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에 자신 없던 내가 이 그림을 보고, 한참 웃었어요.
인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감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거장으로 인정받는 ‘남미의 피카소’ 페르난도 보테로. 그의 작품에는 낙천적인 성향과 행복이 넘실댄다. 그의 화풍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자화상을 한 점 살펴보자.
그의 자화상을 보면 보테로는 투우사 차림으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라틴 문화에서 투우는 문학, 무용, 음악 등 여러 장르의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인 동시에 여타 예술 장르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닌다. 죽음의 긴장감과 열정적인 관객의 함성이 있는 투우는 미술가들에게 충격을 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실제로 보테로는 어렸을 때 직접 투우를 배우기도 하는 등 라틴 문화에 친숙한 편이었다.
동글동글하고 짤막한 보테로의 그림.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씨 좋은 동글동글 나라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듯하다. 한마디로 유쾌하다는 이야기다. 하다못해 저 우스운 몸에 저 진지한 표정은 웬 말인가 말이다. 보테로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동글동글하고 서글서글하다. 아니, 빵빵하다는 말이 더 맞는 듯하다. 마치 구멍에 대고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처럼 그들은 온몸이 팽팽하다. 그래서인지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해 보인다.
그가 그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어떤 부정적이거나 강렬한 감정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자화상 역시 수많은 동글동글 나라의 국민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보테로 자신을 그린 것 같다. 이 자화상에는 건강한 자아상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자아상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에 관한 것인데 보테로의 자화상은 자신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왜곡시키지 않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건강한 자아상을 형성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 그래서 이 자화상을 보는 사람도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하기가 어렵다면, 보테로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루벤스와 아내>, <벨라스케즈를 따라서>, <라파엘로의 젊은 여인의 초상을 따라서>, <뚱뚱한 모나리자> 등 유쾌하게 변형된 그의 그림을 감상하길 권한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면 왜 힘이 날까?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프리다 칼로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여성 작가로서 대부분의 일생을 육체적 불구로 지내면서 그 고통을 작품의 주된 주제로 삼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었고 열여덟 살 때 그녀가 탄 버스를 전동차가 들이받으면서 척추와 오른쪽 다리와 자궁을 크게 다쳤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침대 지붕에 붙은 전신 거울로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여 스스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후 죽기까지 29년간 계속된 35회의 수술과 수차례의 유산을 상징하듯이 피를 흘리는 순교자의 모습으로, 이혼으로 인해 자해하는 모습으로 자화상에 묘사된다. 이렇게 칼로의 자화상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며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고백이었다.
그녀의 자화상을 보면 눈썹이 전부 일자로 그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녀는 일자 눈썹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화상보다 훨씬 여성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어째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남성적으로 그렸을까. 굵고 진한 일자 눈썹뿐만 아니라 콧수염에 구레나룻까지. 작가를 알지 못하고 이 그림을 본다면 남자의 초상화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수차례 거듭되는 유산으로 자신의 성적 자존감에 혼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아이의 분신처럼 뒤에 있는 원숭이는 천진난만하게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앞발을 올리고 웃는 듯하다.
아빠와 있으면 불편한 이유를 이 그림을 보고 알았어요.
비교적 유복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보나르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힘들지 않게 관철시킬 수 있었다. 성적이 우수했던 보나르는 국방부 관리인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을 전공한 뒤 잠시 관청에서 근무했지만 재능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에콜 데 보자르와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그림 공부를 했다. 그는 이 시기에 만난 발로통, 뷔야르 등과 ‘나비파’라는 그룹을 만들어 그룹의 주도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보나르가 이렇게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경제력 있는 군인 아버지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아버지는 극복해야 할 권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군인 아버지가 권위적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보나르의 아버지가 권위적이었다는 말도 아니다. 내가 자화상 속 보나르의 눈에서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했던 생각일 뿐이다.
누구든 권위적 대상의 심리적 영향권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권위적 대상이다가 그다음에는 선생님이나 선배나 이성 친구 등이 그 대상이 된다. 성인기에는 대개 직장 상사가 권위적 대상이 된다. 권위적 대상과의 관계에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그대로 투사되기 마련이다. 부모에게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막연한 두려움을 경험한 사람의 경우 윗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 모습의 원형이 재현된다. 윗사람이 부모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소유자라고 해도 말이다. 반대로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관계에서 특별한 에너지 소모가 없었던 사람은 까다롭거나 권위적인 상사를 만나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홀가분하게 대할 수 있다.
보나르는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원했던 화가의 길을 획득했고 그 이후로 일상적 정경과 편안함을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다. 최후의 인상주의 화가로 꼽히던 보나르는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작품이 난무하던 시대에 자신의 화풍을 고집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그림을 그린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유려하고 아름다우며 독자적인 색채의 세계를 확립함으로써
‘20세기 최고의 색채 화가’라는 칭송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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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김선현 저 | 웅진지식하우스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는 20년 간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저자가 미술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프리다 칼로, 뭉크, 다빈치 등의 80명의 자화상을 엄선, 이를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서이다. 유명한 자화상을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읽는 것은 물론 실제 행해진 미술치료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어, 나를 찾는 이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말로 이루어지는 피상적인 위로에 지친 이들라면, 이 책을 통해 직관적이고 실질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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