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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콘서트] 개콘 개그맨들이 서수민 PD를 신뢰하는 이유

개그콘서트에서 창의성을 배우다 재미있는 ‘봉숭아 학당’ 보다는 재미없는 새 코너가 낫다 어떻게 개그콘서트는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성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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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7개월 동안 개그콘서트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 평균 시청률은 25%에 달한다. 서수민 프로듀서가 연출을 담당하기 이전의 시청률은 평균 15%였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고 고정 시청층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현상유지에 만족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쉬운 일이라면 ‘평생 웃게 해줄게.’ 라는 착한 거짓말이 프로포즈의 고전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웃게 하는 것은 서로 통하는 ‘공감’이 밑거름 되었을 때 수확할 수 있는 열매다. 그리고 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그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수의 대중을 웃게 만드는 ‘개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을 향한 사람들의 노력이 그 안에 녹아있다. <2012 희망콘서트> 첫 강연자로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프로듀서가 초청된 이유다. 많은 이들은 ‘개그콘서트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서수민 프로듀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떻게 개그콘서트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우문현답이다.


개그콘서트만의 룰과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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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는 창의적이고 기발하고 획기적입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우리들만의 룰과 시스템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계산들과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는 그런 시스템 속에서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타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개그콘서트만의 시스템을 이루는 두 축은 ‘공채 개그맨 기용’ 과 ‘출ㆍ퇴근 제도’다. 현재 개그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개그맨들 중에는 최고참인 KBS 공채 개그맨 13기도 있고, 26기 막내도 있다. 서로 다른 경력과 연령의 선후배가 함께 만드는 무대인만큼 엄격한 위계서열이 존재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경직된 조직 문화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기수의 논리’의 필요성과 효용성에 대한 서수민 프로듀서의 믿음은 확고하다. 무대 위에서 상대와의 호흡과 약속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순간 흥에 겨워서 혹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동료와의 약속을 어긴다면 호흡이 어긋나고 흐름이 깨져 버린다. 한 번의 그 무대를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준비한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그콘서트에서는 기수의 논리가 무엇보다 우선시 된다.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방송국으로 출ㆍ퇴근을 한다.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특정 요일을 정해 촬영을 진행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요즘처럼 통신기기가 발달한 시대에 너무 비효율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그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그녀의 철학은 흔들림이 없다. 출ㆍ퇴근 제도는 모든 출연진이 일정한 시간에, 같은 장소에 함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 시간들 동안 개그맨들은 서로의 아이디어와 특징들을 어떻게 하면 더 활용하고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결국,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간이 된 것이다. 서수민 프로듀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출ㆍ퇴근 제도는 개그콘서트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100가지 색의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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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의 한 회 평균 고정 출연자 수는 75명이다. 유동적인 출연자와 연출 스태프들의 숫자까지 합하면 서수민 프로듀서가 이끌어야 하는 ‘개그콘서트 식구들’은 100명이 훌쩍 넘는다. 각기 다른 요구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탄 거선을 이끄는 선장으로서 그의 역할은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최종적 결정권자’다. 개그맨들이 고심 끝에 만들어 온 코너와 캐릭터라 하더라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에는 주저없이 ‘네 것이 아니다.’ 이야기한다. 자신의 결정이 늘 옳을 것이라 생각하는 독불장군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개그콘서트라는 배가 앞으로 갈 수 있고, 그 역할이 바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듀서는 프로그램의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100가지의 서로 다른 색을 가진 크레파스다. 자신과 함께 일하는 개그맨들을 두고 ‘얼굴로 웃기는 개그맨’, ‘연기를 잘하는 개그맨’, ‘개인기가 뛰어난 개그맨’, ‘외모가 출중한 개그맨’으로 분류하는 것도 그들 모두가 똑같이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서수민 프로듀서에게 개그맨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진 카드다. 각각의 카드를 적재적소에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누군가 소화할 수 없는 컨셉이나 코너를 연기하려 할 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그맨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본인도 쓸 수 있는 카드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은 서수민 프로듀서를 신뢰한다. 그의 개그적 감각을 믿고, 자신들의 개그를 잘 다듬어서 보다 나은 단계의 결과물로 만들어 줄 것을 믿는다. 때때로 자신들을 좌절시키고 마음에 찬바람이 불게 만드는 프로듀서이지만 믿고 따르는 이유에 대해 서수민 프로듀서는 ‘PD와 개그맨이 개그콘서트에 대한 같은 목표를 공유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개그 프로그램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프로듀서와 웃기지 않고는 두 발 뻗고 잘 수 없는 개그맨. 그들의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다.


4인용 밥상

그가 개그콘서트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목표로 설정한 것은 ‘밥상 같은 프로그램’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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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그룹, 젊은 세대만을 타겟으로 삼지 말고 엄마, 아빠와 아이들이 주말 저녁에 쇼파에 같이 앉아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시청하는 공중파 방송을 만드는 입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타겟으로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개그맨들에게도 자신이 속한 세대만 대상으로 하지 말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최근 7개월 동안 개그콘서트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 평균 시청률은 25%에 달한다. 서수민 프로듀서가 연출을 담당하기 이전의 시청률은 평균 15%였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고 고정 시청층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현상유지에 만족하지 않았다. 타 방송사에서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드라마의 시청자를 개그콘서트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엄마와 아빠가 보고 웃을 수 있는 코너도 만들어 내겠다는 이른바 ‘밥상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무기는 ‘공감’이었다. 명절에 아내와 남편이 분담해야할 일을 정해주는 ‘애정남’, (직장)상사에게 거침없이 일갈하는 ‘비상 대책 위원회’를 보며 대한민국의 엄마와 아빠가 웃었다. 처음부터 ‘4인용 밥상’을 컨셉으로 삼은 것도 부모 세대와 청년 세대, 청소년 세대의 웃음 코드가 각기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개그콘서트는 모든 코너가 다 재미있다.’는 평가는 서수민 프로듀서에게 칭찬이 아니다. 밥상에 오른 반찬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코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코너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컨셉에 있어 또 다른 큰 변화는 ‘봉숭아 학당’의 폐지였다.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다시피 ‘봉숭아 학당’은 KBS 코미디의 상징적인 코너이자 긴 역사를 가진 코너였다. 하지만 서수민 프로듀서는 망설임 없이 변혁을 일으켰다.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생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오래된 새로움’이라는 키워드에 맞게 변화를 보여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재미있는 ‘봉숭아 학당’ 보다는 재미없는 새 코너가 낫다는 생각으로 코너를 개편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평균 시청률이 상승했다. 모험을 했기에 가능한 수확이었다. 이 모험을 가능하게 한 서수민 프로듀서의 철학은 ‘잘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렌드를 읽는 것은 공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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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하는 데 있어서 그가 개그맨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미디에는 지금 이 시대,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호흡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렌드를 읽는 것은 대중과의 공감으로 이어진다.

트렌드를 읽기 위한 서수민 프로듀서와 개그맨들의 방법 중 한 가지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이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흥행하는 영화들은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다. 책 역시 마찬가지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서점을 찾아가라고 이야기한다. 그 자신도 주1회 서점 찾기를 실천하고 있다. 최근에 대중들이 많이 찾는 책들의 제목만 훑어보아도 이 시대의 키워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개그맨들이 스케줄에 쫓겨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때는,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는 책을 골라 목차를 읽어 보라고 얘기해준다. 목차를 보면 저자가 어떻게 이야기들을 구성해서 주제를 전달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이 없는 개그는 공허하다.’는 그의 철학이 트렌드에 민감한, 그 결과 대중들과의 소통에 성공한 지금의 개그콘서트를 이루는 토대가 된 셈이다.

대중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은 전달하는 방식의 문제다. 그에 대한 고민과 세부적 전략이 없으면, 아무리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메시지라 하더라도 생명력을 잃고 만다는 것이 서수민 프로듀서의 지론이다. 'How to make'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놀라게’ 해야 한다. 예상 가능한 것은 식상하다. 그것은 낡은 포장이다. 좋은 메시지를 감추고 있는 만큼 새롭고 눈에 띄게 포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할 때에 시선은 항상 위로 향해야 한다. 개그란 철저히 눈높이가 밑에 있어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대중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올려다보는 자세에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개그를 보며 무장해제하고, 뛰어들어 함께 웃을 수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웃음은 자신을 희생해가며 다른 이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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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서수민 프로듀서는 연극과 개그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그도 연극과 마찬가지로 배우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둘 사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 대중들은 개그콘서트를 보며 위로를 받고 대리만족을 한다. 그 안에 자신들의 일상이 녹아있는 까닭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대를 만드는 이들의 ‘사람을 향한 애정’ 과 ‘동료에 대한 애정’이다. 사람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그 애정이 있기에 개그콘서트의 창의성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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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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