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어른들의 그릇된 선택이 부른 아이들의 슬픔

어른들의 그릇된 선택이 부른 슬픔 그리고 아픔… 너무나 길었던 그 겨울의 이야기 -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작가 페터 반 게스텔은 전쟁의 비극이나 유대인 학살의 끔찍함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한 어조로 아이들이 겪은 이별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아픔을 이겨내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작가는 처음부터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모른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언제나 이별에 마주한다.
그 이별은 때로는 가족의 것이기도 하고, 친구의 것이기도 하며, 사물이기도 하고, 추억이기도 하다.
『그 해 봄은 더디게 왔다』는 바로 이러한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1년 반 전에 엄마가 죽었다. 꼭 집어 말하자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 p.17



토마스는 엄마를 잃었다. 소년의 아빠는 엄마를 묻고 난 뒤 한 주일 내내 밤마다 거리를 헤매고 다녔고, 물을 넣지 않은 주전자를 가스 불 위에 얹어 놓거나, 얼어붙은 수도꼭지에 말을 걸었다. 엄마의 언니인 피 이모는 토마스를 돌보아 주고, 토마스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소년과 아빠가 엄마의 죽음을 외면하던 겨울, 토마스는 학교에서 피에트 츠반과 그의 사촌 누나 베트를 만난다. 유대인인 소년과 소녀는 전쟁의 과정에서 부모를 혹은 아버지를 잃었다. 어느 날 부모님은 독일로 끌려갔고 수용소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 상황을 피해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마주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현실이 정작 아이들을 덮쳤을 때, 어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이겨내야 하고, 자신을 정리해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토마스의 아빠는 아들에게 그 죽음을 애도할 시간을 주지 못한다.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그 시신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겪고 있는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토마스의 감정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는 정확히 정리되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그저 붙잡고 있게 된다. 유대인인 아버지를 전쟁에서 잃은 베트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소녀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집을 꾸려나가는 것은 아이의 몫이 된다. 베트는 그러한 엄마를 비난하고, 아빠를 잃게 만든 세상을 미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 수용소에서 돌아오지 못한 친척들의 사진을 가득 놓음으로써 스스로를 과거에 가두려 한다. 그리고 부모님 모두를 잃은 츠반은 부모의 추억을 물어볼 이가 아무도 없고, 스스로도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린다.

어른들이 자신의 상처를 추리기 위해 필사적인 동안, 아이들 또한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더듬고, 기억을 회상한다.


“우리 엄마는 손이 언제나 젖어 있었어.”
“어떻게 알아?”
“우라지게 자주 내 코를 꼬집었거든.”
“내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밨을 때 난 여섯 살도 채 안 됐어. 그래, 우리 아빠, 아빠 손은 아직도 기억이 나. 손가락이 길고 검은 털이 나 있었어. 아빠는 언제나 짙은 색 양복을 입었고 엄격해지고 싶을 때면 아주 나지막하게 말했지.” --- p.207

우리는 말을 더 하지 않았다. 둘 다 던 턱스 거리의 환한 방이랑 거기서 열린 생일잔치랑 이제는 다 죽어버린, 웃고 즐거워하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 p.208



작가 페터 반 게스텔은 전쟁의 비극이나 유대인 학살의 끔찍함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한 어조로 아이들이 겪은 이별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아픔을 이겨내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작가는 처음부터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그는 그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사람들은 꿋꿋이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한가지 아픈 질문이 남는다.

아이들이 겪었던 그 슬픔이, 아픔이, 어른들의 올바른 선택이 있었더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img_book_bot.jpg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페터 반 게스텔 저/이유림 역 | 돌베개

전쟁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194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아이의 우정과 사랑, 만남과 이별 이야기이다. 이 책은 많은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소설과는 다르게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세 아이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상처에 눈을 돌린다. 아이들은 가슴 깊이 응어리진 아픔을 서로에게 털어놓으면서 친구가 되고 사랑에 눈떠 간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마음속과 세상의 얼음이 녹아내리기를 함께 기다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봄이 찾아온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3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박희라

극단적인 애교와 극단적인 무뚝뚝함을 달리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웃어 넘기는 대인배가 되고 싶지만 추운 날씨에도 화가 나는 소인배입니다. 빨간머리 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열광하고 보들보들한 촉감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페터 반 게스텔> 저/<이유림> 역11,700원(10% + 5%)

전쟁의 시기, 세 아이를 통해 이야기하는 고통과 회복의 이야기 전쟁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194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을 배경으로 펼쳐지 는 세 아이의 우정과 사랑, 만남과 이별 이야기이다. 이 책은 많은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소설과는 다르게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우리가 서로의 구원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나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천선란의 이 소설집처럼. SF의 경계를 뛰어넘어 천선란의 다정한 세계관이 무한하게 확장되었음을 확인하게 하는 신작.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다 보면, 끝내 누군가의 구원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넘실거린다.

글쟁이 유홍준, 인생을 말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의 산문집. 대한민국 대표 작가로서의 글쓰기 비법과 함께, 복잡한 세상사 속 재치와 지성을 잃지 않고 살아간 그가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전한다. 이 시대와 호흡한 지식인이 말하는, 예술과 시대와 인간에 대한 글들을 빼곡히 담은 아름다운 ‘잡문’에 빠져들 시간이다.

맥 바넷 x 시드니 스미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우리 시대 젊은 그림책 거장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모두에게 선물을 주느라 정작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산타 할아버지를 위해 북극 친구들은 특별한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운다. 산타 할아버지가 맞이할 마법 같은 첫 크리스마스를 함께 만나보자.

우리는 모두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의 신작. 거짓 정보와 잘못된 믿음이 지닌 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왜 가짜 뉴스에 빠져드는지 분석한다. 또한,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는 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넘쳐나는 정보 속 우리가 믿는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