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지금도 여러 나라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올리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결혼행진곡으로 더 유명한 멘델스존(1809~1847)의 극음악으로도 작곡이 되었고 샤갈의 그림으로도 유명할 정도로 시대와 장르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로페 데 베가Teatro lope de vega’라는 이름의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을 공연한다는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보고는 궁금증이 발동한다.
2006년 서울 아르코 대극장에서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한 적이 있었다. 한국적으로 각색하여 올린 이 작품에서 헬레나(극 중에서는 우리나라 이름인 ‘익’) 역할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서 호기심이 더 컸다. 이 공연은 대만에서도 상연되었는데,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희극적인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듯 대만 사람들도 매우 즐겁게 보며 호응이 아주 좋았다. 세르반테스의 나라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본다? 사람들은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혹은 돈키호테와 햄릿을 종종 비교하곤 한다. 이곳 스페인 사람들은 「한여름 밤의 꿈」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할까?
남녀간의 사랑을 담은 연극이라 그런지 젊은 관객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안으로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중앙에 걸려 있고 벽과 의자 모두 붉은색으로 된 4층짜리 중극장이다. 금색 발코니에 아랍 문양의 장식 또한 화려하다.
내 좌석은 일곱 명 정도 함께 볼 수 있는 발코니석이다. 동양인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4층을 휘 둘러보는데, 꽉 찬 객석의 시선들이 찬찬히 극장을 구경하는 내 눈과 상당히 자주 마주친다. 아마도 그들은 나를 구경하나 보다. 무대에는 무엇에 쓰일지 모르지만 미닫이문처럼 생긴 바퀴 달린 병풍 세 개가 있다. 무대 바닥엔 빨강, 파랑, 흰색으로 위치를 표시하는 야광 테이프가 붙어 있고 객석 뒤 음향 콘솔에 두 명의 엔지니어가 있다.
서울이든 세비야든 극장 안의 익숙한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올라갈 무대인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극장에 편안히 적응될 때쯤 서서히 암전이 되고 극이 시작되면서부터 이것저것 비교하며 보게 되었다.
내가 출연한 공연에서는 요정이 우리나라의 도깨비로 표현되었다. 도깨비는 악하고 무서운 존재라기보다는 장난스럽고 익살스럽기까지 했다. 공간은 숲 속. 은방울꽃으로 사랑이 뒤바뀌는 마법을 걸고, 날이 밝는 시간의 경과는 시대적으로 과거이므로 닭 울음소리로 알리고, 모든 음향은 배우가 직접 내는 동물소리와 악기로 대신했다. 참으로 한국적이었다.
반면 오늘 본 이 공연의 시대적 배경은 현대이며, 공간은 폐허가 된 공사장, 그리고 요정은 그 공사장에서 사는 혼령들로 축축하고 음산하고 악마적인 느낌이다. 극중 시간의 경과도 시계로 알린다. 사랑의 감정이 뒤바뀌는 마술적 장치로는 정화의 상징인 물과 빛을 썼다.
동서양의 같은 작품, 다른 표현을 끝날 때까지 나는 참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공통점이 있다면 희극을 보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의 반응과, 사랑의 엇갈림에 안타까워하고 사랑이 받아들여질 때 행복해하는 인간의 감정이었다. 현실과 꿈, 인습과 이상, 사랑과 이성의 두 세계를 넘나들고 충돌하다가 결국엔 현실과 꿈이 같은 방향을 보며 끝이 나는 이 작품이 왜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는지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마에스트란자 극장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이곳은 노인 관객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 오는 관객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그만큼 극장을 이용하는데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서 혹은 상점에서도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하거나 상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들을 종종 본다. 겨우 몇 달 머무는 여행자의 눈으로 보는 단편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벽이 그리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극장이나 미술관이 경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접근이 용이해져서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누구나 마음껏 표현하고 그것을 함께 즐길 수 있을 때가 오기를 바란다.
이 극의 결말처럼 현실과 꿈이 결국엔 한 방향을 향하며 끝이 나듯 나의 이런 꿈이 한여름 밤의 ‘꿈’으로 남지 않고 현실로도 한 걸음씩 다가가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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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채국희 저 | 드림앤(Dreamn)
낯선 곳을 여행하며 낯설고 인상적인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서가 아니다. 오히려 낯익은 광경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혼의 독백과 같다.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세비야행. 그녀는 세비야에 삼 개월 동안 머물렀고, 플라멩코를 알기 위해 뉴욕, 안달루시아의 도시들, 마드리드를 찾아갔다. 그리고 배우 채국희의 시선과 사색은 그녀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자유의 발견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