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자화상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내 모습과 비슷해요.
대단히 꼼꼼하게 그린 그림이다. 명암이며 색깔이 정성스럽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꿰뚫겠다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베르니니.
바로크 시대의 뛰어난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던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30대 자화상이다. 천재 조각가로 불렸던 베르니니의 명성만큼이나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면이 표정에 드러나는 듯하다.
새벽을 연상시키는 듯한 바탕색이 그 곤두선 신경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다. 아직 동트지 않은 사색의 시간에 선명하게 깨어 있는 정신. 불면증 환자와도 같은 신경질적인 모습이 보인다. 이마에 힘줄이 보여서 더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것도 같다. 뒤로 대충 넘긴 헤어스타일은 숱이 많지 않으며 단정하지도 않다. 수염은 잘 정리되어 있지만 꼿꼿하고 여유를 찾기 힘들다. 파리한 안색은 아스라한 새벽의 속성과 잘 어울린다. 마르고도 강한 얼굴선, 자세는 비스듬하지만 시선만은 정면을 뚫고 있다.
여유로움보다는 진지함과 긴장감이 느껴지는 그는 유머러스한 사람은 분명히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이 인생의 전부인 고독한 천재랄까.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위해 스스로를 날카롭게 몰아붙이고 노력했던 완벽주의자는 아니었을까?
매우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무결점으로 완수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완벽주의자는 자기 향상과 자기 확인이라는 두 가지 심리기제와 맞물려 있다. 자기 향상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고 자기 확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올바로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완벽주의자는 부족함이 없는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확인으로 보여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자기 확인 욕망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방어적으로 되기 쉽다. 베르니니가 표현해낸 그림 속 베르니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표정에 안정감이 없어 보인다. 아마 그는 자화상을 그릴 때쯤 내면적으로는 황폐하거나 비어 있지 않았을까? 천재 조각가로 추앙받지만 내면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렇게 정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베르니니의 모습에서 ‘나는 누구인가’ 하는 실존의 고민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그림은 말투부터 외모까지 닮아가는 남친과 저와 같아요.
다른 화가들에 비해 모딜리아니는 자화상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림의 대상과 마주 보며 교감이 생겨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던 그였기에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에서는 그리 예술적 흥취를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유일하게 남긴 자화상이 바로 1919년도 그림이다.
이 무렵 알코올과 마약에 찌든 모딜리아니는 맑은 정신일 때 자신의 모습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하다 보면 그들의 그림에는 삶을 정리한다는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평소에 그리지 않던 것을 표현하면서 가족 간의 관계 회복이라든지 마음속의 회한을 담는 것이다.
눈을 자세히 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동자도 거의 볼 수 없다. 눈은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으로 그 사람의 태도나 기분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모딜리아니가 아프리카 조각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모딜리아니의 내면을 그려낸 것으로 보는 편이 좋겠다.
죽음을 앞두고 피카소는 정면을 직시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화가로서 자신의 모습을 담담한 당시의 심리 상황을 이야기하듯이 그려놓았다. 모델의 내면 심리를 탐구해서 깊이 있게 표현한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그림을 인물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루었다. 인물 내면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자신 앞에 놓인 상황과 감정에 집중했다.
사랑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죽음을 앞두고 유일하게 남긴 자화상은 그가 평소에 즐겨 그리던 여인 잔의 초상화와도 닮아 있다. 그는 사랑하는 잔을 두고 떠날 것을 예감했는지 잔과 동일시라도 하듯이 자신의 자화상과 잔의 초상화를 유사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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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김선현 저 | 웅진지식하우스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는 20년 간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저자가 미술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프리다 칼로, 뭉크, 다빈치 등의 80명의 자화상을 엄선, 이를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서이다. 유명한 자화상을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읽는 것은 물론 실제 행해진 미술치료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어, 나를 찾는 이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말로 이루어지는 피상적인 위로에 지친 이들라면, 이 책을 통해 직관적이고 실질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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