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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그토록 윤상을 되뇌는가?

어느덧 20년이 넘은 시간 근원적인 ‘소리’에 대한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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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거쳐 가슴으로 받는다. 물리적인 음파가 심리적으로 소화되는 모든 단계가 음악을 즐기는 길에 있다. 윤상은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리라는 호기심을 놓지 않고 움직였다. 오랜 시간 뜸을 들이고, 가정을 이루고, 중년이라는 새 그늘로 발을 딛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의식 속 카테고리에서 강등된 적이 없는 이유, 그의 이름에 언제나 ‘기대’의 형용사가 붙는 이유다.



난 좋아하는 게 몇 가지 있단다 /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하는 게
반가운 사람이 찾아와 문 두드리는 소리 / 낯익은 음악이 곧 시작되려는 소리
...(중략)
움츠러든 어깨를 토닥여주는 소리 / 절망의 눈물을 닦아 주는 소리
햇살이 얼굴을 어루만지는 소리 / 내 이름 부르는 그리운 너의 목소리
그 소리 그 소리 소리들 소리들..
(「소리」 - 윤상 4집 < 이사 > 중에서)

윤상과 많은 날을 함께 해온 박창학이 작사한 노랫말이다. 한 줄의 오차도 느껴지지 않는, 가슴속에 손을 쑤욱 넣어 끄집어낸 듯한 표현이 과연 윤상의 파트너답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소리를 흔들고 뒤섞는다. 때로는 하나의 소리를 위해 모든 소리를 지워버린다. 질감과 무게변화에 따라 다르게 퍼지는 울림은 윤상이라는 이름의 음악이 되었다. 어느덧 20년이 넘은 시간. 왜 사람들은 그토록 윤상을 되뇌는가.




주류는 아니지만 비주류도 아니다. 한 때는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만큼 대중 친화적이었지만 그가 가진 대부분의 시간은 변칙적인 시도에 할애되었다. 그럼에도 윤상은 숱한 음악인들의 위시리스트에 굵은 못으로 고정된 듯 곧게 서 있다. 끈질긴 실험을 통해 이 사람이 몰두하는 단 하나, 소리에 어쩌면 답이 있을지 모른다.

윤상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엷다. 가늘고 희미한 음색이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톤으로 조율될 때 여성들(을 비롯한 팬)은 ‘부드럽다’, ‘감미롭다’는 말로 휘어 감으며 젖어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노래는 만든 사람이 가장 잘 부른다는 말이 있다. 지금껏 다수의 작곡가가 자신감을 실어 낸 앨범 덕에 이 문장은 오히려 공증의 인식에서 멀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윤상은 운이 좋다고 해야겠지만 결코 가볍게 말하고 넘길 수 없는 것이, 윤상의 노래는 실로 그로써 살아난다는 사실에 있다. 남달리 세밀한 곡의 짜임새에 맞출 수 있는 노래를 본인 아닌 누가 달리 해낼 수 있을까. 윤상의 곡에서 윤상의 음색이 빛이 나는 건 결국 당연한 이치다. 곡에 따라 구름 위를 둥실 떠다니고,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거나 눈을 감는 건 어쨌거나 그의 목소리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므로.

소리 다루기에 있어 남다른 감은 가수 이전에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이력이 뒷받침한다. 1집 < 이별의 그늘 >에 틈틈이 배치된 신시사이저 연주는 일반적으로 얕게 깔려있던 전자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었고 바이올린을 비롯한 클래식 악기와 브라스의 도입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고급스러운 패키지를 만들어냈다.




[ 이별의 그늘 ]
[ Yun Sang Part1 ]
[ Yun Sang Part2 ]
[ The 3rd Cliche ]



이후 심화된 전자악기를 둘러싼 애착은 두 장으로 나뉘어 발표된 2집 < Yun Sang Part1 >, < Yun Sang Part2 >에서 영글어 3집 < The 3rd Cliche >에서 정점을 찍는다. ‘품위를 잃지 않는 도시적 고급스러움’. 윤상의 세련된 이미지는 이미 네모난 뿔테 안경을 넘어선 상태였다. 감성 짙은 멜로디를 빚는 센스와 악기의 이름을 단 복잡한 기계를 만지는 재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밀고 당기고 치고 빠지는 발군의 리듬감 또한 베이시스트로 활약했던 그였기에 가능했다.

세상의 다양한 악기에 손을 내민 앞선 관심이 노를 저어준 덕도 크다. 한 때는 제3세계 음악으로 불리다 언젠가부터 월드뮤직으로 정리된 윤상의 모험에는 낯선 두 종류의 ‘악기’가 중요 부분을 차지한다. 첫 번째는 한음씩 손으로 퉁겨서 음을 뽑아내야 하는 도구, 실(實)연주를 위한 진짜 악기를 말한다.

3집의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너에게」와 「바람에게」, 4집 < 이사 >의 「이사」, 5집 < There Is A Man… >의 「우화」 등에서 쓰인 반도네온(Bandoneon:탱고에서 반드시 등장, 아코디언과 비슷한 악기), 카바키뇨(Cavaquinho:우쿨렐레와 비슷한 악기), 삼포냐(Zampona:피리의 일종), 케나(Quena:피리의 일종)가 그 예다. 귀를 자극하는 색색의 음조는 독특한 정서를 나타냄과 동시에 윤상의 음악을 모방 불가한 그만의 것으로 정의해주었다.




[ 이사 ]
[ There Is A Man… ]



첫 번째 요소와 별개로 움직인 또 하나의 악기는 언어다. 「Ni volas interparoli(4집 수록곡)」에서의 에스페란토어, 「Sueno tu voz(5집 수록곡)」의 스페인어 등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거의 쓰인 적 없는 언어가 개별적인 소리를 가진 도구로 활용되었다(새로운 언어에 대한 윤상의 욕심은 2집 발표 후 3년 만에 내놓은 미니앨범 < Renacimiento >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지나치게 이국적이라는 말로 고개를 돌린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가수 윤상이 읊는 소리, 말은 어떠할까. 작사가 박창학과의 호흡은 앞서 예를 든 것처럼 더 할 나위 없는 완벽을 긋는다. 여러 인터뷰에서 윤상은 박창학의 가사를 입어야 비로소 자신의 음악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뼈대를 만들고 벽돌을 쌓고 색칠까지 마친 집을 건네면, 최종적으로 불을 켜고 사람을 들게 해 진정한 집 구실을 하게 하는 것이 박창학의 가사가 지닌 힘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아니었을까. 깊이 동의하면서도 자꾸만 한 쪽 눈썹이 움찔거리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어에 맛을 입히는 ‘성대의 울림’이 적어도 노래에서는 우선이라는 작은 반박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듣는 건 가수의 목소리요, 전달되는 가사의 속뜻은 아무리 빨라야 반 박자 뒤에서 따라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귀를 거쳐 가슴으로 받는다. 물리적인 음파가 심리적으로 소화되는 모든 단계가 음악을 즐기는 길에 있다. 윤상은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리라는 호기심을 놓지 않고 움직였다. 오랜 시간 뜸을 들이고, 가정을 이루고, 중년이라는 새 그늘로 발을 딛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의식 속 카테고리에서 강등된 적이 없는 이유, 그의 이름에 언제나 ‘기대’의 형용사가 붙는 이유다.




까에따노 벨로주(Caetano Veloso)와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꼼빠이 세군도(Compay Segundo)가 그러했듯이 세월과 함께 하얗게 물들어 갈 윤상을 상상해본다. 날선 눈빛은 그 날도 변함없이 소리를 향해 있을 것이다.

글 / 조아름(curtzz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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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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