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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랑 키스하기, 우주선 타고 별 보기… 열두 살 소년의 마지막 소원 <열두 살 샘>

꽃은 시들지만, 그 향기는 영원하리… 남겨진 자들 혹은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위한 토닥임 <열두 살 샘>을 통해 본 죽음에 대한 관조적 시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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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아빠, 울지마세요』를 영화화한 <열두 살 샘>은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열두 살 소년이 살아있는 동안의 기록을 영상과 글로 남기면서 어떻게 보면 유쾌하기까지 한 버킷 리스트를 통해 삶의 소중함과 그 따뜻함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굿’바이>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는 영혼이 떠난 육신을 마지막으로 단장해서 영원한 여행길에 오르도록 채비해주는 납관사가 마주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죽음이 삶과 늘 함께 하는 현실이라는 점을 일본영화 특유의 관조적인 유머를 담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막연히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납관사의 일을 그만두려는 주인공 다이고에게 사장이 요리를 대접하는 장면이 있다. 사장은 우리가 지금껏 먹어온 그 많은 음식들이 결국은 죽은 생물들의 몸이라고 말한다. 살기 위해 시체를 맛있게 먹는다는 그 은유를 통해 <굿’바이>는 사람의 삶이 늘 죽음과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과 시체가 주요한 소재이지만, 이 영화는 우울하지 않고 오히려 엉뚱하고 우스꽝스럽다. 영화의 제목인 <굿’바이>는 영원한 이별, 즉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오히려 삶을 정리하는 그 마지막 순간이 치열하지 않고, 평온하다면 그것이 인간이 누리는 마지막 축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죽음을 통렬한 슬픔으로 보여주지 않고, 삶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소중한 과정이라는 관조적인 태도로 훈훈한 감동을 주는 영화들이 있는데, 곧 개봉을 앞둔 구스타보 론 감독의 <열두 살 샘>도 그런 영화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빠, 울지마세요』를 영화화한 <열두 살 샘>은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열두 살 소년이 살아있는 동안의 기록을 영상과 글로 남기면서 어떻게 보면 유쾌하기까지 한 버킷 리스트를 통해 삶의 소중함과 그 따뜻함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전 세계 영화제에서 13번의 주요부문 수상과 8번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샘의 버킷 리스트는 12세 소년답게 소박하고 귀엽다. 그의 버킷 리스트는 과학자 되기, 공포영화 보기, 에스컬레이터 거꾸로 타기, 비행선 타보기, 어른처럼 술 마시고 담배 피우기, 여자 친구랑 키스하기, 우주선 타고 별 보기 등이다. 병원에서 만난 절친 펠릭스의 도움으로 샘은 매일 버킷 리스트를 실행에 옮긴다. 열두 살 소년의 눈에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못지않게, 자신의 죽음을 사람들이 슬퍼하는 이유도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영화는 실사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열두 살 남자아이의 머릿속을 들락거리면서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했고, 흔히 시한부 인생을 사는 소년의 이야기에서 상상할 수 있는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를 가뿐하게 걷어냈다. 구스타보 론 감독의 말처럼 <열두 살 샘>은 죽음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살아서 꿈을 성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감독의 말처럼 죽음을 향해 가는 샘의 삶을 아프거나 슬프지 않다. 샘이 삶에서 느끼는 묵직한 질문은 그라피티 낙서로, 거기에 대한 심각한 답변은 종이 인형극을 통해 그려내는 감독의 재기 넘치는 연출이 심각할 수도 있는 상황을 담담함으로 승화시킨다.

여기에 어른들의 버킷 리스트에 비하면 더 없이 순수한 아이의 버킷 리스트는 후회가 아닌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 첫 경험에 대한 샘의 버킷 리스트는 실현하는 순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렇다고 <열두 살 샘>이 마냥 밝고 경쾌한 영화는 아니다. 절친 펠릭스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아있는 샘의 감정의 변화는 그가 ‘죽음’을 묵도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슬픔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순간에도 론 감독은 샘에게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샘과 함께 행복을 나눈 관객은 슬픔은 가슴에 담았지만, 씩씩하게 걸어 나올 수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

<원더풀 라이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기억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라고 하는 림보다. 이승을 떠난 사람들이 일주일을 머문다는 그 곳에서 죽은 자들이 하는 일은 면접관들과 상담을 하면서 자기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골라내는 것이다. 면접관들은 죽은 사람들이 그 속에 영원히 머물고자 하는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 죽은 자들의 기억에 주입시켜 일주일 뒤 좋은 기억만을 안고 영원의 시간 속으로 떠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삶이 어찌 그렇게 해피엔딩만 있을까? 죽은 자들은 모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리려고 애쓴다. 하지만, 변변치 않은 기억에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깨닫는다. 거창하고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아주 소소한 순간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어떤 사람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주먹밥을 먹었던 순간을, 어떤 소녀는 어릴 적 자신의 귀를 파주던 엄마의 무릎 감촉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선택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

<편지>로 대표되는 한국형 멜로는 죽어야 하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절절하고 슬픈 신파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와 코미디언 남편의 이야기 <선물>로 이어지고, 다소 과한 신파적 감수성은 동정심이 많고 감정이입이 잘되는 한국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최근에는 송윤아의 <웨딩드레스>에 이르기까지 그 전통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신파적인 영화 속에서 너무나 건조하고 무덤덤해서 신선하기까지 했던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새로운 멜로영화의 시작이었다. 일상의 순간순간을 훈훈한 정서로 쌓아올리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죽음과 삶을 관조하는 한국적 정서를 새롭게 발견했다. 변두리 사진관 사진사인 정원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다. 죽음을 앞둔 그의 앞에 주차단속원 다림이 불쑥 찾아온다. 낡아 보이는 이 영화 속 풍경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영화는 다소 불친절해보일 정도로 감정과 설명을 자제한다. 심지어 관객들은 정원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알 수 없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큰 움직임과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은 남겨진 아버지를 위해 정원이 비디오 켜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 정도이다.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나이 많은 아버지는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벌컥 화를 내고 방으로 돌아온 정원이 죽은 다음 홀로 남겨질 아버지를 위해 비디오 작동법 등을 메모로 남기고 울음소리를 막으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고, 방으로 들어가려다 망설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림자로 잡힌다. 삶을 관조하고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우리는 건강한 삶의 정서를 영화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뽀네뜨>

이외에도 죽음에 대한 영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96년 프랑스 영화 <뽀네뜨>는 엄마의 죽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4살 소년 뽀네뜨의 시선으로 바라본 상실에 대한 영화였다. 그 맑은 눈동자를 통해 바라본 상실의 슬픔은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1997년 독일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시한부 인생의 삶을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였다. 2007년 7세 정신연령에 머물러 있는 소녀 상은이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허브>는 사랑과 죽음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다소 감정과잉인 부분들이 곳곳에 산재해있긴 하지만 강혜정을 통해 재현되는 상은의 캐릭터는 신선하고 사랑스럽다.

<레스트리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2011년 작품 <레스트리스>는 부모님의 죽음 이후 세상에서 숨어버린 에녹, 말기 암 판정을 받고 3개월의 시간만이 주어진 애나벨,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에녹의 오랜 유령 친구 히로시의 이야기다.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이끌린 에녹과 애나벨은 서로의 상처와 두려움을 보듬어 준다. 하지만 즐거운 만남이 이어질수록 이별의 시간도 다가온다. 히로시는 에녹에게 찾아온 눈부신 삶과 애나벨이 맞이할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빛을 밝혀준다. 이 영화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두 남녀의 만남과 사랑을 유쾌하면서도 환상적으로 그려내며 삶의 소중한 순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애프터 라이프>

이렇듯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으로 다룬 영화도 있지만, 삶과 죽음을 새로운 스타일로 그려낸 영화도 있다. 아그네츠카 보토위츠 보슬루 감독의 2008년 작 <애프터 라이프>는 스릴러의 형태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펴보는 영화다. 영화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들의 방황을 그려낸다. <애프터 라이프>는 자신의 죽음에 관조적일 수 없는 인물의 갈등을 공유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생사의 경계에서 삶의 영역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겨우 영안실 문 하나라는 안타까움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미스터리 서스펜스의 기운과 함께 한다.

<봄, 눈>

<열두 살 샘>과 함께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 <봄, 눈>은 김태균 감독 개인의 실화를 영화화한 영화로 주목받고 있다. 평범한 엄마 순옥(윤석화 분)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에게 걱정거리만 안겨주던 철없는 남편도, 엄마밖에 모르는 순둥이 아들도, 자기 살기 바빠 가족을 돌아보지 못하던 딸들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이별의 소식은 가족들을 슬픔 속에 가둔다. 헤어짐이 가까워질수록 슬픔은 더 깊어지지만 순옥이 베푸는 무한한 사랑과 희망의 마지막 편지가 가족들에게는 위로 그 이상의 삶의 기쁨이 된다. ‘마지막 이별도 아름다운 삶의 한순간’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 <봄, 눈> 역시 슬픔 속 따뜻한 웃음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리라 기대되는 영화중의 하나이다.


출산, 입학, 졸업, 생일, 그리고 장례식까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함께하는 꽃은 가장 싱싱한 순간에 인간과 함께 하지만, 곧 시들어 사라져버리고 만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만개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요즘, 우리는 심심찮게 바닥에 떨어져 소멸해가는 목련꽃잎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듯 만개했다가 시들어버리고 마는 꽃과 같은 게 아닐까?

뿌리 없는 꽃을 보며, 만개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길 것인지 아니면 곧 소멸해버린 꽃에 대한 측은함이 앞서는지 각 성향에 따라 개인차가 있듯, 삶과 죽음에 대한 사람의 태도 역시도 살아온 삶의 태도처럼 각기 다를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망자들의 회한을 그려낸 <애프터 라이프>의 주인공과 닮았건, 무덤덤하게 자신의 죽음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열두 살 샘>의 주인공과 닮았건,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마지막 엔딩은 결국 ‘죽음’이라는 사실, 그 사실이 계속되는 한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그 시선을 담은 영화들은 계속 다양한 목소리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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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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