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삶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미니스커트도 쓸모 없으면 모두 버려라
쓸모 있는가? 아름다운가? 의미 있는가? 아니라면 모두 정리하라. 내 삶을 더욱 뜻있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움이란…
갖가지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나 자신에게 네 가지 질문을 했다. 쓸모 있는 물건인가? 아름다운가? 지금 내 삶에 의미 있는 것인가? 이게 딴 집에서 거저 가져가라고 내놓은 물건이라면 집어오겠는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내 천성이다.
대공황 세대인 우리 부모님은 물건을 버리는 법이 없었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 두 분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버리지 말라고 가르쳤다. 아빠의 차고는 주워온 물건의 사원이었고, 엄마의 지하실은 쟁여놓은 물건의 사당이었다. 구멍 난 양말은 걸레로 썼고, 얼룩진 셔츠는 속옷 대신 입었으며, 무릎이 해진 청바지는 반바지로 만들어 입었다.
내 옷장을 열어보면 나도 썩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옷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 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나’ 때문이니까.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무릎 보호대와 배구화, 롤러블레이드, 스케이트, 각종 스포츠 브래지어를 버리지 못한다. 그것들은 평생 운동선수가 되지 못한 내가 여전히 운동선수가 될 만큼 젊다고 속삭인다.
‘멋쟁이였던 나’는 근사한 검은색 스판덱스 스커트에 집착한다. 그 스커트는 세 시간만 입으면 모양이 망가진다. 잘 늘어나서 엉덩이를 감싸주긴 하지만 단단히 조여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앉았다 일어나면 스커트 속에 쌍둥이 초등학생 두 명을 숨겨둔 것처럼 보인다.
‘젊었던 나’는 앞이 주름져 있는 회색 미니스커트에 집착했다. 그걸 입으면 치어리더처럼 생기발랄해 보였다. 이제 그걸 버려야 할 때다. 그리고 빙판에서 죽마를 탄 것처럼 불안한 느낌을 주는 80달러짜리 10센티미터 하이힐도.
‘섹시한 나’는 언젠가 내가 검은 벨벳 패드 브래지어나 검은 슬립을 입으면 속옷 브랜드 광고판의 여자 모델처럼 보일 거라고 믿는다. 숨 막히게 요염할 거라고.
‘감상적인 나’는 사연이 담긴 모든 물건에 매달린다. 결혼 선물로 받은 신랑 신부 야구모자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모자를 계속 쓸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신혼부부 같은 기분이다. 내가 브루스와 연애할 때 입었던 핫핑크 튜닉도 그런 물건이다. 그는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그의 맹목적인 사랑이.
‘현실적인 나’는 5년간 입거나 신지 않은 건 죄다 버릴 때라고 결심한다. 나는 내다버릴 것들을 전부 쌓는다. 산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여자가 된 기분이다. 내 삶이 정돈된 것 같다. 적어도 옷장은.
몇 년 뒤, 온갖 잡동사니가 우리 집의 동맥을 막고 피를 응고시키자 결국 나는 온 집 안을 뒤집어엎었다. 성 베네딕투스는 ‘그대가 지하실과 다락, 옷장에 넣어둔 남는 옷가지는 가난한 이들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치료제 연구 기금 모금을 위한 걷기 행사 때 입은 분홍색 티셔츠를 원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그 옷은 이미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졌다.
석 달 동안 나는 우리 집을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비우는 일에 몰두했다. 지저분한 의자 두 개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칙칙하고 누런 사무용 의자와 오래되고 못생긴 식탁 의자. 그것들을 집 앞 길가에 내놓던 날, 나는 이웃들이 옆집에서 버린 물건을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 지하실의 잡동사니를 길가에 쏟아냈다. 낡은 커피테이블과 천장등, 흔들의자, 전축, 그리고 남의 집 앞에서 주워온 고풍스러운 초록색 대리석 램프를 내놓았다. 전선과 플러그만 있으면 작동하는 램프였지만, 1년 내내 지하실에 묵혀두고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이라 버리기로 했다.
옆집 아저씨가 램프를 가져갔다. 15분 뒤, 램프가 다시 길가로 나왔다. 그의 아내가 집에 들여놓기 싫다고 한 것이다. 한 사람의 쓰레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물이라는 말이 틀릴 때도 있는 법. 때로는 어디서나 쓰레기인 물건도 있다. 짝이 없는 장갑과 양말, 곰팡이가 핀 모자와 스카프, 창고에서 녹아버린 양초, 20년 전에 옷을 만들려고 핀으로 본에 꽂아둔 천도 내다버렸다. 심지어 핀도 빼지 않고 버렸다.
갖가지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나 자신에게 네 가지 질문을 했다. 쓸모 있는 물건인가? 아름다운가? 지금 내 삶에 의미 있는 것인가? 이게 딴 집에서 거저 가져가라고 내놓은 물건이라면 집어오겠는가? 마지막 질문이 결정적이었다. 거의 모든 잡동사니가 내버려졌다.
길가에 물건을 쌓아놓으면 누군가가 가져갔다. 정오 무렵에는 전부 사라졌다. 이제 내 집이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무얼 위한 준비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잡동사니 정리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끊어주고, 미래를 위한 문을 열어준다. 무엇을 위한 비움이냐고? 여유와 낭만, 창조와 평온을 경험하는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다. 새로운 취미, 새로운 친구, 새로운 목표. 불필요한 것을 치우면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 내 삶을 더욱 뜻있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움 말이다.
과거의 자신과 작별하면 지금의 나와 앞으로 되고 싶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삶이 가르쳐준 50가지 가르침 『삶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의 원제는 'GOD NEVER BLINKS'. 즉 '신은 절대로 한눈파는 법이 없다'이다.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저자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토로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녀는 누구에게나 깊은 절망이 찾아올 수 있음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결국은 그 수렁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더없이 현실적으로 모색해준다...
관련태그: 옷장, 잡동사니, 삶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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