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은 6월 중순에 발매되었지만, 알려지고 있는 것은 7월 중순 이후부터입니다. < 나는 가수다 >를 통해 전 세대적 친숙함을 획득한 박정현의 앨범 이야기인데요. 아무래도 앨범의 홍보 활동이 부족해 대중들에게 컴백의 체감이 늦어진 모양입니다. 뒤늦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그의 신보, < Parallax >를 소개합니다. 국내 힙합 신의 듀오인 이루펀트의 신보와 시원한 개러지 록을 선보이는 인디 밴드 이스턴 사이드 킥의 앨범도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박정현 < Parallax >
4집 「꿈에」로 가창력의 절정을 선보인 이후 박정현은 절창하는 가수보다는 아티스트의 길을 걷는 데 더 주력해 왔다. 5집부터는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기 시작했고 6집은 두 곡을 제외한 모든 트랙을 본인 곡으로 채웠다. 이러한 행보는 음악인으로서 갖게 되는 자연스런 욕망의 발로인 한편, 자신의 음악적 역량이 능수능란하게 음의 고저를 휘젓는 가창 실력으로만 언급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다듬은 앨범은 늘 다른 것에 대한 갈망, 다른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야심으로 가득했다.
<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은 박정현에게 제2의 전성기를 선물한 동시에 대중적 사랑에 대한 책임감도 함께 부여해 버렸다. 소리든 비주얼이든 극적인 것이 환영받는 프로그램 성격상 그의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창법은 청중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과시를 위한 보컬보다는 노래의 맛을 살리는 보컬로 표현 영역을 넓혀 오던 그간의 방향과 나가수 무대의 간극은 불가피했다. 게다가 매주 색다른 모습과 장르적 변신을 거듭하며 대중의 갈증을 충족시켜 온 그였다. 이제 ‘새로움’마저도 오직 개인적인 목표만은 아닌 의미가 돼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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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집은 자신이 걸어 나가던 길과 도중에 만난 나가수 사이의 충돌에서 얻은 고민의 산물이다. 앨범 작업이 방송 활동 때문에 중단됐다가 프로그램 종영 후 재개되었다 하니 전후 달라진 대중적 입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팬들의 결도 다양해졌고 여러 종류의 기대가 교차했을 것이며 대중이 원하는 음악과 자신이 하려던 음악 간의 괴리도 신경이 쓰였을 테다. 영민한 건 이 고민을 아예 ‘시차(Parallax)’라는 단어로 주제화했다는 점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나’라는 대상이 달리 보일 수 있음을 당연시하며, 간극에 놓인 자신의 현재를 음악으로 선포하고 앨범의 중심으로 끌어 들였다.
고민의 흔적은 타이틀을 리메이크곡으로 가져간 것에서도 묻어나지만,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이름에서도 읽힌다. 먼저, 정석원, 황성제, 강현민 등 기존 음악 파트너들과의 호흡을 이어 가며 지금까지 구축해 온 박정현식 음악 스타일을 멈춤 없이 다져 나간다.
정석원은 모던록 풍의 ‘도시전설’과 90년대식 발라드 「Song for me」같은, 풍부한 사운드와 함께 보컬의 다이내믹한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곡으로 앨범에 ‘확장성’을 부여하고, 황성제는 가장 대중적인 트랙이라 할 만한 「서두르지 마요」와 아름다운 서정성으로 내달리는 「그렇게 하면 돼」로 박정현표 발라드의 ‘전형성’을 잇는다.
시차가 형성되는 지점은 인디밴드들과의 협업이다. 못(MOT)의 이이언, 몽구스 멤버 몬구와의 작업은 마치 나가수 시절 색다른 무대를 연출하듯 실험적 경험을 안기며 앨범의 다양성을 견인한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몽롱함과 발랄함을 각각 발산하는 「You don't know me」와 「Raindrops」가 그 결과물인데, 뜻밖의 절묘한 어우러짐이 좋게 들리지만 이 시도가 박정현만의 감성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두 밴드의 스타일을 빌려 입은 시범적 수준에 그친다는 인상은 아쉽다. 특히 「You don't know me」의 경우 이이언의 음반에 박정현이 참여했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울 만큼 노래 분위기를 빈틈없이 압도하는 건 오히려 이이언이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다채롭고도 차분하다. 박정현의 프로듀싱 앨범들은 색색깔의 구슬이 꿰어진 한 줄의 목걸이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따금씩 다양한 색의 부지런한 나열이 과잉적이고 산만한 분위기를 주기도 했다면, 이번 완성품은 프로듀서로서의 성장이 엿보일 만큼 안정적이다. 전곡이 지나치지 않는 기운과 개성을 고루 주고받으며 균형감 있게 자리 잡았다. 다채로움 속을 관통하는 묘한 질서가 정돈을 일구는데, 밴드를 바탕으로 건반과 스트링이 사운드를 이끄는 편곡 스타일을 전반적으로 유지하면서 앨범에 일관된 톤을 입힌 결과로 보인다. 멕시코 밴드 ‘Camila’의 히트곡 「Mientes」를 리메이크한 타이틀곡 「미안해」의 편곡이 대표적 예다.
보컬은 여전히 기교를 절제하고 「바람소리 속의 그대가」에서처럼 근래 앨범에서 계속적으로 보였던 의식적인 톤다운을 잃지 않지만, 자신만의 비장의 가창력을 굳이 죽이지도 않는다. 휘트니 휴스톤을 위한 헌정곡 「Song for me」는 90년대 음악에 대한 오마주인 만큼 당시의 창법과 편곡 스타일을 디테일하게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장엄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구사되는 디바적 창법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곡이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작사한 박주연이 가사를 쓴 「그렇게 하면 돼」에서의 뮤지컬적 느낌을 살린 연출력도 근사하다. 앨범 한켠에 심어 둔, 자신에 대한 작은 고백인 창작곡 「Any other man」도 귀를 잡아끈다.
공을 들인 앨범이지만 그의 행보를 오래 지켜본 이들에게는 어쩌면 다소 평범하게 다가갈 수도 있겠다. 나가수를 통해 팬이 되었다면 또 남다를 것이다. 분명한 건, 저마다의 시점으로 박정현의 음악을 접한 이들에게 이번 신보가 서로 다른 가치로 닿는다면, 하여 자신만의 시차를 느끼게 된다면 앨범은 제 몫을 한 셈이라는 것. 현재의 자신을 음악 속에 가감 없이 집어넣고 노래로 솔직하게 투영해냄으로써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한 발짝 더 걸어 나갔다. 길게 뻗어 있는 앞으로의 음악 여정에서 박정현의 한 지점을 충분히 설명해 줄 앨범이다. 기분 좋은 고민이 의미 있는 궤적으로 남았다.
글 /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이루펀트(Eluphant) < Apollo >
“그때 누가 그랬더라 83년생부터가 / 힙합 신을 뒤엎을 거라는 발상
허나 막상 우리가 꿈꿔오던 공간에서 / 각자 먼저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했어“
이루펀트, 「공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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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이로 24살, 곡이 수록된 앨범인
< Eluphant Bakery > 시절의 이야기다. 어느덧 키비(Kebee)와 마이노스(Minos), 이 힙합 듀오는 계란 한 판을 가득 채운 30살이 되었다. 힙합 신을 집어삼킬 듯했던 젊은 혈기는 베테랑의 내력으로 차츰 변모해갔고, 이들이 남겨온 자취는 6년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디스코그래피라는 이력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 힙합의 역사로 그 이름을 새겼다.
그간 이들이 겪었던 굵직한 사건이라면 누구든 주저하지 않고 소울 컴퍼니(Soul Company)의 해체를 꼽을 것이다. 선배들이 다져놓은 기틀 위에서 장르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라는 과업을 최전선에서 이끌어 온 레이블의 마지막은 비단 창업자였던 키비와 소속 래퍼인 마이너스를 포함한 힙합 아티스트들뿐만 아니라 팬, 그리고 음악 신에 있어서도 아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이루펀트(Eluphant)의 신보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옛 집을 정리하고 새 짐을 꾸리는 과정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베테랑들이 숨을 고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울 컴퍼니의 주역이었던 키비와 라임어택(RHYME-A-) 그리고 마이노스는 곧바로 스탠다트(Standart)라는 이름의 새 레이블을 꾸려 옛 지분의 소유권을 연장해나갔고 이윽고 마이노스와 라임어택의 콜래보레이션인 노이즈 맙(Noise Mob)이 선두타자로 나섰다. 재회하는 데까지 걸린 ‘체감’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반가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끌어안은 이루펀트의 신보도 곧 찾아왔기 때문이다.
새 앨범
< Apollo >에는 신곡이 아닌 그동안 발표하지 않았던 곡들이 모여 있다. 미니 앨범이라고 표기한 앨범 커버에서 알 수 있듯 음반은 뚜렷한 정규 앨범이라기보다는 소품집의 성격에 많이 가깝다. 그러나 아쉬울 것은 없다. 이루펀트 특유의 감성을 담은 여섯들이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각 트랙에 모두 다른 보컬 피쳐링이 참여했다는 것인데, 크게 도드라지지 않게 절제력을 유지하는 앨범 전체에 각양각색의 다양한 색깔을 입히며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미래로 돌아가자 (Feat. Ra.D)」나 「별사탕 (Feat. Bumkey)」은 러브 스토리를 달콤하게 풀어나가는 이루펀트의 특기가 투영된 곡들이며 흔들리는 커플의 감정을 담은 「뭐가 다른데 (Feat. 정인)」는 정인의 보컬이 흡인력을 발휘하는 트랙이다. 한편으로 타이틀 곡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Feat. 김필)」나 「계란 한 판 (Feat. Simple J)」은 서른에 다다른 멤버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 트랙으로 그 가사가, 동세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리하게 작업한 신곡이 아닌 깔끔하게 갈무리한 미발표 곡들을 내놓은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마감처리를 제대로 해낸 비트는 그 완성도가 높고 가볍게 푼 몸으로 접근한 랩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녹록치 않은 경험을 거친 음반이기에 그 퀄리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보를 통해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여유와 결과물 모두를 획득한 셈이다.
앨범의 이름은 언젠가 인류가 달로 쏘아 올렸던 우주선 아폴로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직전의 정규 앨범이
< Man On The Earth >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루펀트의 다음 행선지가 어떤 곳일지는 눈에 선하게 나타난다. (물론, < Man On The Moon >라는 후속작의 이름을 앞서 공개한 바 있다.) 고향과의 작별을 그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항해의 일정이 이루펀트의 행보와 정확히 일치한다. 적절한 시점에 발사한 우주선은 정상 궤도에 안전히 들어섰다. 남은 것은 착륙, 그리고 달에서의 탐험이다.
글 / 이수호 (howard19@naver.com)
이스턴 사이드 킥(Eastern Side Kick) < The First >
이스턴 사이드 킥이란 이름만으로 서구 록의 본류에 대한 동양의 공격을 연상시킨다. 단순한 포부인지, 정체성에 대한 강조인지 해답이 갈구되는 순간, 스쳐 지나는 고전 한국 록의 향취가 의문의 갈증을 달랜다.
5인조 밴드 이스턴 사이드 킥은 가사로 한국적인 채색을 담는다. 마치 송골매의 초기 노래들처럼 영어의 최소화와 다채로운 미사여구의 우리말이 기교 없이 정직하게 내달리는 음색과 조화를 이루며 감칠맛을 낸다. 이것은 고유의 멋을 간직하던 고전의 모습과 닮아있어 신선하다. 또한 성토에 가까운 보컬의 허스키함이 그 부피를 증폭시키며 현재의 밴드 사운드와 비등한 비율을 맞춘다.
이런 개성은 2010년에 데뷔한 이후, 레이블 없이 두 장의 EP 음반을 만들어낸 개러지 록의 아마추어리즘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다. 플럭서스 뮤직과 손잡고 발표한 이번 음반은 이전에 비해 집중력이 강해졌다. 기존의 다섯 곡과 신곡을 묶어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음반
< The First >에는 변화된 환경에 따라 명과 암이 드러난다.
「무지개를 위한 싸움」에선 덩실덩실이란 단어로 분위기를 흥겹게 고조시키고, 「화난 수탉」에선 집어삼킬 듯 뱉어내는 탁성으로 사운드를 장악하며 특유의 강점을 지켜냈다. 여기에 「떡」과 「저기 목마른 개 왔다 간다」를 통해 발전된 트윈 기타 구조의 상호 보완성이나 반복과 단순을 이용한 흡착력 있는 기타 리프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번 음반에 자리 잡은 명이다.
하지만 인디 신이 앓고 있는 연성화는 암으로 존재한다. 음반 작업을 하면서 변화를 감행한 청량감 있는 기타 톤이 그 원인. 과도하게 정갈해진 사운드는 어울리지 않는 아기자기함으로 이질감을 부르며, 지나치게 정직한 정박 리듬은 지루함을 생성하며 엇갈린 과감성을 보여준다. 길 잃은 의욕 탓에 음반 중반부터 접어든 에너지 급감은 회복되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긴다.
< The First >는 데뷔 때부터 보여준 장점을 담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의외의 구석에서 허점이 노출되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처음’이라는 제목에서도 엿보이는 이들의 무심함이 자신들의 결과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지수지만 이스턴 사이드 킥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와 시간을 다시 배팅할 여지는 남아있다.
글 / 김근호 (ghook04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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