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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감식, 화염으로도 감출 수 없는 범죄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 그 비극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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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30일, 경기도 안산시의 연립주택 반지하방에서 불이 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소화 호스를 갖다 대고 물을 뿌렸지만 불이 잘 꺼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일반적으로 화재 현장의 증거는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다른 현장과는 다르게 화염에 의해 모든 것이 소실되기 때문이다. UC 버클리의 폴 커크 박사는 1974년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적 증거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위증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이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그 가치를 떨어뜨릴 뿐이다.’


화재의 원인을 밝혀 낼 증거는 반드시 현장에 존재한다. 그 화재가 사고인지 고의인지를 알아내는 일은 범죄 여부를 밝히고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게 한다. 화재의 원인은 다양하다. 흔히 일어나는 주택 화재는 대개 전기 문제로 발생한다. 노출된 전기가 흐르는 전도체에 인화 물질이 튄다거나, 또는 물처럼 전도될 수 있는 물질이 닿을 경우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전선 자체에서 발열 반응에 의해 화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녹아내린 용융흔과 구별되는 단락흔이 발생하는데, 금속 전선이 직접 용해된 것이므로 매우 높은 고열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화재는 인화 물질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다. 인화 물질의 경우 현장에서 특유의 냄새를 감지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1차적으로 방화를 의심한다. 방화범의 경우 가장 쉽게 불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므로 주로 휘발유, 등유 등의 인화 물질을 사용한다. 그러나 밀폐된 현장에서 증거를 훼손하기 위해 인화 물질을 사용하는 경우, 갑작스러운 연소로 인하여 주변의 모든 산소가 연소에 사용되면 연료들이 다 타지 못하고 현장에 남은 상태로 소화되는 것을 간혹 발견할 수 있다. 이때는 방화의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2005년 10월 30일, 경기도 안산시의 연립주택 반지하방에서 불이 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소화 호스를 갖다 대고 물을 뿌렸지만 불이 잘 꺼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그것은 이 화재가 전기 누전이나 전열기 과열 등으로 인한 단순한 가정집 화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시너나 휘발유 등 인화 물질을 뿌리고 방화한 현장의 경우 물로 소화가 잘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장모와 부부, 아들네 식구가 사는 집이었다. 안방에서는 장모와 아내가 자고 남편인 강씨는 아들과 함께 건넌방에서 잤다고 했다. 그런데 불이 나자 강씨는 아들만 데리고 방범창을 뜯어 피신했으며 장모와 아내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 화재는 이상한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장판에서 시작된 불을 단순히 사고에 의한 것으로 보기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심하게 소훼되었고, 화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집기들이 위치가 바뀌고 변형된 부분도 관찰 되었다. 생존자인 강씨는 아내와 장모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과 슬픔에 잠긴 모습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화재의 양상이 이상했다. 더구나 남편 강씨는 아내 명의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보험에 가입한 상태였고 아내의 사망과 동시에 4억 8,000만 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소방화재조사관과 보험회사 조사원, 경찰 과학수사 요원 일부가 의문을 제기했지만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화재 현증을 둘러싼 수많은 의문은 그냥 묻히고 말았다. 이 의문들에 대해 ‘전문적인 화재 감식’이 이루어져 끝까지 파헤쳐 들어갔더라면 엄청난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짐작하겠지만 이 사건은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관련된 것이다. 강호순은 2006년 9월부터 2년여에 걸쳐 여덟 명의 부녀자를 연쇄 살해한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화재 사건으로 전처를 잃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당시 화재의 수상한 부분이 다시 부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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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표창원

표창원 교수는 실제 경찰관 출신으로 연쇄살인, 엽기범죄 등 각종 범죄와 살인자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해내는 걸로 유명한 한국의 ‘프로파일러’로 현재 범죄학, 범죄심리학, 피해자학 등을 강의하는 경찰대학 교수이다. 그는 1989년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1991년 경기도 화성경찰서, 1991년~1992년 경기도 부천경찰서 형사과, 1992년~1993년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계에서 근무했다. 1993년부터 4년간 학업에 매진하여 영국 Exeter 대학교 석사 및 박사 (경찰학, 범죄학)학위를 받았다. 경찰청 강력범죄 분석팀(VICAT) 자문위원, 경찰청 미제사건 분석 자문위원, 범죄수사연구회 지도위원를 역임했으며 미국 샘휴스턴 주립대학교 형사사법대학 객원교수, 한국심리학회 범죄심리사 과정 강사, 경찰 수사보안연수소 범죄학 및 범죄심리학 강사, 법무연수원 범죄학 및 범죄심리학 강사로 활발한 강의활동을 해왔으며 아시아경찰학회 총무이사 및 회장을 지냈다. 그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유 없는 분노와 복수심에 빠져 있는 잠재적 연쇄살인범들이 우리 사회 각 기능의 제역할로 인해 상처를 치유 받고 교훈을 얻고, 행동이 교정되어 무모하고 비극적인 공격의도를 꺾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관련된 범죄 관련 저서들을 집필 중이다. 저서로 『한국의 연쇄살인』,『EBS 지식 프라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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