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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꼭 함께하고 싶은 45가지 명로진 저 | 북스토리 |
저자 명로진은 앞서 아이를 키워온 어르신들과 선배들에게, 또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을 통해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것이나 아이에게 해주었더니 좋았던 것’에 대해 조사했고, 그 결과 『아이와 꼭 함께하고 싶은 45가지』로 엮어낼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부딪히고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달은 살아 있는 기록으로,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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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또 돼지저금통을 사왔을 때 찬우는 짜증이 났다.
“용돈 쓰고 남으면 저금해! 몽땅 군것질하지 말고.”언제나 똑같은 소리! 찬우가 못 들은 척 하면 엄마는
“크리스마스 때까지 모아서 불우이웃돕기 성금 내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찬우는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연말에, 텔레비전에 아이들이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서 성금을 내는 장면이 나오면 엄마는 말했다.
“쟤 좀 봐, 얼마나 착해? 너도 저렇게 좀 해봐.”찬우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들도 원해서 저금통을 갖다 바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쟤네들도 엄마가 시켜서 저렇게 하는 거겠지, 뭐. 찬우는 군것질을 하고 싶은데 엄마가 다그치는 바람에 억지로 저금통에 동전을 넣어야 할 때가 제일 싫었다. 그럴 때는 저금통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금통이 조금씩 무거워져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찬우가 성재네 집에 놀러갔을 때였다.
“그렇게 엄마 말을 꼬박꼬박 듣다간 아마 히스테리가 나서 못 살걸?”성재의 말에 찬우가 물었다.
“히스테리가 뭔데?”“정신병원에서 쓰는 말인데 스트레스 받으면 일어나는 짜증 같은 거야. 우리 이모 알지? 서른여섯인데 시집 안 간. 그 이모가 가끔 신경질을 내잖아. 그걸 히스테리 부린다고 하는 거야.”“아…….”“하여간. 잘 봐.”성재는 찬우에게 ‘돼지저금통에서 돈 꺼내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준비물은 핀셋이야.”성재는 자신의 저금통을 들고 시범을 보였다. 일단, 저금통을 거꾸로 들어 동전이나 지폐가 아래로 모이게 했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저금통 구멍을 벌리더니 오른손으로 핀셋을 들어 구멍 속에 조심스레 넣었다. 잠시 후, 핀셋 끝엔 5천 원짜리 지폐가 딸려 나왔다.
“자, 나가서 PC방이나 가자.”성재는 어깨를 으쓱했다. 찬우는 부러운 눈으로 뒤따라 나갔다.
집에 돌아온 찬우는 저금통잹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핀셋으로 천 원짜리를 꺼내려는 순간,
“찬우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찬우는 얼른 저금통을 제자리에 갖다놓고 엄마에게 갔다.
“왜요?”“너 성재네 갔다 왔지?”“네. 그런데요?”“『과학동아』는 돌려받았어?”“아차!”찬우는 성재의 현란한 지폐 빼기 기술을 보느라 정작 성재네 간 목적도 잊었던 것이다. 하여간 그 다음 날부터 찬우는 가끔씩 저금통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어 군것질을 했다.
어느 날, 엄마는 새 저금통을 사왔다.
“앞으로 이 저금통에 우리 식구가 똑같이 저금을 하자. 네가 동전을 넣는 만큼 엄마랑 아빠도 같이 넣을게. 가득 차면 돼지저금통을 깨서 네가 좋아하는 놀이동산에 가자. 남는 돈은 네가 필요한 데 써도 좋아. 맛있는 것도 사먹고 장난감도 사고.”엄마의 말을 들으며 찬우는 어리둥절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농담을 하는 것 같았지만 엄마의 표정은 진지했다. 찬우는 기분이 몹시 좋아서 돼지저금통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날부터 찬우는 ‘돈 빼기’ 기술을 쓰지 않았다. 놀이공원에 가려면 빨리 새 저금통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찬우는 돈이 생기면 무조건 저금통 안에 넣었다. 설날 새배돈은 물론이고 친척이나 어른들이 주시는 용돈은 모두 저축을 했다. ‘용돈 벌기 리스트’도 만들었다. 아빠 구두 닦기 200원, 재활용 분리 300원, 신발 정리 100원, 식사 때 수저 놓기 100원 등이었다. 지난달에 찬우는 3,300원을 벌었다.
일 년 뒤, 찬우와 엄마 아빠는 돼지 저금통을 뜯었다. 모은 돈은 모두 16만 3,700원이었다. 놀이 공원에 다녀오고도 5만원이 남았다.
다음 날 엄마는 또 돼지저금통을 사왔다. 이번에 저금통이 가득 차면 찬우가 갖고 싶어 하는 게임기를 사도 된다고 했다. 찬우는 다시 저금을 시작했다. 연말에 게임기를 사고 3만 원이 남았을 때, 찬우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 돈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낼 게요.”“그러렴.”그날 저녁 아빠가 돌아왔을 때 엄마가 말했다.
“찬우가 게임기 사고 남은 걸로 기부를 한다네요.”“잘 됐네. 얼마 남았는데?”“3만 원이요.”“그것 봐. 찬우가 옛날 저금통에서 돈 빼는 거 봤을 때 혼내지 않길 잘했지? 내 전략이 딱 먹혔다니까.”아빠의 거만한 몸짓에 엄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돼지저금통이 하나씩은 꼭 있습니다. 푼돈이라도 함부로 쓰지 말고 잘 모으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 부모님이 사오곤 하지요. 부모님은 돼지저금통이 가득 차면 그걸 다시 통장에 저축을 하거나 좋은 일에 쓰라고 주문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저축할 맛이 싹 사라집니다. 저축하는 습관을 심어주려면 다른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저축의 목적은 푼돈을 모아 목돈을 만드는 것입니다. 목돈으로 사고 싶은 걸 사고, 꼭 하고 싶은 걸 해야 저축할 마음도 생기는 것이지요. 돼지저금통을 다 채우고 나면 무조건, 아이가 원하는 걸 먼저 하게 해주세요. 그래야 저축하는 재미를 느끼게 되지요. 부모가 동참하는 건 덤입니다. 아이에게는 저축하는 습관이 생기고, 부모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하고. 일석이조 아닐까요?