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갑자기 죽을까봐 불안한 아이들 - 아이의 분리불안에 대처하는 법
“엄마, 마음대로 아무 때나 죽으면 안 돼!” “알았어. 엄마는 네 허락 없이는 절대 안 죽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부모의 존재는 아이에게 있어서 발을 딛고 있는 땅과 마찬가지이다.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에게 부모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땅이 꺼질 수도 있고,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지만 두려운 일이다.
오래 전 일이다. 한 엄마가 초등학교 2학년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왔다. 학교에 잘 다니고 아무 문제없이 생활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화장실도 혼자 안 가려고 하고, 밤에 자라고 불을 끄면 무섭다며 운다는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잘 다니던 학교도 가지 않으려 하고, 학교에 보내면 아프다고 조퇴하고 집에 오는 일까지 생겼다고 하였다. 아이에게 물어보면 그냥 무섭고 엄마가 없어질까 봐 걱정이라는 말만 하였고, 아무리 타이르고 설득해도 아이의 두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와 수월하게 분리되어 학교에 다닐 나이이다. 심지어 그 동안 분리불안의 문제가 없었던 아이가 갑자기 분리불안을 보인다니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최근에 충격을 받을만한 일이 있었나요? 가까운 분이 돌아가신다거나.”
“할아버지가 오래 앓으시다 돌아가시긴 했어요. 그렇지만 워낙 멀리 사셔서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관련이 있을까요?”
“아이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나요?”
“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사실대로 얘기했지요. 사람도 죽고 강아지도 죽고, 소도 죽는다고. 동물뿐 아니라 나무나 꽃 같은 식물도 모두 죽는 거라고 말해줬어요.”
“왜 그렇게 대답하셨어요.”
“사실이잖아요. 이런 기회에 아이에게 과학적인 지식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누구나 죽어야 하고, 모든 생명체는 궁극적으로 소멸된다는 존재의 유한함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엄마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결정적인 질문이 남아 있었다.
“엄마나 아빠도 모두 죽는다고 말씀하셨나요?”
“당연하죠. 엄마 아빠뿐 아니라 너도 나중에는 죽게 될 거라고 말해줬어요. 예외가 없다는 걸 아이가 정확하게 알아야 하잖아요.”
언제까지나 내 곁에서 나를 보살펴주고, 위험에서 보호해주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절대적인 부모가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아이는 얼마나 놀랐을까?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땅속에 묻혀야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아이가 느꼈을 공포의 깊이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보고 아이가 왜 다른 사람도 죽는지 물어봤을까요?”
“예?”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어봤을까요?”
“그럼…… 불안해서 그런 건가요? 엄마 아빠가 죽을까봐?”
그제야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린 듯했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와 사실인데 그럼 숨겨야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번갈아 내보이며, 당분간 아이를 위로하고 안심시켜 주라는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내 아이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쉬면서 TV를 보는데 마침 부모의 죽음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가 방송으로 나오고 있었다.
“저 사람은 아빠가 돌아가셔서 슬프겠다.”
“응.”
“너라면 어떨 것 같아?”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는 의아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만일... 혹시... 저런 일이 생기면 어떨 것 같으냐고?”
“엄마 죽을 거야?”
따지는 것 같은 말투였다. 마치 어린이 날인데 선물을 안 사주려고 하느냐 혹은 동생만 맛있는 걸 사줄 거냐 물을 때의 말투와 다르지 않았다. 아, 아직 준비가 안 되었구나! “아니. 엄마는 안 죽어!” 과학적 진실과 반대되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물어봐?”
“물어볼 수는 있잖아. 그럼 엄마는 언제까지 살아야 돼?”
“끝까지!”
끝까지란다. 엄마는 죽으면 안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혹시 너무 오래 살아서 지겨우면 어떡하지? 만일 죽어도 되면 언제가 괜찮아?”
“나 죽은 다음에. 알았어. 나 장례식 치르면 그 다음날부터는 괜찮아.”
그게 말이 되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식 키우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죽는 문제야 더 말해 무엇 하랴. 공연한 말을 꺼내 괜히 아이 마음만 산란하게 한 건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동그랗다, 빨갛다, 뜨겁다 이렇게 오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은 이해하지만 예의바르다, 책임감 있다, 이기적이다 와 같이 구체적인 행동이나 사물로 확인이 불가능한 말들은 충분히 클 때까지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는 경험과 부모의 태도를 통해 추상적인 개념들을 배워나간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거나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 아이는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간 정도로 어렴풋이 받아들일 뿐이다.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부모의 존재는 아이에게 있어서 발을 딛고 있는 땅과 마찬가지이다.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에게 부모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땅이 꺼질 수도 있고,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지만 두려운 일이다. 나는 그 날 이후 여러 번에 걸쳐 아이에게 다짐을 해야 했다.
“엄마, 마음대로 아무 때나 죽으면 안 돼!”
“알았어. 엄마는 네 허락 없이는 절대 안 죽어.”
괘씸한 딸아!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게 제일 큰 불효라는 건 알고 있니?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한국 임상심리학회 전문가 수련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며, 임상심리학과 관련된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94년부터 아주대학교 병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평가와 치료프로그램, 부모교육을 해왔다. 부모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아동 이상심리, 부모교육훈련, 행동수정을 주제로 다수의 강의를 하였다. 현재 EBS TV ‘생방송 60분 부모’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저서로,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특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