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른엔 행복해지기로 했다
결혼 전 독립은 꼭 한 번 해볼 만한 도전이다
그녀의 당찬 독립, 마주한 현실은… 혼자 산다는 것은 환상이 아닌 현실. 그래도 꼭 한 번 해볼 만한 도전.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해서 집을 떠나는 게 모두가 반기는 독립이겠지만 그 일은 앞으로 이삼 년간은 요원해 보였기에 혼자 나가서 사는 길을 택했다. 조용히 글 쓸 공간이 필요하다, 더 이상 부모님 댁에 얹혀사는 건 눈치 보인다며 독립에의 의지를 다져 왔지만 현실은 팍팍하기 짝이 없었다.
“건강 챙겨라. 자주자주 오고.”
삼십 년 넘게 키워준 부모님을 떠나는 날, 엄마 아빠는 현관 앞에 서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눈물을 글썽이며 그동안 키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꽉 안아드리며 잘 지내시라고 애교를 부려보았다, 는 건 당연히 거짓말이고 그날 밤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신발을 챙겨 신고 문을 닫았다. 서른네 살 여름, 나는 그렇게 집을 나왔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해서 집을 떠나는 게 모두가 반기는 독립이겠지만 그 일은 앞으로 이삼 년간은 요원해 보였기에 혼자 나가서 사는 길을 택했다. 조용히 글 쓸 공간이 필요하다, 더 이상 부모님 댁에 얹혀사는 건 눈치 보인다며 독립에의 의지를 다져 왔지만 현실은 팍팍하기 짝이 없었다. 그동안 번 돈을 야금야금 까먹는 속도와 서울의 전셋값이 오르는 속도는 얼추 비슷했다. 나가고는 싶은데 나가 살 보증금이 없는, 아니 여차저차 보증금은 마련한다 쳐도 매달 월세는 감당 못하겠는 주머니 사정은 어느새 나를 ‘아침저녁으로 엄마가 차려주는 밥 먹는 여자’로 만들었다.
언젠가는 꼭 혼자 살아보겠다고 되뇌면서도 그 언젠가가 좀처럼 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결혼해서 같이 살 남자도 도무지 발견되지 않는다면 독립을 ‘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사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어쩜 그리도 프로그램 촬영 준비랑 닮아 있던지.여기에선 소리를 지르고, 저기에선 아양을 부리고 땀을 수십 리터 흘리고 나서야 이사는 마무리됐다. 쭈뼛거리며 생애 첫 전입신고까지 마치고 나니 그때서야 긴장이 풀린 팔과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끈한 가구가 하나둘 자리를 잡고 식기가 조금씩 늘어가는 사이 서서히 엄습하는 이 불안감은 뭘까. 어울리지도 않게 밤마다 두드려보게 되던 전자계산기 화면엔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숫자만 찍혀 있는 걸까. 한 달에 한 번씩 월세가 나간다는 것, 월세뿐 아니라 관리비 및 가스요금도 같이 내야 한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누워 있어도 돈은 필요하며, 그것이 모두 내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은 독립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직면한 현실이었다. 결국 ‘혼자 산다는 것 = 돈’이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이후 내 생활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수돗물은 바짝 잠그고 불필요한 전기는 끄고 콘센트도 빼 두기, 냉장고에 캔맥주는 쟁여 두지 않으며 밥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집에서 해 먹고, 택시 타고 새벽에 귀가하는 것도 금지.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그저 잔소리로 넘겼을 모든 생활수칙을 스스로 실천하게 되는 모범적 라이프라니.
하루 세 번 먹을 밥을 걱정하고, 쓰레기를 비우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한 독립이었음에도 어쩐지 하루는 더 짧고 하는 것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느낌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예쁜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창문 너머 부는 바람에 꽃무늬 스커트를 팔랑이는 우아한 생활이 아니라 껌뻑이는 전구를 갈고, 막힌 변기를 뚫고, 싱크대에 가득 쌓인 그릇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제는, 내가 예전에 그랬듯 ‘혼자 살고 싶다!’를 부르짖는 친구나 후배에게 심연 같은 눈동자로 충고한다. 혼자 사는 건 지금의 생활에서 내 몸 하나 뚝 떨어져 나오는 일이 아니라고. 책임감만큼의 경제력이 자리 잡기 전까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혼자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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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 팔 개월 차. 그래도 나는 독립을 지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철없던 나를 생활인으로 만들어준 그 결심과 실행에, 특히나 막내딸의 저돌적인 선택을 말리지 않았던 부모님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나는 매일 조금씩 철들고 있다. 정말이다.
작가, 서른을 위해 변명하다! 몇 년 전부터, 미혼인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대화 주제로 가장 많이 선정되는 이슈는 ‘더는 부모님과 같이 못 살겠다’다. 잘못한 거라곤 하나도 없는데 잔소리를 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24/7 언제 시집 갈 거냐며 참견을 하는 부모님…. 집에서 당하는(!) 설움을 얘기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심지어 눈물을 찔끔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 모든 수모의 이유는 우리가 아직까지 부모님 댁에 ‘얹혀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얹혀사는 게 아니라 우리 집에 내가 사는 건데 뭐가 문제냐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결혼 아니면 독립. 결혼은 아직 그렇고 그런 이유로 그렇고 그렇게 될 것 같고 해서 나는 독립을 선택했다. 선택의 다음 단계는 실행. 그렇게 나는 혼자살기를 질러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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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다 살짝 더 즐거운 내일을 위한 계획표이자 행복해지기 위한 변명 일기다. 일상의 반경 100미터를 둘러봐도 서른의 내가 고쳐야 할 것, 당장 끊어야 할 것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나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재 내 모습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지금의 내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서른,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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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TV 코미디 작가로 일했고, 10년 남짓 에세이스트로 활동 중이다. 지혜로운 사람보다 유연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보다 게으른 사람에게 끌리지만 정작 자신은 지혜에 집착하고 쓸데없이 부지런한 타입이라 난감할 따름.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날이 대부분일지라도, 스스로에게 정 붙이는 연습을 하며 사는 중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오늘 마음은 이 책』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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