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를 한 그림 속 공주가 슬퍼보이는 이유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공주와 왕비의 초상화. 그 속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낼 수도 있고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관상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왕가의 초상화는 그들의 사회적 위치나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자아방어기제를 알아보는 이화방어기제 검사에서 사용되는 허세 척도에 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세 척도란 실속보다 겉치레를 중시해서 분수에 넘치더라도 최고급의 의식주를 추구하는 등 자신의 능력에 비해 허세를 부리는 정도를 말한다. 예를 들면 부자인 체하거나 유식한 체하거나 잘난 체하면서 실제의 자신보다 더 우월한 자아상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허세 척도가 강할 경우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분한 행동 목표를 결정하고 이를 과시하며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타인 지향적 성향을 보인다.
레슈친스카는 왕비가 된 이후 줄곧 가난한 나라의 공주였다는 이유로 홀대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용하고 헌신적인 성격을 이유로 싫증을 내고 계속 정부를 들이며 부부관계를 소홀히 하는 남편 탓에 마음 둘 곳을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애착관계는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중요하다. 특히 성인에게는 배우자와의 관계가 결정적이다. 애착관계는 사랑할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평안을 줄 때도 나타난다. 그래서 배우자가 이혼이나 별거를 결정했을 경우 상실감, 불안, 스트레스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낯선 나라로 시집온 레슈친스카 왕비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남편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 15세는 베르사유 궁전 밖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고 끊임없이 정부를 들임으로써 그녀를 불안하고 외롭게 했다. 그녀가 남편 외에 마음을 쏟을 곳은 온전히 그녀의 힘으로 낳은 자녀들 그리고 그 어떤 고독과 외로움도 인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종교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어떤 왕비보다 유난히 딸에게 마음을 쏟으며 신실한 종교인으로 살았다.
미술치료를 받으러 오는 중년 여성들 중에는 애착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많다. 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남편과 잘 성장한 자녀들을 두고 있어서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성장으로 더 이상 자녀 교육에 매달릴 수 없게 되자 그녀의 삶은 방향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종교생활을 해보았지만 그곳에서도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힘들어했다. 쇼핑 중독증이 찾아왔고 급기야 그녀는 우울증으로 입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면을 살펴보면 이 모두가 남편의 동정과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애착은 이동한다. 아이 때는 주로 엄마에게, 그다음으로는 이성에게로 옮겨간다. 적절한 시기에 옮겨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대부분 애착관계에서 충분한 만족을 얻지 못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중년이 되면 배우자와의 관계가 처음처럼 끈끈하지 못하므로 남자들은 일에, 여자들은 자녀에 몰두한다. 특히 여자들은 자녀가 성장하면 취미생활에 몰두하면서 공허함을 달래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 간의 애착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대인관계와 사회생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부부가 함께 노력하면 좋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자신만의 창조적인 방법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이 그림을 보면 힘이 나요.
뭉크는 벽 뒤로 숨고 싶은 것일까, 벽 앞으로 나오고 싶은 것일까. 이 그림은 자연법칙을 위배하고 있다. 자세히 말하면 이 그림에는 착시 그림과 유사한 특징이 있다. 손을 강조하기 위한, 손 주위의 푸르스름한 배경 처리는 뭉개진 아랫도리와 함께 뒷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인물의 뒤쪽에 위치한 뒷벽이 실상은 가슴 앞의 손과 이어지면서 아이러니를 보인다. 뭉크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얼굴과 담배가 가장 인상 깊게 눈에 들어오지만 실상은 벽 뒤로 숨고 싶은 뭉크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가 두려운 것인지, 대중이 두려운 것인지. 그는 무엇으로부터 그토록 숨고 싶었을까.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의 뭉크는 담배를 손에 들고 있지만 입가에 가져가는 대신 하염없이 타게 내버려두고 있다. 담배를 들고 있는 손은 긴장되어 떨고 있는 듯하다. 배경으로 흩어지는 파란색의 담배연기는 사실보다 과장되어 심리적 불안감을 한층 더 고조시킨다. 회의적인 시선, 아래쪽에서 비추는 불빛은 그의 표정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는 이런 단순하면서도 극적인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자신의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렘브란트의 노년기 자화상을 보면서
몇 십년 후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미술치료에 많이 쓰인다. 화가들마다 즐겨 그리는 주제가 있는데 렘브란트에게는 ‘나’가 그랬던 것 같다. 그는 삶의 여정마다 자화상을 남김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경험에 따라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나’의 드러남과 숨김을 이해하고 나타내는 길이었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자화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그림 속의 렘브란트는 분장을 하고 있다. 그가 분한 사람은 바로 성서 속의 인물인 사도 바울이다. 15세기부터 화가들 사이에는 성서 속의 인물로 분장한 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행했다. 이제 그는 젊은 날의 모습을 모두 잃고 볼품없는 노인으로 남았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그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피부는 쭈그러들고 체격은 작아졌으며 옷도 화려하지 않지만 다부지고 또렷한 눈매가 두드러진다. 명민한 그의 눈은 끊임없이 탐구를 하는 듯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결혼도, 출산도, 공부도 빠른 편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하다 보니 최연소, 최초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들이 많은 의대에서 나는 더더욱 어리게 느껴졌고, 그래서 누군가 내 나이를 물어보면 늘려서 답하기도 했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는 나이 듦이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을 알게 되고 성숙해지며 경제력도 생겼기 때문에 나는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이도 알았던 것일까. 아들이 내 생일 카드에 이렇게 적었다.
“엄마, 생일 축하 드려요. 그리고 나이 드신 것 축하 드려요!” 나이 든다는 것, 젊음을 거쳐서 인생의 연륜이 쌓인다는 것이 꼭 슬프거나 억울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에도 나이 듦의 미학이 드러난다. 젊은 자화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달관이나 체념이나 고독이 풍겨 나온다. 아끼던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일까? 이제 젊은 날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볼품없는 노인으로 남았지만 그의 눈은 아직도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빛난다.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렘브란트. 그림은 그에게 삶의 가장 큰 목적이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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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김선현 저 | 웅진지식하우스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는 20년 간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저자가 미술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프리다 칼로, 뭉크, 다빈치 등의 80명의 자화상을 엄선, 이를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서이다. 유명한 자화상을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읽는 것은 물론 실제 행해진 미술치료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어, 나를 찾는 이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말로 이루어지는 피상적인 위로에 지친 이들라면, 이 책을 통해 직관적이고 실질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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