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어렵다. 누가 무어라고 말해도 글쓰기는 어려운 것이다. 유명한 작가들도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하루 종일 같은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한다고 말한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도 그런데 하물며 글을 써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난번『영어, 내 마음속의 식민주의』독서 토론을 마치고 유진 강사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하나 주었다. 그가 내려준 숙제는 지금까지 진행했던『속도에서 깊이로』와『영어, 내 마음속의 식민주의』중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쓴 소중한 글을 바탕으로 [대학생 인문 독서 토론 2기]의 첫 합평회 시간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글쓰기 강의에 앞서 유진 강사는 학생들을 한명씩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첨삭 지도였다. 유진 강사는 학생들이 써 온 글을 보며 어떻게 하면 보다 좋은 글로 완성시킬 수 있을지를 지적해주었다. 학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글을 수정해나갔다.
서평 합평회. 유진 강사가 일대일 첨삭 지도를 하는 모습글쓰기의 장점은 이 지면에서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글쓰기의 장점을 몰라서 글쓰기를 안 하는 사람은 없다.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어렵고 낯설어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어려움을 딛고 글쓰기를 한 사람의 글에 날선 비판을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오히려 간신히 낸 글쓰기에 대한 마음도 접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유진 강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글의 아쉬움을 지적하는 동시에, 글의 장점을 칭찬했고 학생들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려고 했다. 유진 강사의 개인 첨삭을 받는 학생들의 얼굴은 밝았고, 첨삭을 다 받은 뒤에는 후련함도 엿보였다.
개인 첨삭이 끝나고 유진 강사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는 글쓰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가장 먼저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이 겪는 ‘무엇을 써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서점에 논문쓰기 섹션에 가면 글쓰기에 관한 책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을 본다고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글을 쓸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그런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글쓰기를 하려고 하면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뭘 쓰냐 하면 내가 느낀 점을 쓰면 됩니다. 내가 느낀 점 한 가지만 쓰면 글이 됩니다.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입니다. 모든 글이 그렇습니다. 논문도 그렇습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깊숙하게 연구하고 실험해서 담은 글이 논문입니다.”다행히 [대학생 인문 독서 토론 2기] 참여자들은 무엇을 쓸지에 대한 고민은 적었다. 자신들이 읽었던 책에 대한 서평을 써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평은 낯선 존재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과제로 내주신 독후감과는 달라 보인다. 왠지 서평하면 이름부터 무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유진 강사는 독후감과 서평을 완전히 구분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독후감이라고 해서 서평보다 수준이 낮지는 않습니다. 글을 쓰시다 보면 독후감과 서평의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쓰던 전형적인 독후감만큼은 탈피했으면 합니다. 예전에 기업체를 대상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서평과제를 내주었는데 대부분 초등학교 때 쓰던 전형적인 독후감의 형식을 띄고 있었습니다. 줄거리를 2/3만큼 쓰고 나머지 1/3은 자신의 소감을 적는 방식 말입니다. 딱 한명만 제대로 된 글을 써왔습니다. 우리 이런 식의 글은 쓰는 건 나중으로 미뤄둡시다.”그렇다면 초등학교식의 전형적인 독후감을 탈피해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유진 강사는 줄거리와 감상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글을 쓰라고 조언해 주었다. 책의 내용을 말하고 자신의 감상을 정리하다보면 그 가운데 접점이 생기게 마련이다. 유진 강사는 그 접점이 바로 독후감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쓸지는 정했다. 서평이니 읽은 책에 대해서 쓰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읽은 책에 대해서 어떻게 써야 할까? 읽은 책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지 막막하다. 이에 대한 조언으로 유진강사는 책을 상/중/하로 나누어 평가해 보라고 말해주었다. 이런 책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글을 전개시킬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글을 쓰려고 할 때 너무 막연하면 저 상/중/하 저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세요. 만약 하를 고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그 책에 대해서 나만 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를 선택한 사람들의 글은 모두 같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이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책에 대한 평가는 상/중/하 세 가지 중에 하나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그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백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판단하는 이유는 다른 이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만 분명하면 됩니다.”[대학생 인문 독서 토론 2기]에서 첫 번째로 진행한 책인
『속도에서 깊이로』를 가지고 간단한 연습을 해보았다. 책을 상/중/하로 평가해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 저자의 문제제기가 공감이 간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결론 때문에 공감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처럼 책에 대한 시선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각기 다른 그 시선을 잘 녹인다면 좋은 서평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분명한 의견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잘 표현해내는 것이다. 책에 대한 평가나 의견은 다른 사람과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글은 달라진다. 결국 사람이 쓰는 글은 모두 천차만별이다. 각기 자신의 색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상/중/하 세 가지 평이 있다면, 평가에 대한 이유는 100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만 가지의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표현의 차이가 글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표현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다양한 어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영어 공부를 할 때 어떻게 하지요? 단어를 외우지요. 한국어도 이것처럼 인위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어휘를 늘려야 합니다. 그저 교과서에만 치우쳐서 공부해서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사람은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동물이다. 무엇이든 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글쓰기도 그렇고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어휘로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 유명 작가들도 자신의 문장에서 한 단어를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눈에 차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글을 쓰면 그런 어려움을 늘 접하게 된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은 없을까? 유진 강사는 마감시간을 그 해결책으로 내 놓는다.
“글을 쓸 때에는 일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글을 구상하고, 어떻게 쓸지 개요를 만들어 보고, 초고 원고를 작성한 다음, 퇴고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네 단계를 거치면 원고가 나올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상의 단계로 돌아가서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게 됩니다.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자신의 글이 마음이 들기는 하는지, 마음에 들지 않다면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무한정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데드라인이 있는 겁니다. 글을 쓸 때는 꼭 마감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유진 강사가 글 쓸 때 강조하는 것은 마감시간만이 아니었다. 주변과의 단절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주변과의 단절을 통해서 오로지 글 쓰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가『속도에서 깊이로』를 읽으며 확실히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과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글 쓸 때는 주변과의 단절이 필요합니다. 유명 작가들 보세요. 집필 활동 한다면 산속에 들어가고 그러잖아요. 여러분들도 글을 쓸 때는 주위와 단절을 해보세요. 특히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 위험합니다. 어렵게 글 한 줄을 쓰고 페이스 북에 들어가 스무 줄을 쓰죠. 물론 처음부터 글 쓰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렵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글 쓰는 것에만 투자하는 것도 좋지 않고요. 일단 조금이라도 글 쓰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시간을 늘려가 보세요.”강의의 마무리는 유진 강사가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였다. 그는 강사로써 활동하기 바로 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글쓰기를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유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700키로 정도 됩니다. 비행기를 타면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자전거를 타면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걸어가면 5주가 걸립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면 버스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한국 사람은 버스를 죽어도 안타려고 합니다. 그런데 직접 걸어보니 저 또한 버스를 안탔습니다. 탈 수가 없었습니다. 버스를 타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지에 가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목적은 아닙니다. 목적지를 향하면서 걷는 과정에서 의미가 생기는 겁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의미가 생기는 겁니다. 숙제 없는 글쓰기 강좌가 있습니다. 이것저것 비법을 가르쳐 주는 글쓰기 강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강의만 들어봐야 남는 게 없습니다. 글쓰기 실력이 늘지도 않습니다. 글쓰기를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조금씩 언어능력은 상승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쓰기도 잘 하게 됩니다.”요즈음은 속도의 시대다. 사람간의 소통도 140자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글쓰기는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여전히 글쓰기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한다. 유진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영복 선생이 쓴 강의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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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말을 빌려 생각해보면 속도가 중요시되는 요즈음이기 때문에 반대로 글쓰기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글쓰기는 돌아가는 행위다. 하지만 그런 돌아가는 행위를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가치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 발생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글쓰기는 누가 뭐라고 말해도 어렵다. 하지만 한 번 시도해볼만 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말이다. 학생들이 힘든 과정을 거쳐 새로운 글을 써올 [대학생 인문 독서 토론 2기] 두 번째 합평회 시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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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도에서 깊이로 윌리엄 파워스 저/임현경 역 | 21세기북스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파워스는 그의 저서 『속도에서 깊이로』에서 마치 지상 낙원과도 같은 디지털 마법에 흠뻑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바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그는 이를 '깊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으며, 복잡한 주제를 생동감 넘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그의 글은 미디어 비평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으로부터 '아서 로우즈 어워드'를 두차례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