우려,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략)

(<한국일보> 1990년 6월3일치)






군인 신분인 전투경찰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군 입대를 하고서도 군부대가 아닌 경찰서에서 먹고자며 대학생 등 민간인과 싸워야 하는 스트레스에 부대해체 이후에 대한 불안감까지 더해졌다. 단순히 술기운 때문이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자신들이 처한 모순을 이성적으로 공유했기에 100여명이 함께 했을 거다. 당사자들의 통쾌함도 잠시. 곧 ‘코가 깨지고 피가 흐르는’ 보복을 당했겠지. 당시 신문들을 찾아보니 주동자급 6명은 구속됐다. 그럼에도 잠시나마 겪은 ‘금기된 반란의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고 임펙트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시처럼 ‘칭찬이 되고 상금이 될’ 인생의 자산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춤추는 여인

창 속에 숨겨진 이상한 글자
역사의 두 얼굴이 娼家를 둔다

빌어먹을 놈들
대통령이 할 수 없이 바지를 벗는다

殺人과 온갖 罪惡의 亂舞
피가 흐르는 江물 속에서 춤을 춘다

羊은 조용히 잠들고
牧者도 가만히 웃는다

(1991년 스크랩 서시)





피가 흐르는 강물 속에서 춤을 춘다….
1991년이 왔다. 난 스물넷이었고, 아버지는 쉰여섯이었다. 1989년 8월에 강원도의 소도시 고향에서 방위 복무를 시작한 나는, 1991년 1월23일 소집해제(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 1주일 전인 1월17일 미국을 포함한 다국적군이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를 향해 대공습을 감행했다. 걸프전이었다. 혹시나 이로 인해 제대가 미뤄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새롭다. 2월28일에 끝난 40여일의 전쟁에서 미국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다국적군의 전사자는 378명. 이라크전 희생자는 20만 여명. 피가 흐르는 강물이여.




1991년의 국내 정세도 피가 흐르는 강물이었다. 다국적군의 폭격과는 관계없으나, 경찰에 맞아죽고 스스로 불붙여 죽어서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김지하 시인은 <조선일보> 5월5일치에서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고 일갈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그해 2월에 노태우 정부는 한차례 위기를 수습했던 터였다. ‘노태우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라는 수서사건이었다. 당시 서울시가 한보그룹 소유의 서울 강남구 수서택지 개발예정지구내 3만5500평을 특정조합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정치권-기업-관 사이에 로비와 뇌물이 횡행했던 것이다. 로비를 하고 뇌물을 준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물론 뇌물을 받은 여야 의원 8명이 구속됐다. 청와대 장병조 비서관도 이에 연루되어 구속됐다. 정부는 2월18일 정부요직 개편을 단행했고, 19일엔 노태우 대통령이 ‘국민에 사과’했다.




노태우 정권의 위기는 계속됐다. 4월26일 등록금 인상 반대 등 학내민주화 투쟁에 참여한 명지대 경제학과 1학년 강경대 군이 서울시경4기동대94중대 소속 전경(이른바 ‘백골단’) 4명에게 쇠파이프 집단구타를 당한 끝에 사망했다. 사건 발생 다음날 노태우 정부는 안응모 내무부 장관을 전격 경질해 문책했으나 정국은 가라앉지 않았다. 재야 35개 단체는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정권퇴진 전면투쟁’을 선언했다. 이른바 ‘치사정국’의 개시.


전국 곳곳에서 시가전 같은 데모가 벌어지는 와중에 분신이 시작됐다. 1991년 한 해 총 11명이 분신했다는 통계가 있다. 전남대생 박승희가 분신했고(4월29일), 안동대생 김영균이 분신했고(5월1일), 경원대생 천세용이 분신했다(5월3일). 여기까진 이틀에 한 명 꼴이었다.

5월8일에는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 옥상에서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5월18일엔 전남 보성고에서 이 학교 3학년생 김철수군이 분신을 기도했고, 같은 날 연세대 정문 앞 철로다리 위에선 39살 주부 이정순씨가 분신한 뒤 인도바닥으로 투신했다. 그녀가 분신 직전 외친 구호는 “노태우 정권 물러나라”였다고 한다. 무엇이 4남매의 어머니인 그녀로 하여금 정권에 대한 그토록 불타는 적개심을 품게 했을까. 5월14일의 강경대군 영결식 등 초대형 가두시위는 그치지 않는다. 5월25일엔 서울 도심의 가두시위 도중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을 당하던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사망한다.

노태우 정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전과 역공의 날개를 얻는 일이 생겼다. 서강대 총장 박홍은 ‘분신 배후설’을 유포했고, 검찰은 가상의 배후가 아닌 현실의 배후로 전민련 사회부장 강기훈을 지목했다.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강기훈은 재야단체의 보호아래 명동성당에 칩거하며 맞섰지만 결국 6월24일 검찰에 출두한 뒤 구속됐다.

5월24일 총리에 임명된 정원식 총리는 두 주 만인 6월5일 외국어대 교육대학원에 마지막 강의를 하러 왔다가 학생들에게 붙들려 밀가루와 날계란 세례를 받았다. 그를 공격한 학생들은 ‘전교조 교사들을 파면하고 구속했던 전 문교부장관 정원식의 과거’를 상기시켰다. 강기훈과 정원식 사건을 딛고 노태우 정권은 우쭐해졌다. 재야와 시민단체, 학생운동권은 ‘인격파탄자’ 취급을 받으며 손가락질당하고 움츠려 들었다.






농부 “홧김에” 방화
“촌놈에 술 안 판다”에 격분 휘발유 뿌려
나이트클럽 16명 사망
대구서 1백50명 탈출소동…4명 중태


【대구=최영옥ㆍ김재산 기자】17일 밤 9시50분쯤 대구비산4동333의2 농춘빌딩 지하1층 거성관나이트클럽(주인 양귀영ㆍ42)에서 술을 마시러 왔던 김정수씨(30ㆍ농업ㆍ경북 금릉군 부항면부산리308)가 술을 주지 않는데 앙심,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서상우씨(26ㆍ한전 직원ㆍ경북 영천교동)등 남녀 16명이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졌다.
또 김월생씨(67ㆍ포목상ㆍ대구 봉덕동 반도아파트 C동201호) 등 4명은 유독가스에 기도화상을 입고 동산의료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나 모두 중태다.
화재 당시 홀 안에 있던 손님 1백50여명은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고 폭 3m의 비좁은 출입구로 한꺼번에 몰려 많은 사람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데다 천장과 무대 앞 바닥에 깔린 천등이 타면서 유독가스가 발생, 인명피해가 컸다.(중략)
김씨는 이날 밤9시30분쯤 혼자 술에 취해 이 나이트클럽에 갔으나 “촌놈에게 술을 팔지 않는다”는 종업원들의 말에 격분, 이곳에서 70여m 떨어진 태양주유소에서 휘발유 6리터를 구입, 비상구를 통해 들어가 무대뒤쪽에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불이 나자 종업원 1명이 누전에 의한 화재로 착각, 전기스위치를 내려 실내는 암흑천지로 변했으며 술취한 손님들은 출구를 찾느라 뒤범벅됐다.(하략)

(<국민일보> 1991년 10월19일치)






모든 죽음은 평등하다. 1991년에 그들만 죽었는가. 치사-분신정국의 회오리 속에서 스러져간 이들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구에선 “촌놈에게 술을 팔지 않는다”는 나이트클럽 종업원의 말에 격분한 농부가 불을 질러 클럽에서 놀던 16명이 죽었다. 분신정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신 타살’. 어이없는 개죽음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



대구방화 이어 또 인명경시 ‘화풀이 범행’
훔친 차 여의도광장 “살인 폭주”
주말나들이 어린이 2명 참사
21명 중경상, 실직 20대 범인 “세상에 복수”
여중생 인질극도…“눈감고 달렸다”


무고한 제3자들을 희생시키는 격발성 화풀이 범죄가 또 일어났다. 지난 17일 밤 대구의 나이트클럽에서 괄시를 당한 영농후계자의 방화로 16명이 사망한지 이틀 만에 시력이 나빠 직장에서 여러 번 쫓겨났던 20대 청년이 세상에 복수하고 자살하겠다며 훔친 승용차를 몰고 여의도광장에 난입, 2명이 차에 치여 숨지고 21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19일 하오4시35분께 차량통행금지구역인 서울 여의도 놀이광장에 실직자 김용제(20ㆍ무직ㆍ강도 예비전과1범)가 훔친 서울3구6539호 프라이드 승용차를 시속80km로 몰아 KBS쪽에서 마포대교쪽으로 4백40m 가량 가로질러 돌진, 자전거를 타고 놀던 지현일군(11ㆍ신봉국교5년ㆍ서울 관악구 봉천1동49의2)과 윤신재군(5ㆍ서울영등포구영등포동8가 클로바아파트2동113호)등 2명을 치어 숨지게 하고 이정남씨(23ㆍ서울 도봉구수유2동 아카데미빌라 다동202호)등 21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중략)
이날 여의도 광장은 자전거 롤러스케이크를 타러 나온 청소년 등 주말놀이 인파로 붐볐는데 김이 4단 기어를 넣고 질주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김은 지군 등을 친 뒤 KBS 쪽으로 차를 되돌려 지그재그로 몰고 달아나다 새마을봉사대 초소에서 20여m 떨어진 자전거 공구함을 들이받아 유아용 자전거가 앞바퀴에 걸리는 바람에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차 밖으로 나왔다. 김은 이어 1백50m 가량 달아나 자전거를 타고 놀던 김병춘양(13ㆍ신도림중 1년) 목을 조르고 갖고 있던 등산용 칼을 휘두르며 위협, 5분간 인질극을 벌이다 쇠파이프 등을 든 김창석씨(35) 등 새마을봉사대원 8명과 격투끝에 붙잡혔다. (중략)
김은 경찰에서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양말공장에서 쫓겨난 뒤 부산의 신발공장에 다시 취직했으나 또 쫓겨나 1주일전 서울로 돌아왔다”며 “이왕 죽을 바에야 세상에 복수하고 죽자는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하략)

(<한국일보> 1991년 10월20일치)






한국에서 ‘묻지마 살인’의 원조격이 되는 사건이다. 여의도광장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의 중심부에 동서남북으로 약 22만㎡ 펼쳐진 공간이었다. 1997년부터 공원화사업이 추진되어 지금은 숲으로 변했지만, 그 전에는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시원하게 펼쳐진 공터였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곳에서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주로 청소년과 어린이가 많았다. 롤러스케이트도 아니고 자전거도 아닌 프라이드 승용차가 시속 80km의 속도로 이곳을 미친 듯이 달렸다. 두 명이 죽었다. 2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012년 8월22일 발생한 ‘여의도 칼부림’사건은 1991년 사건의 데자뷔다. 렉싱턴호텔 부근 전 직장 근처 도로에서 옛 동료 두 명에게 칼을 휘두르고 지나가던 행인들까지 닥치는 대로 찌른 피의자 김아무개씨. 그는 경찰에서 “무직인 스스로가 한심해 자살하려고 했으나 혼자 죽기 억울했다”고 말했다. 여의도 광장에서 차를 몰았던 김용제씨도 여러 직장에서 쫓겨난 무직자였다. 그 역시 “이왕 죽을 바에야 세상에 복수하고 죽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2008년 7월의 동해시청 공무원 살인사건, 2008년 8월의 서울 논현동 고시원 방화ㆍ살인사건, 2010년 12월 게임중독자의 서울 잠원동 살인사건 등을 기억하시는가. 2012년 8월 여의도 칼부림 사건은 1991년 10월 여의도 차량질주에서 시작한 무차별 화풀이 범죄의 계보를 잇는 결정판이었다.

김용제는 1992년 6월 대법원에서 사형확정판결을 받았다. 5년 뒤인 1997년 12월30일엔 다른 사형수 22명과 함께 교수형을 당했다. 그날은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기록된 사형집행일이다.

念念不忘

人生生因은 무엇인가
生而知之한 사랑의 원리
風土 속에서 바람꽃이 피었구나

신앙의 貞操
사랑의 貞操
누가 있었드냐 말하지 말라

세월은 말이 없이 흐른다
세월은 소경의 지팡이
歲月如流에 가슴을 친다

오늘도 나는 먼 산을 본다
흐르는 구름 속에 내 정을 묻어버리고
그림 없는 묘비에 한 줄기 글을 쓰리라

1991. 1. 1





‘염염불망’(念念不忘)이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사랑의 원리를’ 배우지 않고도 태어나면서부터 안다(生而知之).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먼 산을 본다고 썼다. 정은 묻어버려야 한다. 그림 없는 묘비에 한 줄기 글을 쓸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란다.

아버지의 스크랩으로 1987~1991년을 뜯어보았다. 각 해의 대표 키워드를 내맘대로 정해본다. 1987년은 기대와 절망, 1988년은 5공청산, 1989년은 방북과 공안, 1990년은 3당통합, 1991년은 분신정국이다. 민주주의가 ‘개뿔’이라는 폄하를 당하던 시대였다. 1960~70년대 박정희 독재의 칠흑 같은 어둠과 80년 광주의 비극을 지나 이제는 좋은 날이 올 것만 같았다. 잡힐 듯 잡힐 듯 다가오던 민주정부의 신기루는 1987년 12월 눈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재집권에 성공한 기득권세력은 잠깐 뒷걸음질 치는 흉내를 내다가 3당합당이라는 마술쇼를 통해 공룡으로 변신했다. 6공은 5공과 단절하려 했지만, 민주주의를 바라는 대중들의 눈에 둘의 큰 차이는 없었다. 어쩌면 ‘절망투쟁’의 시대였다. 2012년 사회의 안전망에서 낙오된 채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거리에서 칼을 휘두르는 ‘절망살인’과 비슷한 개념으로서 말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끝내 저버린 채 이성을 잃고 스스로에게 칼 아닌 휘발유와 성냥불을 들이대는.




이런 분위기 탓일까. 1991년 기독교계 일부에선 ‘극단적 종말론’이 퍼져나갔다. 1992년 10월28일 세상이 멸망하고 예수가 재림한다는 ‘시한부 종말론’. 이를 믿는 신도들은 거리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선교를 했다. ‘천국티켓’을 사고파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해 12월 거대한 소련 연방이 종말을 고했다. 연방 산하의 공화국들은 쪼개졌다. 그리고 스크랩을 만들던 아버지에게도 종말의 그림자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참고한 책

『대통령 이야기』(강준식 지음, 예스위캔, 2011)
『한국현대사산책 - 1990년대편 1권』(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과, 2006)
『한국현대사산책 - 1980년대편 4권』(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과, 2003)
『청와대 비서실4』(오병상 지음, 중앙일보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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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경태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한겨레21」「씨네21」편집장과 한겨레 esc 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 홈스쿨』(2011)과 『유혹하는 에디터』(2009), 『직설』(공저, 2011)이 있다. 가족을 사골국물처럼 글감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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