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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약점 자극해 원하는 것을 얻는 아이들 - 엄마의 약점 스위치

아이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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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엄마의 약점을 자극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나는 “약점 스위치”라고 부른다. 약점 스위치는 아이가 꽉 눌렀을 때 갑자기 당황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 만드는 스위치이다. 스위치가 눌러지면 이성적인 판단력이 작동하지 못한 채 자동반응을 보인다.

“너 빨리 가서 씻지 못해? 지금이 몇 신데 그러고 있어?”
“왜 자꾸 나한테 소리 질러? 엄마가 자꾸 소리 지르면 나 집 나간다. 아무데나 막 다니다 무서운 아저씨한테 잡혀갈 거다! 그럼 엄만 소리도 안 지르고 좋잖아.”


다섯 살짜리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아이의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는 엄마의 표정이 대조를 이룬다.

지현이 엄마는 일을 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크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웬만하면 들어주고 큰 소리도 치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나름 사랑을 주어 잘 양육해 보려고 한 것인데 어찌된 셈인지 지현이는 점점 제멋대로만 하려고 하여 급기야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급한 지현이 엄마는 내가 진행하던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신청을 했고, 집안에서의 상호작용을 촬영하는 카메라에 위와 같은 장면이 포착되었다.

“지현아! 엄마가 언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고 그래? 엄마가 다시 소리 안 지르면 너도 그런 말 안할 거지?”

엄마를 외면한 채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 아이 앞에서 아이 앞에서 어느 새 엄마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이제는 비굴하다 못해 애원조가 되었다.

“엄마가 뭐 잘못해서 그래? 소리 질러서 미안해. 네가 씻어야 되는데 자꾸 말을 안 들으니까 그랬어. 앞으로 그러지 않을게.”

상황은 어찌어찌 마무리되고 아이는 원하는 대로 씻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가 엄마의 약점을 자극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나는 “약점 스위치”라고 부른다. 약점 스위치는 아이가 꽉 눌렀을 때 갑자기 당황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 만드는 스위치이다.

약점 스위치 말고 다른 스위치도 있다. 가장 흔한 건 ‘분노폭발 스위치’이다. 폭발하고 나면 백발백중 후회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되어 아이가 스위치를 누르면 그 전의 후회는 온데간데없어지고 활화산 같은 분노가 솟구쳐 나와 주변을 불태운다.

우리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발적으로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은 자동 스위치를 갖고 있다. 스위치가 눌러지면 이성적인 판단력이 작동하지 못한 채 자동반응을 보인다.

내가 갖고 있는 약점 스위치는 ‘자율성 스위치’이다. 아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거나, 이제는 다 컸으니 혼자서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가도 마음이 주춤해지면서 ‘내가 너무 아이를 어린애 취급하나?’ 하는 마음으로 허락하게 된다.

딸아이가 4학년 때 일이었다. 갑자기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며 밤에 나가서 줄넘기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아이가 운동을 하러 나가겠다는 시간은 아홉 시였다. 즉, 열시쯤 들어오겠다는 것이다.

“안 돼!”
“왜 안 되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위험해.”
“요 앞에 놀이터에서 할게. 친구도 같이 하기로 했어.”
“너희 둘이서는 위험하다니까!”


아이가 갑자기 정색을 한다.

“엄마, 나도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을 만큼 컸어.”

‘앗! 그런가? 내가 너무 어린애 취급을 했나? 바로 집 앞이고 가로등도 환한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동네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이런 생각이 복잡하게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럼 열 시까지는 꼭 와야 해.”
“알았어.”
아이는 경쾌하게 대답했다.

이런 결정이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게 아니라 스위치가 눌러진 결과라는 건 아이가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알게 되었다. 어찌 어찌 허락한 나와는 달리 친구 아이의 엄마는 허락을 하지 않는 듯했다.

“나하고 같이 운동한다고 해! 그래도 안 된다고 하셔? 그럼 너도 다 컸다고 말해 봐. 우리 엄마는 그렇게 말하니까 허락해 주던데.”

그랬구나! 혼자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줬고, 찻길 건너는 게 어렵지 않다고 해서 길 건너편 가게에 혼자 다녀오게 했으며, 다른 애들은 이미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다닌다고 해서 입장료를 주어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다녀오도록 했다. 아이는 혼자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 어지간한 건 엄마가 허락해줄 거라는 걸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걱정이 많은 분이었다. 그래서 뭘 하든 걱정부터 시작했고, 제대로 못할까봐 안달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나에게는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걸 믿어주지 않고, 컸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걱정을 쏟아내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마음으로부터 귀를 막기도 했던 기억들이 ‘자율성의 자동 스위치’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럼 자동 스위치는 다 나쁜 것일까? 아이는 지금 또래 친구들에 비해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다. 웬만한 건 엄마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그런 아이가 나에게는 대견하고 기특하게 느껴지고, 밖에 나가면 야무지고 싹싹하다는 평을 들으니 내 ‘자율성의 스위치’는 아이에게 나쁘지 않은 스위치인 것 같다.

가장 흔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스위치는 지현이 엄마가 갖고 있는 ‘자책감의 스위치’이다. ‘아이가 저러는 건 내가 잘 못해줘서 그래. 내가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야.’라는 자책감이 들기 시작하면 감정에 압도되어 판단력을 잃게 된다.

내 탓이라는 자책감이 들면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밖에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제는 아이가 엄마의 스위치를 알아차리고 원하는 게 생기면 자동적으로 그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원하는 것을 이루는 건강한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무조건 남에게 의지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가 의식하지 못한 나의 스위치가 자율성의 스위치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이런 욕심이 생긴다.

‘엄마, 나도 다 컸는데 이제 용돈주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너무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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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선미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한국 임상심리학회 전문가 수련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며, 임상심리학과 관련된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94년부터 아주대학교 병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평가와 치료프로그램, 부모교육을 해왔다. 부모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아동 이상심리, 부모교육훈련, 행동수정을 주제로 다수의 강의를 하였다. 현재 EBS TV ‘생방송 60분 부모’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저서로,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특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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