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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살해한 젊은 외과의사, 그는 무죄였다!

혈흔 형태 분석, 범죄 상황의 생생한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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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흔 형태 분석은 등장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기법임을 자처해 왔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지문이나 미세 증거 같은 오래된 기법보다도 먼저 과학자와 수사관들에게 인식되어 온 기법이다.

“사망자의 혈흔은 사람의 키높이 이상으로 벽면과 천장에 튀어 있었고, 그 혈흔의 크기도 충격 부위로부터 비산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컸다. 병원 응급실에서 전송해 온 사진을 통해 사망자의 상처 부위를 살피던 그는 이 죽음이 사고사가 아님을 확신했다.”


혈흔 형태 분석은 등장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기법임을 자처해 왔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지문이나 미세 증거 같은 오래된 기법보다도 먼저 과학자와 수사관들에게 인식되어 온 기법이다. 위대한 명탐정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영국의 코난 도일 경은 1887년 자신의 첫 작품인 《주홍색 연구》에서 최초로 혈흔을 다룬다. 물론 이것은 소설이라는 허구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미 코난 도일은 매우 과학적으로 혈흔 분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한국전쟁의 참화로 인한 폐허 속에서 망연자실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는 혈흔 형태 분석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한다. 훗날 이 사건은 세계적인 명배우 헤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은 《도망자(The Fugitive)》(1993)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54년 여름밤 젊은 외과의사가 아내를 참혹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지만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한 사건. 유명한 ‘샘 셰퍼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도 많은 논란거리를 낳으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재판 진행 중에도 《도망자》라는 드라마가 방영될 만큼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었다.

현장을 최초로 분석한 검시관 거버는 아내 메릴린을 죽인 범인은 남편인 샘 셰퍼드라고 단정하여 샘을 체포하게 했고, 샘의 불륜 사실과 부부 불화가 드러나면서 대중과 언론은 그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그가 체포되고 실형을 산 지 12년 만인 1966년, 당대 최고의 법과학자였던 버클리 대학의 생화학, 범죄학 교수 폴 커크 박사는 셰퍼드 가족의 의뢰로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기 시작한다.

샘은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경찰에 발견될 당시 상의를 벗은 채 물에 젖은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폴 커크 박사는 메릴린의 얼굴을 40회 이상 둔기로 공격한 범인이라면 면바지와 가죽 벨트에 ‘튀어서 묻은’ 혈흔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샘의 옷에서는 왼쪽 무릎 부위에 스며든 혈흔 정도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또한 벽면에 형성된 이탈 혈흔(cast-off, 피 묻은 흉기를 휘두를 때 떨어져서 날아가는 혈흔)의 형태가 범인이 왼손잡이임을 말해 주는데, 샘은 오른손잡이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증거는 현장에 떨어진 수많은 낙하 혈흔(수직으로 떨어진 혈흔)이었다. 폴 커크 박사는 ‘흉기에서 떨어진 피해자 메릴린의 피’라는 거버 검시관의 최초 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공격한 범인이 개방성 손상을 입었으며 거기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흉기 모서리의 표면적이 아무리 커도, 그 흉기에 아무리 많은 양의 혈액이 묻어 있어도 낙하 혈흔의 숫자는 일고여덟 개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제시한 것이다. 현장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낙하 혈흔이 연결되어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피해자의 혈흔이 아닌 공격자의 상처에서 나온 혈흔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샘의 몸 어디에도 출혈을 보이는 개방성 손상은 없었다. 결국 당대 법과학계의 권력자인 검시관 거버의 조사 결과를 대학 교수인 법과학자 폴 커크 박사가 뒤집은 셈이 되고 말았다. 법정에서도 폴 커크 박사의 혈흔 형태 분석 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하여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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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표창원

표창원 교수는 실제 경찰관 출신으로 연쇄살인, 엽기범죄 등 각종 범죄와 살인자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해내는 걸로 유명한 한국의 ‘프로파일러’로 현재 범죄학, 범죄심리학, 피해자학 등을 강의하는 경찰대학 교수이다. 그는 1989년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1991년 경기도 화성경찰서, 1991년~1992년 경기도 부천경찰서 형사과, 1992년~1993년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계에서 근무했다. 1993년부터 4년간 학업에 매진하여 영국 Exeter 대학교 석사 및 박사 (경찰학, 범죄학)학위를 받았다. 경찰청 강력범죄 분석팀(VICAT) 자문위원, 경찰청 미제사건 분석 자문위원, 범죄수사연구회 지도위원를 역임했으며 미국 샘휴스턴 주립대학교 형사사법대학 객원교수, 한국심리학회 범죄심리사 과정 강사, 경찰 수사보안연수소 범죄학 및 범죄심리학 강사, 법무연수원 범죄학 및 범죄심리학 강사로 활발한 강의활동을 해왔으며 아시아경찰학회 총무이사 및 회장을 지냈다. 그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유 없는 분노와 복수심에 빠져 있는 잠재적 연쇄살인범들이 우리 사회 각 기능의 제역할로 인해 상처를 치유 받고 교훈을 얻고, 행동이 교정되어 무모하고 비극적인 공격의도를 꺾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관련된 범죄 관련 저서들을 집필 중이다. 저서로 『한국의 연쇄살인』,『EBS 지식 프라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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