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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당신을 반길 때까지 기다려라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일단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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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한 마리씩 - 겉보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프로젝트나 계획도 대부분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한 마리씩 하면 해낼 수 있다. 짧은 이야기 하나를 써라. 시 한 편을 써라.

우리는 한 블록 거리를 길게 늘어선 채 오들오들 떨며 찬바람 속에 서 있었다. 수많은 작가와 작가 지망생이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 예배당 밖에 줄지어 있었다. 마치 복제 인간들의 모임 같았다. ‘앤 라모트와의 대화’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여성이었고, 다들 굶주린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평소에 우상으로 여기던 여자를 만나러 왔다. 그녀는 아주 평범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스카프로 높이 묶은 긴 곱슬머리, 안경, 색이 바랜 청바지, 소매가 긴 하얀 셔츠. 하지만 우리 눈에는 멋져 보였다. 라모트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녀의 신조는 간단하지만 심오하다.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른 다음,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 세 단계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예전에 그녀는 이런 글을 썼다.

“신이 놀라운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늘 처음에 어려움이 따른다. 아무리 굉장한 일도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법이다.”

나는 『앤 라모트의 유쾌하고 다정한 글쓰기 수업 Bird by Bird: Some Instructions on Writing and Life』을 읽고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웬만한 작가들은 다 읽어본, 글쓰기의 고전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그녀의 남동생이 열 살 때 새에 관한 숙제를 하느라 낑낑댔던 일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석 달 동안 조사해서 제출하는 숙제였는데, 결국 마감일이 코앞에 닥치고서야 시작했다. 아직 펼쳐보지도 않은 조류 서적들에 둘러싸인 채, 그 소년은 책상에 앉아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자 아빠가 아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차근차근 하면 돼. 한 번에 한 마리씩(bird by bird).”

글쓰기도 그렇게 하면 된다. 겉보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프로젝트나 계획도 대부분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한 마리씩 하면 해낼 수 있다. 짧은 이야기 하나를 써라. 시 한 편을 써라. 일단 시작해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해라.

라모트는 우리에게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남의 글을 쓸 것인가, 내 글을 쓸 것인가?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은 잊어버려라. 부모님의 목소리건, 선생님의 목소리건, 주변 세상의 목소리건 모두 지워버려라. 그런 다음 앉아서 첫 글을 써라. 서툴러도 상관없다.

라모트는 내면의 목소리, 직관적인 예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이 창조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라모트는 말했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말해라. 그것이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출발점이다. 그게 정말 말처럼 그렇게 쉬울까? 남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어디서 찾지? 라모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당신 안에 있다. 가슴속의 보석처럼.”

우리는 책을 낼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힌트도 얻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는지는 모두 깨달았다. 한 번에 한 낱말씩. 한 번에 한 문장씩. 한 번에 한 마리씩. 대개 사람들은 이 출발점을 간과한다. 그러면서 늘 나에게 작가가 되는 방법을 묻는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되지 못하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봐라. 틈만 나면 이메일을 확인해라. 친구들과 메신저로 수다를 떨어라. 작가들의 채팅방을 들락거려라.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전화를 받아라. 세상만사 온갖 사소하고 시시껄렁한 일들에 신경 써라.

마침표를 찍을지 쉼표를 찍을지 고민해라. 천천히 쓸지 빨리 쓸지, 컴퓨터로 쓸지 종이에 쓸지, 연필로 쓸지 볼펜으로 쓸지, 파란색 펜으로 쓸지 까만색 펜으로 쓸지, 데스크톱으로 쓸지 노트북으로 쓸지 몇 시간씩 끙끙대라.

작문 시간에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던 일을 죄다 떠올려라. 선생님들이 내 글을 비판하던 장면을 머릿속으로 재생해라. 툭하면 전화질을 해대는 상상 속의 편집자들과 입씨름을 벌여라. 아직 받아본 적은 없지만 틀림없이 받게 될 것 같은 퇴짜 편지를 생각하며 울어라.

어떻게 하면 작가가 못 되냐고?

컴퓨터를 잘 모른다고 겁부터 내라. 문서 편집 요령에 통달할 때까지 글쓰기를 미뤄라. 우선 문학 박사 학위부터 따라. 걱정을 덜어줄 심리 치료부터 받아라. 명망 있는 작가들의 모임을 찾아라.

퇴짜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성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때까지 기다려라. 책을 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스스로를 구박해라. 남들이 보면 비웃을 거라고 걱정해라. 다른 모든 사람과 나를 비교해라. 너무 덥다고, 너무 춥다고, 너무 습하다고, 또는 날이 너무 좋아서 글쓰기 싫다고 불평해라.

위대한 작가가 되려고 노력해라. 첫 문장을 쓰기 전에 모든 문학 사조를 분석해라. 완벽해지려고 발버둥 쳐라. 제2의 셰익스피어가 되겠노라고 선언해라. 다른 사람처럼 쓰려고 노력해라. 사람들을 감동시킬 멋지고 화려한 말만 골라 써라.

어떻게 하면 작가가 못 되냐고?

글은 나중에 쓰고 다른 작가들의 팬미팅에 나가라. 아직 쓸 이야기가 없다고 계속 딴청을 부려라. 점쟁이를 찾아가 사주팔자를 물어봐라. 내가 작가로 성공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해라.

손톱을 다듬어라. 화초에 물을 줘라. 지하실을 청소해라. 작업실을 만들어라. 다락이나 골방에 나만의 글쓰기 공간부터 만들어라. 작가가 될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자신의 고뇌와 열정, 음악은 무시해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려라. 유명 작가가 되면 뭘 할지 생각해라. 텔레마케터의 전화에 일일이 응답해라. 컴퓨터 게임에 몰두해라. 글을 쓰기 전에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라.

작가의 꿈을 버리라고 했던 작문 선생님에 대해 불평해라. 나를 무시했던 교수, 내 일기장을 훔쳐본 남동생, 나 몰래 내 글을 읽은 언니, 죄다 욕해라. 너무나 쉽게 작가가 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시간을 낭비해라.

고쳐가면서 글을 써라. 한 문단이 끝나기도 전에 문법과 구두법을 확인해라. 나 자신마저 흥미를 잃을 정도로 내 글의 주제에 대해 떠들어라.

어떻게 하면 작가가 못 되냐고?

아이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라. 아이의 입에 이가 다 날 때까지 기다리고, 아이의 사춘기가 지날 때까지 기다리고,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기다려라.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시간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라.

금연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술을 끊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라. 또는 고주망태가 되어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라.

자식들이 떠나고 부모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라. 인생의 반려자를 만날 때까지 기다려라.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기다려라.

휴가를 갈 때까지 기다려라. 휴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은퇴할 때까지 기다려라. 나만의 뮤즈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라. 기막힌 이야기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라.

살날이 6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선고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가슴에 고이 묻은 채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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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레지너 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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