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곧 돈이라고? 헛소리입니다!
시계바늘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왜 나는 늘 시간이 부족한 걸까?
필자는 시간관리법에 관한 책을 매년 초마다 한두 권씩 사서 밑줄 그어가며 읽곤 했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내가 늘 이 모양 이 처지’라는 자책. 그런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책이 플로리안 오피츠의 『슬로우』다.
필자는 시간관리법에 관한 책을 매년 초마다 한두 권씩 사서 밑줄 그어가며 읽곤 했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내가 늘 이 모양 이 처지’라는 자책. 그런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책이 플로리안 오피츠의 『슬로우』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수많은 일을 처리하며 고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 오피츠. 그에게 늘 시간은 부족하기만 했고 시계바늘에 떠밀려 산다는 느낌뿐이었다.
‘효율성으로 절약한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속도전을 치르며 살면 더 나은 세계와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먼저 시간 전문가들을 찾아 조언을 들었다. 시간관리 전문가 자이베르트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계획을 세우고 하루를 작은 단위로 쪼개어 중요한 일부터 집중하라 말해주었지만, 이는 수많은 시간관리법 책들이 늘 반복하는 내용 아닌가. 반면 시간 연구자 가이슬러 교수의 조언은 유익했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할 일이 너무 많거나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에요. 누구나 하나의 인생을 살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여러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하는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피츠는 속도 경쟁의 승리자인 유명 기업 컨설턴트도 만나고 100만분의 1초를 다투며 돌아가는 로이터통신 유럽 본부도 방문했다. 그 결과 그는 속도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냈으며, 경쟁을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바람직한 삶을 위해 어느 만큼의 속도가 필요한가? 무엇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가?’라는 것.
오피츠는 속도 경쟁에서 탈출한 사람들과도 만났다. 노스페이스와 에스프리를 창업한 더글러스 톰킨스는 회사 지분을 정리하고 칠레 남부 해안 마을에 살면서 광대한 황무지를 매입해 나무를 심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험한다. 초 단위로 계획되는 시간의 세계에 살던 톰킨스는 이제 수백 년, 수천 년 세월의 세계에 살고 있다. 톰킨스가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나무를 키웁니다. 지금은 2~3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1,000년 뒤에는 아주 아름다운 숲을 이룰 겁니다. 처음 200년 동안은 50미터 높이까지 위로만 자랄 겁니다. 그런 다음 재질이 단단해지면서 옆으로 자라겠지요. 그러면서 수천 년의 수명을 누릴 겁니다. 이 나무들은 수명이 4천 년이나 됩니다.’
오피츠는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을 선언한 나라, 부탄도 방문했다. 부탄의 국민총행복부 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을 돈이 아니라 생명으로 보는 거죠. 국민총생산과 성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목표가 되면 사람들의 생활도 분주하고 빨라집니다. 그러면 점점 더 오랜 시간을 고되게 일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건강을 잃고 불행해지죠. 그래서 부탄에서는 다른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평균 소득 세계 137위, 인간개발지수 135위지만 행복지수는 13위인 부탄. 물론 부탄은 가난한 나라이고 문제도 많으며 최근에는 서구 문물과 생활습관이 빠르게 침투하고 있지만, 국민총행복 개념을 중심으로 부탄만의 개성과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저자 오피츠는 ‘시간은 곧 돈이고 빠른 것이 풍족한 것이며 풍족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피츠가 내린 결론은 분명하다. ‘시간 절약은 헛소리이며 시간을 관리한다고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포기하는 삶의 전환이다. 그는 국가가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독일의 경우 우리 돈으로 약 200만 원이 적합할 것이라 한다. 물론 큰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재원 마련 문제부터 노동 의욕 상실 가능성까지.
이에 대해 그는 사회적으로 가치가 크지만 돈이 되지 않아 하지 않던 일들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 낙관한다. 저자가 성공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라 그런지 취재와 인터뷰와 저자 자신의 생각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무겁다면 무거운 주제이면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제목과 주제는 ‘슬로우’지만 책 자체는 속도감 있게 술술 읽힌다.
현대 기술문명의 역사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단축해온 역사에 다름 아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기계의 발명으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또한 재화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 며칠 동안 걸어가야 했던 거리를 자동차로 단 몇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고, 몇 개월 걸려서 만들어야 했던 제품을 순식간에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낀 그 모든 시간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출판 칼럼니스트, 번역가,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쓴 책으로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의 책』 등이 있다.
<플로리안 오피츠> 저/<박병화> 역13,500원(10% + 5%)
왜 내게는 늘 시간이 부족하기만 할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현대 기술문명의 역사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단축해온 역사에 다름 아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기계의 발명으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또한 재화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 며칠 동안 걸어가야 했던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