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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자들이여, 가끔은 우리 남자를 위해…

철없는 남자들에게… 여자들이여,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라! 평범한 여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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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해왔고 지금도 그 권력은 유효하지만 정복자로서의 품성을 갖추기 위해 인간으로서 자신의 일부를 죽여야만 했다. 그렇게 남자들이 버린 인간의 부분은 희노애락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모습으로 여자들 안에 살아 있다.

모든 남자에게는 베아트리체가 필요하다.


베아트리체가 누구인고 하니,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짝사랑 상대다. 단테는 아홉 살 때 처음 보고 반했던 여인 베아트리체를 평생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스물네 살에 요절한 베아트리체에 대한 애절한 사랑은 평생 그의 문학의 주제가 되었고 40년 동안 써서 죽기 직전에야 완성한 걸작 『신곡』에는 그녀의 이름이 실명 그대로 등장하게 된다. 이 작품 이후로 베아트리체는 남성들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구원의 여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예전부터 베아트리체 운운하는 남자들을 보면 ‘꿈꾸고 있네’라며 비웃기 일쑤였다. 그러나 남자들의 성향을 알고 난 요즘에야 깨닫는다. 그들은 정말로 베아트리체를 필요로 하며, 여자들은 부분적으로나마 베아트리체가 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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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레니(Guido Reni)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

어디에서도 마음 놓고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남자들에게는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여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줄 여자에 대한 꿈이 있다. 그래서 남자들이 창작한 수많은 예술물에 온갖 한심한 짓을 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것을 끝없이 받아주는 성모 마리아 같은 여주인공이 한 세트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해왔고 지금도 그 권력은 유효하지만 정복자로서의 품성을 갖추기 위해 인간으로서 자신의 일부를 죽여야만 했다. 그렇게 남자들이 버린 인간의 부분은 희노애락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모습으로 여자들 안에 살아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오로지 여자를 통해서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무 여자에게나 그럴 수는 없고, ‘내 여자’에게서만 가능하다.

누군가의 베아트리체가 되라는 것은 도무지 가능성이 없는 인격 장애자를 변화시키고 구원하라는 말과는 다르다.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평범한 여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자신 안에 들어온 남자에게 마음을 너그럽게 여는 것이다.

모든 커플의 비극은 서로가 자기를 구원해달라고 아우성일 때 비롯된다. 자신과 상대의 감정을 읽고 표현할 능력이 있는 여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쉽다. 여자들은 남자가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원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여자가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남자도 그녀를 구해줄 수 있다.


취미 대신 ‘장비병’을 앓는 남자들


‘장비병’이라는 신조어는 취미에 필요한 장비들에 끊임없이 욕심을 내는 일련의 행동들을 희화화한 것인데, 유독 한국의 30대 이상 남성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이게 꽤 많은 돈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가정 경제의 파탄을 가져오는 주범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고 본다. 장비병 환자들의 대다수는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성실한 직장 남성들이다. 길어야 몇 년 목돈 좀 탕진하다가 정신 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 정도 투자할 가치는 있다고 본다. 장비병으로 정말로 큰 문제를 일으키는 남자들은 장비병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라도 얼마든지 사고를 칠 만한 정서적 결함을 이미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안쓰러운 점은 그네들이 몰두하는 게 ‘정말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 붙일 곳 없는 자아를 순간적으로나마 우쭐하게 해줄 물건들일 뿐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진득하게 몰입해 단계적으로 성취를 쌓아나가기보다는 장비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손쉽게 성취감을 느끼려 드는 취미 활동은 오래갈 수도 없으려니와 수많은 취미의 미덕을 극히 일부밖에 얻을 수 없다. 유난히 외로운 한국의 남자들은 영화 〈아이언 맨〉의 주인공처럼 첨단 장비로 무장해 영웅으로 거듭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지만, 슬프게도 장비만 갖춘다고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40대까지의 취미를 평생 가져가게 된다고 한다. 남는 시간이 많아지는 은퇴 이후부터 취미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젊은 시절 일만 하다가는 앞으로 의학의 발달에 의해 80-90년에 이르게 될 노후를 ‘무료함’이라는 형태의 지옥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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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남인숙 저 | 자음과모음(이룸)

저자가 오랫동안 여러 나이대의 다양한 남자들에게 설문조사와 취재 인터뷰를 한 자료와 각종 국내외 심리학 서적과 사회과학 서적이 제공해준 이론으로 틀을 보강한 에세이를 토대로 하였고 중국 고전소설인 『금병매』를 패러디하여 쓴 짧은 소설을 각 챕터마다 집어넣어 보다 구체적인 캐릭터와 상황을 설정해 남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일화를 풀어놓았으며 그 뒤에 남인숙이 상세하게 왜 이런 해프닝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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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인숙

소설가, 에세이스트. 1974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방송작가, 자유기고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출간 이후 8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여성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한 베스트셀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2004)를 비롯하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 실천편』(2006), 『여자, 거침없이 떠나라』(2008),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2009),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2010) 등 2030 여성을 위한 에세이를 펴내어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또한 그녀의 여성 에세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몽골에 번역 출간되었고 특히 중국에서는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보이며 자국 위주의 중국 출판계에서는 드물게 비소설 분야의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세우는 등 여자에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해주는 멘토의 지침서로서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대 아시아 여성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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