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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의 딸에게 전하는 이야기 - 프롤로그

책에 너희들 진짜 이름을 쓸까, 아니면 가명으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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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엄마가 너희들 키우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쓰게 된 거니까 너희들 공도 커. 그래서 말인데 책 나오면 엄마가 거하게 한 턱 쏠게. 먹고 싶은 거 미리 생각해 둬. 참, 희원이는 옷 필요하다 그랬지? 책 나오면 옷 두 벌 사줄게.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나 혼자는 풀 수 없고 책의 주인공으로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나의 두 아이들이 결정해줘야 하는 것이다.

 

“엄마가 글을 하나 썼는데,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다 보니 너희들 이야기를 쓰게 됐어.”

슬쩍 눈치를 보니 딸아이 얼굴에는 ‘도대체 뭘 쓴 건데?’ 하는 의구심과 경계심이 휙 스쳐간다. 지금부터는 외줄타기이다. 정말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한다.

“뭐든 예를 들어서 말해야 생생하잖아. 그러다 보니 불가피하게 너희들과 지냈던 일을 쓰게 됐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아(사실은 아주 많다). 그래서 너희들 의견을 들어보려고.”
“무슨 의견?”
“책에 너희들 진짜 이름을 쓸까, 아니면 가명으로 할까?”

“어떻게 진짜 이름을 써? 당근 안 되지!” 까칠한 딸아이 반응.
“난 괜찮은데.”

 

책에 자기 이름이 나오기를 은근 기대하는 아들이 누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휴, 살았다. 그런 얘기를 쓰면 되느니 안 되느니, 엄마는 왜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글로 써서 창피하게 만드느니 하는 보다 원론적인 주제는 비껴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내가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다. 물론 이미 반 이상 써버린 글을 아이들이 반대한다고 덮어버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알게 될 일을 알려주면서 아이들과 큰 소리 내고 기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늘 원하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가 만족스러운 결론을 함께 내는 것이다. 마무리를 위해서 한 마디 더했다.

 

“사실 이 책은 엄마가 너희들 키우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쓰게 된 거니까 너희들 공도 커. 그래서 말인데 책 나오면 엄마가 거하게 한 턱 쏠게. 먹고 싶은 거 미리 생각해 둬. 참, 희원이는 옷 필요하다 그랬지? 책 나오면 옷 두 벌 사줄게.”

이 말이 끝나자 두 아이 머릿속에 이미 자신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책 이야기는 사라져 버린 듯 했다. 지난 번 갔던 정육식당의 등심이 맛있었다는 등, 출판기념회 같은 것은 우아하게 호텔이나 빕스 같은 데서 해야 한다는 등 자기들끼리 의견이 분분해졌다. 그 때 딸이 한 마디 덧붙인다.

 

“엄마, 옷은 얼마짜리까지 되는데?”

 

지금까지 부모교육을 할 때 나는 다양한 이론과 학문적 근거를 들어가며 육아를 설명해왔다. 할로우(Harlow, H)의 애착실험과 볼비(Bowlby, J)의 내부작동 모델 이론을 들어가며 부모와 아이 사이의 애착은 아이가 평생 맺는 대인관계의 기본 틀이 된다는 것, 가드너(Gardner, H)의 다중지능이론을 설명하면서 학교공부를 잘 하는 것이 성공의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것, 뇌의 그림을 보여주며 아이들의 미숙한 행동을 어떻게 놔와 관련해서 이해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렇지만 교육이 끝나고 나서 듣는 질문은 늘 비슷한 것이었다.

 

“정리정돈을 가르치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데도 놀고 나면 집안이 난장판이에요.”
“학교 갔다 와서 바로 숙제하고 놀면 좋은데 항상 노는 게 먼저고 공부나 숙제는 안 하려고만 해요.”
“애가 자꾸 조르는데 휴대폰은 몇 살에 사줘야 하나요?”
“초등학생인데 용돈을 줘야 하나요? 얼마를 줘야 하죠? 한꺼번에 다 써버리면 어떻게 해야 되요?”

 

그렇다. 육아는 교과서에 실려 있는 거창한 이론이나 추상적 개념의 문제가 아니다. 아침에 눈 뜨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부딪혀오는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아이를 키우며 단 하루도 문제에 봉착하지 않는 날은 없다. 육아를 잘 한다는 것은 양육과 발달에 대한 책을 보고, 강의를 듣고,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그런 일이 아니다.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가야 하는 성장의 길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누군가가 지켜보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나 또한 무수히 그런 과정을 거쳤다. 내 아이들은 물론, 도움을 청하는 많은 부모들을 만나서 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아이들과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날마다 마주치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아이의 마음 헤아리기를 잊지 않는 것, 원칙을 세우고 그걸 지키려고 애쓰는 것, 한계에 넘어가는 분노와 불안을 참아보는 것, 지금 나의 결정이 아이의 행복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통찰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또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음읽기와 문제해결 기술을 내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발휘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은 내가 겪었던 크고 작은 문제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거쳤던 고민과 사유의 과정과 결과를 엮은 것이다. 나의 경험은 이 세상의 대부분의 엄마들이 겪었고,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나중에 아이 엄마가 될 내 딸에게 주고 싶다. 딸은 아마도 나의 우려를 귓등으로 흘리고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다고 믿는 그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할 것이다. 그리고 후회를 하겠지. 누구나 그런 것처럼. 아이는 둘 정도 낳지 않을까? 하나라도 상관은 없다. 성숙해지는 데는 아이 하나로도 충분하니까. 직장 다니는 엄마 밑에서 자라 엄마자리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를 테니, 제 아이는 제가 키우겠다며 사회생활을 접을 것도 같다. 두 가지 다 잘 해보겠노라고 직장맘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건 또 후회를 하겠지. 왜 내가 애를 둘씩이나 낳았을까, 직장을 관두고 애나 볼까 하고. 그렇게 삶에 지치고 아이들에게 치여 정신없는 어느 날 밤, 간신히 아이들을 재우고 침대에 누워 뽑아드는 책이 이 책이기를 바란다.

 

페이지를 넘기다 깔깔거리기도 하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 ‘나 옛날에 우리 엄마랑 이런 일도 있었다’며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시큰거리는 콧등을 눌러가며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이들 엄마로 살고 있지만 예전의 어떤 날에는 엄마에게 온갖 시련을 안겨주었던 ‘사랑스러운 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냈으면 좋겠다. 삶이 주는 시련에 위로가 되고, 엄마라는 고단한 자리의 무게를 덜어주고, 그리고 정말로 사랑받는 딸이었다는 증거가 되는 그런 글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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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선미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한국 임상심리학회 전문가 수련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며, 임상심리학과 관련된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94년부터 아주대학교 병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평가와 치료프로그램, 부모교육을 해왔다. 부모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아동 이상심리, 부모교육훈련, 행동수정을 주제로 다수의 강의를 하였다. 현재 EBS TV ‘생방송 60분 부모’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저서로, 『부모 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특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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