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뜨거운 태양이 절정을 이루는 오후 3시. 마에스트란자 극장 옆에 위치한 투우장에서 경기가 있다.
이곳은 카르멘이 호세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장소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를 비롯해 여러 작가들의 작품 속에 투우 장면이 묘사되어 있지만 내가 직접 살아 있는 소를 눈으로 보는 투우는 어떤 느낌일까 살짝 긴장도 되고 궁금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열기로 서 있기가 힘들 정도다. 나미비아 청년 레오 역시 투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여 함께 보기로 했다. 레오는 우티스의 룸메이트로 나미비아에서 플라멩코 기타를 배우기 위해 세비야에 온 열여덟 살 청년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좋아하는 기타를 배우고 여행을 하며 자신의 진로를 좀 더 고민해 보고자 세비야에 왔단다. 나는 그 시절 책상머리 앞에서 진로를 고민하고 괴로워 했었는데 청춘의 소중한 시간을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며 고민하고, 여행하며 사색하는 그가 어리지만 참 대견해 보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 투우장 앞 난전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구아, 아구아
Agua, Agua!(물이요, 물!)”
“솜브레로
Sombrero!(모자 있어요!)”
투우장 밖 여기저기에서 물과 모자, 방석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이곳의 풍경이다. 들어가기 전까지는 실감을 못했는데 레오가 도착하고 자리를 찾아 앉고 나니 밖에서 왜 그렇게 목청껏 그 물건들을 팔았는지 알 것 같았다.
“앗 뜨거워!”
낮 동안 뜨겁게 달구어진 돌계단에 그냥 앉았다가는 다리에 화상을 입을 정도다. 참고로 우리 자리는 그야말로 땡볕이 내리쬐는 가장 싼 자리였다. 정면으로 비치는 태양을 조금이나마 가려줄 모자는 필수이고 탈수 증세가 느껴질 정도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니 물 또한 마찬가지다. 대체할 것을 가져갔기에 망정이지 그야말로 맥반석 오징어가 될 뻔했다.
오늘 경기에는 여자 투우사도 있어 이례적이다. 그녀는 경기 도중에 넘어져 소의 공격을 받을 위기에 처해,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경기를 치렀다.
사람의 마음은 참 요상하다. 여자 투우사가 소를 공격할 때는 소에게 연민이 가더니 갑자기 투우사가 쓰러져 소의 공격을 받게 되자 그녀를 걱정하며 마음을 쓸어내리게 된다. 투우는 소와 인간이 벌이는 싸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이 시시각각 격정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싶은 심리로부터 만들어진 경기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경기를 하고 있는 투우사들을 보며 ‘에스카미오’를 떠올려 본다. 투우사 에스카미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마차를 타고 화려하게 투우장에 도착하는 ‘카르멘’과 그녀에게 마지막을 경고하기 위해 나타난 ‘호세’. 그와 같이 질투이든 집착이든 활활 타오르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 있다면 이렇게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그 감정 또한 최고조에 달할 것만 같다.
모두 여섯 마리의 소가 인간과 싸운다. 투우사든 소든 누군가는 죽어야만 끝이 나는 싸움. 인간은 방어 장비와 공격할 무기를 완벽히 갖추고 또는 말을 타고 여럿이 교대로 한 마리의 소와 겨룬다. 마지막까지 필사의 사투를 벌이고 헉헉대며 죽음을 맞이하는 소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침을 흘리고 힘겨워 마침내 쓰러지면, 관중의 환호성과 함께 소를 마차에 묶어 재빠르게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끌고 나간다. 화면을 통해서 보았을 땐 느끼지 못했던 그 흙 냄새, 소 냄새, 그리고 피 냄새……. 삶과 죽음의 냄새가 거기에 있었다.
투우를 즐기는 나라가 있는 반면 소를 신성시하는 나라도 있듯 소에 관한 이미지나 느낌은 나라마다 다른 것 같다. 뜬금없이 한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우리나라 소싸움이 생각난다. 소싸움과 투우는 염연히 다른 것인데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연관 지어진다. 어떤 감정이 들까? 소에 대한 우리네 정서는 어떤 것인지 언젠가 시골 장터를 가게 되거든 한 번쯤 구경해 보고 싶다.
투우장에 온 관중들을 보니 조그마한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는 어른들은 물론 갓난아이를 안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접하는 문화이겠거니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생애의 처음이자 마지막 투우 관람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한다. 이제는 투우장 저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의 열기 대신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향한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무엇이 우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단정지어 얘기할 수는 없다.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우리와 다른 문화를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서 소 여섯 마리의 죽음을 목격한 뒤, 나는 마치 카르멘의 죽음을 직접 본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며칠 후, 인터넷 기사에 마에스트란자 투우장 앞에서 투우 반대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사진과 기사가 올라와 있다. 이곳에서도 모두가 투우를 보며 열광하고 즐기는 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되니 왠지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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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채국희 저 | 드림앤(Dreamn)
낯선 곳을 여행하며 낯설고 인상적인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서가 아니다. 오히려 낯익은 광경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혼의 독백과 같다.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세비야행. 그녀는 세비야에 삼 개월 동안 머물렀고, 플라멩코를 알기 위해 뉴욕, 안달루시아의 도시들, 마드리드를 찾아갔다. 그리고 배우 채국희의 시선과 사색은 그녀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자유의 발견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